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조화(造花)
여행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만큼 우리가 여행을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소유하는 때는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그저 이 소유를 망가뜨리는 작업이 남아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고백한다는 일은 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곤욕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 특성상 민감한 내용을 품고 있는 것이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쌍방은 서로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든 진실한 고백은 요원해지고, 일정한 왜곡이 가미된다.
자전석 소설 역시 고백과 그 궤를 함께 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의 탈을 쓴다. 이 탈을 벗으면 소위 비문학이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전석 소설'이란 놈은 무엇인가? 문학에 작가의 파편이 들어가기 마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자전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부터가 거슬린다. 읽는 이는 여기서부터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허구의 가면을 쓴 것도 아니요, 벗은 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이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자전적 소설의 모범이라 할만한 <가면의 고백>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수필을 연상시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듯한 내용과 더불어 이 장르 본연의 모순 내지는 부조화를 온전히 인지하고 있는 서술까지, 실로 사전적 의미의 '자전적 소설'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꽤나 담담하고 객관적인 내면 묘사(자기성찰?)에도 불구하고 글귀에서 강렬하게 자아도취가 묻어 나온다. 단순히 나의 선입견 때문이거나 작가 특유의 미려한 문체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은 전반(1, 2부)과 후반(3, 4부)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이에 어떤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거나 하진 않지만, 이를 경계로 주인공과 세상의 포지션이 한번 뒤집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공수교대라고 할 수 있겠다. 전반부에서는 아직 소년인 주인공이 쏟아져 들어오는 외부 환경을 접하며 자신을 이해하는데 온 힘을 쏟는 것을 보여준다면, 후반부에서는 전반부의 성찰을 통해 비교적 정체성이 정립된 주인공이 세상을 마주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제목인 '가면의 고백'답게 작가는 주인공의 맨얼굴과 가면,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불안정하는 자아를 그려낸다. 전반부까지는 비교적 이 둘의 대비가 확실해 보인다. 지극히 일반적인 성 정체성을 연기하는 가면이 있고,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죽음 욕동과 동성애 성향이 뒤섞인 뒤틀린 성 정체성의 맨얼굴이 있다. 그의 가면은 진즉부터 꽤나 안정적인데 반해 맨얼굴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일견 선천적 동성애로 보이는 그의 컴플렉스는 꽤나 복잡하게 얽혀있다. 남성의 강인한 신체에 대한 열망은 이것이 성적 지향성인지 그저 남성성에 대한 동경인지 한없이 모호하다. 그가 말하는 '질 나쁜 장난감'인 가학적 성향 역시 그의 정상적인 도덕/사회관과 모순을 일으키면서 점차 일관성과 그 강도를 잃어간다. 이렇게 보면 전반부에 그가 보이는 비정상성은 단순히 성장기의 정신적 진통인 듯 보이기도 한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그의 맨얼굴-가면의 구분은 더더욱 모호해진다. 작가 본인의 말마따나 그의 가면은 이제 '얼굴에 파고든 가면, 살집이 박힌 가면'이다. 니체의 경구인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이 우리를 들여다본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좀 더 친숙하게는 '컨셉질하다가 컨셉에 잡아먹힌'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본성이란 것은 그리 쉽게 떨쳐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나름대로 성장한 그는 괴리의 매듭을 짓고자 수차례 다양한 이성들과 불장난을 시도하지만, 그의 본성은 쉬이 비켜서지 않는다. 아니, 이쯤 되면 이젠 뭐가 맨얼굴이고 뭐가 가면인지도 불분명하다. 해결된 줄 알았던 맨얼굴-가면의 간극은 여전히 유효하고, 주인공은 이 간극 앞에서 매번 당황하기를 반복한다. 성 정체성으로 대표되는 자아의 불안정은, 사춘기가 아닌 성인기라는 때늦은 시기에 정점을 찍는다. 전쟁이라는, 일상인 동시에 비일상이자 맨얼굴-가면의 괴리가 허용되는 기간 안에 주인공은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이는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주인공에게 유보되었던 일상이 돌아온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주인공이 두려워한 양자택일의 선택지가 들이닥치지도 않는다. 전쟁 중에, 혹은 전쟁과 함께 끝날 줄 알았던 세상은 너무나 멀쩡하다. 그는 후회 때문인지, 일탈 욕구 때문인지도 모르는 채 여름의 눈부신 태양 아래 옛 연인과 일탈을 흉내 내보지만 그조차도 실패인 듯 보인다. 여하튼,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그의 줄타기도 계속된다. 이제는 반쯤은 얼굴이 되어버린 가면을 어루만지는 그의 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자꾸 작가의 인생이 소설에 겹쳐 보이는 탓에 글에 영 몰입이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몰입이 된 건 100페이지 전후였던 것 같다. 자기모순을 명쾌하게 그려내지만 결코 건조하지도 않은 문체가 그의 블랙코미디적인 인생보다 먼저 눈에 박히기 시작했고, 3부부터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었다. 다만, 잘 읽어놓고도 선뜻 내용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엔딩만 머리에 맴돌았는데, 이제 내용 정리가 어느 정도 되고 나니 결말의 여운이 나풀거리며 사라져 간다. 이래저래 참 오묘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