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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Jul 24. 2024

(고3아들) 통학증 미제출로 선도위원회 갔다.

선도위원회 징계 사유에 대한 학부모의견서를 적어내다.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작은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학교에서 버스 통학증 번 안 냈다고 제가 선도위원회 간데요."

"뭐? 선도위원회?"

"네. 학교에서 부모님한테 연락한다던데. 아직 안 왔어요?"

"응. 안 왔어."

"엄마! 선도위원회 때문에 뭘 써야 한다는데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뭐 어쩌겠니. 괜찮아. 집에 가서 얘기하자."


내가 학교 다닐 때 선도위원회가 열린다고 하면 음주, 흡연, 기물파손, 절도등 그 이유가 살벌했다. 그런데 요즘은 버스 통학증을 내지 않아도 선도위원회가 열리는가 보다. 아이의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학교생활규정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퇴근 무렵 큰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작은 아이의 선도위원회건을 인스타를 보고 알아내 전화를 한 것이었다. 학교의 과한 규정이라며 버스 통학증을 내지 않았다고 선도위원회가 열리고 서류를 쓰며 봉사활동으로 청소를 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서류를 써야 하는 나보다 더 흥분하며 말을 하는데 달래느라 혼이 났다. 큰아들의 생각에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니 위에서 내려온 서류를 전달한 거라 자세한 건 모른다며 말씀을 아끼셨다. 담임선생님도 중간에서 곤란해하시니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학생기록부에 남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만 하면 되는 거라 서류만 써서 제출하면 되는 거라고 하셨다. 그런 담임선생님의 고충을 이해하며 수고 많으시다는 인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형과 통화한 것 같은 작은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 이건 아니에요. 내 자아가 이건 아니래요."

"뭐라고? 니 자아가 아니라고?"


참으로 황당한 상황에 황당한 대답이다. 선생님과 통화한 아들을 달래 놨는데 이제는 작은 아들까지 설득해야 했다. 식탁에 앉아 버스 통학증을 가지고 가지 않은 너의 실수를 학교의 입장에서는 지적한 것이다. 앞으로 통학증을 소지하고 다니며 이번에는 담임선생님을 곤란하게 하지 말고 서류를 적어 내자고 했다. 살다 보면 이런 억울하고 황당한 일들을 겪을 수도 있는데 괜한 열을 내지 말자고 말이다.


나에게 설득당한 작은 아이는 나에게 '학부모 의견서'를 내밀며 작성을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이 써야 하는 서류를 바라보더니 종이를 살짝 구기고 종이의 모서리를 찢는 소심한 복수를 했다.

"그냥 제출하긴 싫어요. 이렇게라도 해야겠어요."

이왕 제출할 거 멀쩡하게 제출하면 좋으련만 억울하긴 한가 보다. 주변에 친구 3~4명도 같은 이유로 선도위원회에 걸렸다는데 혼자가 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선도위원회에서 주는 서류를 처음 받아 본 나는 신기했다. 내 생애 이런 서류를 쓸 줄이야.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한 내게 이런 서류는 낯설었다. 아들 덕분에 이런 것도 쓰게 되니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받아 든 서류에는 3가지 사항이 있었다.


1. 선도위원회 징계 사유에 대한 의견

2. 요구사항

3. 기타 의견


학생이 버스 통학증을 제출하지 않은 일에 대한 학부모의 의견을 적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반성문을 고 나는 아들들의 의견들을 참고해 비장하게 따지는 의견서를 작성했다. 무슨 이런 일로 선도위원회를 올리냐며 따지고 억울하다는 내용을 최대한 포장해서 길고 빽빽하게 써냈다. A4용지에 따로 적고 싶었지만 정해주신 양식이니 촘촘하게 할 말들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글자도 엉망이고 줄도 삐뚤 했지만 내 마음은 만족스러웠다. 해야 할 말들을 글로 적었으니 속이 후련해진 것이다. 알고 보면 길길이 날뛰던 아이들보다 내가 더 불량스럽게 대처했으니 진상 학부모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학부모 의견서이지 않은가. 학교라고 바르고 예의 바른말만 건넬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면 황당했다는 의견을 낼 수 있는 용감 무식한 버전의 학부모로서 의견서를 써냈다.




1. 선도위원회 징계 사유에 대한 의견

정당하게 돈을 내고 타는 통학버스입니다. 그런데 통학증을 2번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도위원회에 올랐다니요. 아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정이 마른다지만 학교에서의 정이 가뭄과도 같네요. 씁쓸합니다.


2. 요구사항

통학증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이의 실수입니다. 아니 잘못이라고 해야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 강압적이다 못해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통학버스 내에 바코드 같은 기계를 설치하여 통학증 대신 입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쁜 아침에 아이들은 통학증을 챙기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요. 물론 통학증을 챙기는 것도 학생이 해야 할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못 챙기는 실수로 인해 선도위원회까지 간다면 미리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기타 의견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마음에 선도위원회라는 페이지를 박아주셨군요. 훗날 추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황당한 추억에 가까울 겁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학교에서 좋은 일들을 경험하기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서로의 긍정에너지를 갉아먹지 않도록 조심시키는 수밖에요. 그리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기준에 대해 의문입니다. 대체 누구의 기준으로 선도위원회를 여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너무 딱딱하네요.




담임선생님께 서류를 제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도위원회에 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선도위원회 간 거요. 제가 설명이 못된 부분이 있어요."

"무슨 설명이 잘 못 돼. 통학증 때문이 아니야?"

"통학증 때문인 건 맞는데요. 통학증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담임 선생님께 임시통학증을 받아서 제출해야 하는데 제가 그걸 안 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 생각이 많아지는데? 일단 알겠어.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아들의 학교에서는 버스 통학증을 제시하지 못하면 담임선생님께서 써주시는 임시통학증을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임시통학증을 제출하지 않으면 선도위원회에 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학교의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한 학생의 잘못이 크긴 했지만 이것이 선도위원회감인지는 아직도 애매했다. 학교의 규칙이니 학생이 따라야 하지만 과한 느낌은 여전했다. 관점은 틀렸지만 통학증 미제출이라는 요점으로 선도위원회에 간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들과 이야기하고 부모님 의견서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을 물었다.

(선생님)"어머니가 잘 못 아시고 쓰신 것 같은데."

(아들)"제가 잘 못 설명해서 그런 거예요."

역시나 부족한 이해로 쓴 글은 선생님에게 황당함을 안겨주었다.


화살판 정중앙인 줄 알고 활을 쐈는데 그게 정중앙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의 화살판을 쏜 것 같지 않은데 중앙을 모르는 상태에서 쏜 상태라 할 수 있으니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쏜 화살은 제대로 박힌 게 분명했다. 내 의견서에 대한 선도위원회 담당 부장선생님의 반응이 나름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선생님 또한 이런 일로 선도위원회에 왔냐며 좋게 말씀해 주셨다는데 주어진 봉사활동으로는 그게 아니었다.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3일 동안 방과 후 2시간씩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하니 우리가 서류로 화를 낸 결과치고 과한 느낌이었다.


아들은 말했다.

"엄마 청소 대충 해버릴까요"

"아니지. 최선을 다해야지. 또 억울한 일 당하지 말고 성심성의껏 깨끗하게 청소하고 와. 억울할 땐 힘써가며 빡빡 문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야."

"네!"

"그리고 인마! 제대로 알고 알려 줘. 촘촘하게 쓴 보람도 없이 무지한 글이 돼버렸잖아. 살짝 부끄러워."


고등학교 3학년 아들 덕분에 진상에 진짜 용감 무식한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이고 두 아들과의 소통으로 흥미로웠던 시간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내 인생에 찬란한 페이지가 박아진 것이니 나중에 꺼내 볼 수 있게 잘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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