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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May 29. 2023

행복을 찾아 떠난 여행

필리핀 세달살이 5

5월 22~27일 - 일주일간의 홈스테이

필리핀 현지인의 삶을 그대로 살아보는 시간이다. 학교에서 차로 40여분을 달리면 만나는 CabCab이라는 바닷가 작은 마을이었다.

매일 만나는 학교 직원들, 머리를 휘날리며 바이크를 타는 그녀, 그 매연과 소음 속에서 온종일을 보내는 패디캅 드라이버, 맛있는 할로할로 가게 사장님... 그들은 어떤 가정을 꾸리기에 이 무더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걸까? 하는 매일의 궁금증을 드디어 해결할 수 있는 날이다.


변함없이 쨍한 햇볕 아래 제법 큰 키에 구릿빛 피부 그리고 빨간색 농구복을 입은 아주 힙한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주신다. 름다운 필리핀식 인사 마노(손을 잡고 어른의 손등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는 필리핀식 인사법이다) 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아주 환하게 웃어주신다. 아차, 힙한 아저씨의 앞니는 단 하나. 홈스테이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두 명씩 짝이 되어 한 가정으로 들어갔다. 마을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농구장이 위치한 해안 근처 그리고 작은 언덕배기와 그 언덕 꼭대기의 집들이다.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짝을 짓고 가정을 배정해 두었다. 다행히 마마, 파파의 표정은 모두가 너무나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인양 친근하고 따뜻하다. 게다가 대부분 형제자매인 듯이 닮아있어 뭔가 모르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도 약간은 걱정스러운 듯 보였지만, 분명 이번에도 어김없이 멋진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더 이상 나의 염려는 도움이 되지 않을 터이다.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도 재빨리 등을 돌렸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이곳 가족들을 믿는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미션이 있다.

우리는 다른 문화를 보고 느끼고 배우러 가는 것이다. 결코 ‘가난’을 체험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필리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느껴보자.


온 집에 구멍이 나 있다. 문도 없거니와 또는 있어도 거의 열려있어 없는 것과 같다. 화장실 문은 그저 샤워커튼 한 장인데... 이것은 문일까 아닐까? 지붕과 벽면 사이에도 커다란 구멍이 있다. 더운 날씨에 그나마 살랑거리는 바람이 오가는 거실은 아예 벽이 없다. 다행히 지붕은 있어 수시로 내리는 스콜을 피할 수는 있다. 1년 내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이니 집의 역할은 더위와 비를 피하는 정도면 충분한 것인 듯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실 바로 앞 마당에 파란 펌프가 있다. 물 한 바가지만 넣으면 얼마든지 많은 물을 끌어올려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바가지가 없다면 그 펌프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곳에서 손도 씻고, 양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게다가 샤워까지 한다. 옷을 입은 채 한 바가지, 두 바가지 쏟아붓다 보면 뜨거웠던 몸이 조금씩 조금씩 식어가며 스멀스멀 미소가 떠오른다.

그저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첫날이 지나갔다.

수동 펌프, 뚫린 , 어미닭 뒤를 쫓으며 쫑쫑거리는 작은 병아리들, 뉘 집 개인지도 모르는 개들 그리고 넓게 펼쳐진 초원을 하루종일 맴도는 유달리 등뼈가 도드라진 낙타같은 소들, 다행히 그들의 머리 위 하늘은 커다란 야자수 나무가 너무도 아름답게 흩뿌려져 있다. 가끔씩 쏟아지는 시원한 비는 이 평화로운 광경에 자신도 끼고 싶어 하는 질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도 질투심일까, 하릴없이 그저 그렇게 바라볼 뿐이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 집으로 향했다.

“학교보다 여기가 더 좋아요. 홈스테이 좀 더 길게 하면 안돼요?”

“우리만 치킨 주고 다른 아이들은 멸치 같은 생선만 먹어요 너무 죄송해요.”

“낚시하러 가시는 줄 알았는데 그냥 우리 배 태워준 거였어요.”

“언니들이 K-pop을 다 알아요. 같이 댄스 배틀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역시, 마음이 말랑말랑한 우리 아이들은 단 하루 만에 필리피노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K-pop을 사랑하는, 춤 노래 그림까지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지만 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꿈꾸지 못하는 예쁜 언니 세명과 남동생 두 명, 총 7명의 가족이 사는 마당도 없는 아주 작은 집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곳에 우리 아이 두 명을 더 얹을 수 있을까? 몇날며칠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환경이 어떻든 그곳의 그 가족들이라면 우리 아이들과 충분히 값진 시간을 보내리라 믿었다. 역시 내가 옳았다.

이런 것이 오랜 교사 경력의 힘이겠지 흠! 혼자서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마지막으 언덕 꼭대기 승한이네 집만 남았다. 조금 외떨어져있는 곳이지만 집 앞에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어 남자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딱이다. 그리고 대가족이라 어린 아기부터 마마 파파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적격의 가족이다.

마당 안에 들어서니 다른 가족들은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승한이만 작은 빠약에 누워있다.   

   

“잘 잤어? 하루 어땠어?”

“...한숨도 못 잤어요. 10번은 더 토한 것 같아요. 밥이 맛없는 것도 아닌데... 힘들어요 ㅠㅠ”


언제나 적극적이고 밝은 승한이의 두 눈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뚝 흐른다. 밥도 맛있고 가족들도 친절하고 농구도 했고 다 괜찮은데... 뭔지 모르게 몸이 거부하는 것 같단다. 그 먹성 좋은 승한이가 아침도 한 숟갈 먹었는데 배가 고프지도 않단다. 한국 엄마한테 전화 한 통만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승한이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돌아섰다.

승한이의 병명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래서 어떤 처방이 최선인지도 너무 잘 아니까.

모기에 물려 온 다리가 밝갛던 아이, 허벅지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가려워 미칠 것 같던 아이, 눈두덩이까지 물려 온 얼굴이 부어올랐던 아이, 화장실을 못 가 아랫배가 볼록했던 아이... 그 모든 아이들이 사흘, 나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던 듯이.

승한이의 표정도 여전히 평소 같지는 않았지만 분명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고 믿고 싶었다.

작은 아기를 안고 해맑게 웃고, 같이 농구를 하며 땀에 젖고, 생선을 팔며 같이 노래하고, 노를 저으며 파도에 맞춰 함께 춤추고, 한국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함박웃음 터트리며... 우리는 점점 ‘나’에서 ‘우리’로 바뀌어갔다.    


마지막날 밤의 Farewell Party!

겨우 다섯가정 홈스테이였는데 온 마을의 축제다. 가족 장기자랑이었는데 같이 공연한 사람들이 가족인지 이웃인지 일주일을 같이 살아도 알 수가 없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도 않다. 우리는 하나였고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다음날 아침, 우리를 학교로 데리고 갈 Blue jeepney가 도착했다. 한번 더 안고, 한번 더 사진 찍고, 한번 더 손을 흔들었다. 어디론가 뛰어가는 파파는 손에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와 우리 아이들 손에 꼭 쥐어주신다. 분명 홈스테이 집에서는 먹지 못했던 것들이다.

눈물이 난다. 아이도 어른도, 한국인도 필리피노도, 그리고 승한이도!

이것이 딱 일주일 만에 가능한 이야기인가? 물론 리얼 스토리다. 하지만 그것은 필리피노의 행복의 원천이 ‘가족’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인 듯하다.   

학교로 돌아와 깜깜한 밤이 되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들어보고 토닥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글을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진지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나의 아이들이 이렇게 예쁘게 자라 멋진 어른이 되기를 나는 오늘도 꿈꾼다.     

I LOVE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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