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 버스킹

가능성을 보다

by 글쓰엄

“엄마! 나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외쳤던 아들의 말이다. 인터넷 게임방송으로 유명한 대도서관을 좋아했던 아들은 유명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며 컴퓨터게임에 몰두했었다. 다른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인터넷게임을 좋게 보지 않았던 내게 방송을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는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아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한창 예민한 중학생 아들은 방문을 닫아버렸다. 심각한 중2병.


별다른 목표 없이 게임만 하는 아들이 내심 걱정 됐다. 철학관을 가게 된 계기도 아들의 진로문제 때문이었는데 철학관 선생님은 아들에게 말을 잘하고 입에서 빛이 나는 사주라고 했다. 학문을 익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좋다고 하시면서 대학진학을 권하셨다. 그리고 나처럼 에너지가 약한 편이라 자주 지칠 수 있으니 재촉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니 그간 아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움직이라고 다그쳤는데 본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공고를 진학한 아들은 2학년 1학기 때 갑자기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공고를 다니는 동안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 느꼈고 여기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고 말이다. 2학년 1학기면 고등학교의 절반이 지나간 것이라 조금만 참으라고 말리기도 했다.


“엄마! 나는 방송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요. 여기서는 답이 안 보여요.”

아들의 방송을 하고 싶다는 말이 간절하게 들린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진심이었다.

하기야 하고 싶다는 게 생겼다는 것이 어딘가. 아직 방송관련해서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만으로도 괜찮았다.


전학서류문제로 일반 고등학교로 아들과 간 날, 선생님들은 이 아이를 궁금해하셨다. 일주일 후면 기말고사가 있는데도 갑자기 전학을 온 학생이 불량학생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였다. 하지만 아들의 얼굴을 보면 안다. 공부는 못 하지만 바른 아이라는 것을.


전학서류에 아들의 장래희망으로 쓴 글이 생각난다.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될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 있게 저 글들을 써 내려갔다. 내가 놀랄 정도로.


저녁에 철학관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께서는 가수 임영웅이 나온 경복대라는 학교가 있는데 그곳 실용음악과에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기타를 치는 아들에게 관심이 있는 학과가 아닌가 하며 추천해 주신 거였다.

“아들! 너 임영웅 나온 대학교. 경복대학교 실용음악과라고 알아?”

“아뇨”

“그럼 실용음악과는 어때? 노래하고 작사, 작곡하는 건데 어때?"

“어?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건데. 지금 할 수 있어요?”


의외였다. 당시 아들은 머리를 길러서 누가 봐도 예술인처럼 보이는 모습을 하고 다녔으나 그런 끼는 보지 못했다. 뭐라도 해라라는 심정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대뜸 낚아채 버리니 당황스러웠다.

아들은 전학한 후에도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타를 사달라고 하기에 사주기는 했지만 연습하는 것을 보지 못한 나는 방의 인테리어용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틈틈이 독학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기타는 내가 처음 사주게 되었다. 중학생 때 제발 뭐라도 해라라는 심정과 기타 잘 치는 성당오빠로 만들고 싶어서 권한 거였다. 학원을 등록하고 2~3번 다니긴 했지만 아이 아빠가 아들의 기타를 부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다. 겨우 뭐라도 하나 싶었는데 산통이 깨졌다.

다시 기타를 사주긴 했었지만 쳐다보지 않길래 아는 언니에게 기타를 줬었다. 그런데 다시 사 달라니 의외였다.

집에서 버스를 두 번 타야하는 곳으로 실용음악학원을 등록하게 됐다.

당시 내게는 큰 여유가 없었서 취미반으로만 등록했었다. 하지만 학원 선생님께서 고등학교 3학년에게는 진학을 목표로 하는 입시반이 낫다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이제 시작한 아들에게 몇 개월의 준비만으로 대학을 간다는 게 쉽지 않아 보였지만 다른 길도 없었다. 무엇보다 진정한 목표가 생겼다고 하니 엄마로서 투자가 필요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1월 10일부터 음악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아들은 음악학원을 정말 열심히 다녔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버스를 두 번 타고 가야 하기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타를 메고도 열심히 다녔었다. 보컬레슨을 받고 온 날이면 나에게

“이렇게 힘주며 소리를 내야 한대요.”

“오~ 이렇게?”

“아니 이 부분을 힘주면 된다는데요. 저도 연습하고 있어요.”


신이 나서 재잘재잘거렸다.

3개월 뒤에 아들은

“엄마! 나 버스킹 하게 됐어요.”

“어떻게”

“음악학원 선생님께서 버스킹 나가자고 하시는데 내가 버스킹에 나갈 실력이 된다는 거죠?”


너무 좋아했다. 그러면서 기타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엠프를 꽂아야 하는데 내가 사준 기타는 그런 장치가 없었다. 학교 축제 때도 기타 엠프를 꽂고 노래해야 한다고 했다. 40만 원 정도 하는 기타를 아들에게 전해주니 본인 용돈에서 차감해 달라고 한다. 엄마가 사줄 테니 미안해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로 대신하며 아들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첫 버스킹은 장승포 수변공원이었다. 일을 마치고 작은 아들과 공연을 보러 가야 했기에 열심히 달렸지만 아들의 순서는 놓치고 말았다. 4월에 버스킹을 했는데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했다. 아들은 이무진의 ‘누구 없소’를 기타 치며 노래했고 생각보다 빠른 순서로 무대에 섰다. 직접 듣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아들도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날씨가 추워서 생각보다 잘 못한 것 같아요.”

“괜찮아! 처음이쟎아.”

“엄마! 그런데 어떤 아이가 씽씽카를 타고 내 앞에 딱 오더니 아까 노래하던 그 엉아 맞아?” 하더란다.

그래서 맞다고 했더니


엄지손을 보이면서

“엉아 노래 짱! 멋져”

하며 씽씽카를 타고 가더란다.

아들의 첫버스킹을 어린 천사를 통해 축하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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