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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07. 2023

아들의 첫 버스킹

가능성을 보다

“엄마! 나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아들은 내게 초등학생 때부터 그런 말을 했었다. 인터넷 게임방송으로 유명한 대도서관을 좋아했던 아들은 유명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며 컴퓨터게임에 몰두했었다. 다른 부모님들께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인터넷게임을 좋게 보지 않았던 내게 방송을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도서관이 누군지는 궁금하여 관련 책을 찾아보며 알아 두긴 했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는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아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한창 예민한 중학생 아들은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래 중2병이 시작된 거군.     


그렇게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별다른 목표도 없이 게임만 하는 아들이 내심 걱정이 되었다. 철학관을 가게 된 계기도 아들의 진로문제 때문이었는데 철학관 선생님은 아들에게 말을 잘하고 입에서 빛이 나는 사주라 학문을 익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처럼 에너지가 약한 편이라 자주 지칠 수 있으니 재촉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그간 아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움직이라고 다그쳤으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공고를 진학한 아들은 2학년 1학기 때 갑자기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공고를 다니는 동안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 느꼈고 여기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고 말이다. 2학년 1학기면 고등학교의 절반이 지나간 것이다.      


“엄마! 나는 방송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요. 여기서는 답이 안 보여요.”

럼 전학 가서 공부 열심히 해. 대학을 가야 하니까 준비도 하고. 되도록이면 방송과에 들어가서 경험도 좀 해봐.”     


아들의 방송을 하고 싶다는 말이 간절하게 들린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진심인 것 같았다.

하고 싶다는 게 생겼다는 것이 어딘가. 아직 방송관련해서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만으로도 좋았다.      


전학서류문제로 일반 고등학교로 아들과 간 날, 선생님들은 이 아이를 궁금해하셨다. 일주일 후면 기말고사가 있는데도 갑자기 전학을 온 학생이 불량학생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일 것이다. 아들의 얼굴을 보면 안다.

공부는 못 하지만 바른 아이라는 것을.

전학서류에 아들의 장래희망으로 쓴 글이 생각난다.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될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 있게 저 글들을 써 내려갔다. 내가 놀랄 정도로. 그 정도로 하고 싶니?     

어느 날 밤에 철학관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선생님께서는 가수 임영웅이 나온 경복대라는 학교가 있는데 그곳 실용음악과에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아들의 진로문제에 신경을 써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아들! 너 임영웅 나온 대학교. 경복대학교 실용악과라고 알아?”

“아뇨”

“그럼 실용음악과는 어때? 노래하고 작사, 작곡하는 건데 어때?"

“어?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건데. 지금 할 수 있어요?”     


의외였다. 당시 아들은 머리를 길러서 누가 봐도 예술인처럼 보이는 모습을 하고 다녔으나 그런 끼는 보지 못했었다. 뭐라도 해라라는 심정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진짜 하고 싶다니.    

  

아들은 전학한 후에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타를 사달라고 하기에 사주기는 했지만 연습하는 것을 보지 못한 나는 방의 인테리어용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틈틈이 독학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들의 기타는 내가 처음 사주게 되었다. 중학생 때 제발 뭐라도 해라라는 심정과 기타 잘 치는 성당오빠로 만들고 싶어서 권한 것이었다. 학원을 등록하고 2~3번 다녔지만 아이아빠가 아들의 기타를 부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다. 겨우 뭐라도 하나 싶었는데 산통이 깨진 것이다.

다시 기타를 사주긴 했었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아는 언니에게 기타를 줬었는데 전학 후에 다시 사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실용음악학원을 등록하게 되었다.

이혼을 한 후라 내게는 크게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취미반으로만 등록했었는데 학원 선생님께서 고등학교 3학년에게 취미보다는 진학을 목표로 하는 입시반을 하는 게 더 좋다 하셨다.

맞는 말씀이셨다. 이제 시작한 아들에게 몇 개월의 준비만으로 대학을 간다는 게 쉽지 않아 보였지만 다른 길도 없었다. 무엇보다 진정한 목표가 생겼다고 하니 엄마로서 투자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1월 10일부터 음악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음악학원은 정말 열심히 다녔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버스로 2번을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기타를 메고도 열심히 다녔었다. 보컬레슨을 받고 온 날이면 나에게     


“이렇게 힘주며 소리를 내야 한대.”

“오~ 이렇게?”

“아니 이 부분을 힘주면 된다는데요. 저도 연습하고 있어요.”     


신이 나서 재잘재잘 이야기도 잘해주었다.

3개월 뒤에 아들은

     

“엄마! 나 버스킹 하게 됐어요.”

“어떻게”

“음악학원 선생님께서 버스킹 나가자고 하시는데 내가 버스킹에 나갈 실력이 된다는 거?”     


너무 좋아했다. 그러면서 기타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엠프를 꽂아야 하는데 내가 사준 기타는 그런 장치가 없었다. 학교 축제 때도 기타 엠프를 꽂고 노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타를 알아보았고 40만 원 정도 하는 기타를 사게 되었다. 본인이 보태겠다며 매달 용돈에서 차감해 달라 했지만 어찌 그러겠는가.

엄마가 사줄 테니 미안해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만 했다.      


첫 버스킹은 장승포 수변공원에서 하게 됐다. 일을 마치고 작은 아들과 공연을 보러 가야 했기에 열심히 달렸지만 아들의 순서는 놓치고 말았다. 4월 달에 버스킹을 했는데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했다. 아들은 이무진의 ‘누구 없소’를 기타 치며 노래했다.

듣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아들도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날씨가 추워서 생각보다 잘 못한 것 같아요.

“괜찮아! 처음이쟎아.”

“엄마! 그런데 어떤 아이가 씽씽카를 타고 내 앞에 딱 오더니”

“아까 노래하던 그 엉아 맞아?” 하더란다.

그래서 맞다고 했더니


엄지손을 보이면서

“엉아 노래 짱! 멋져”


하며 씽씽카를 타고 가더란다.     

기분이 좋았다. 하늘에서 어린 천사를 보내주시어 아들의 첫 버스킹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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