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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21. 2023

아들과 싸우고 진정한 소통을 배웠다.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힘들까 봐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리를 찾던 중에 내가 일하는 문구점에 자리가 비게 되어 사장님께 부탁하게 되었고 2주에 한 번씩 토요일에 근무했다. 물론 나와 같이 근무하는 조였다.

     

토요일에 근무하는 날은 평일보다는 조용해서 아르바이트생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학습준비물로 물건이 많이 오는 날에는 힘들겠지만 대체로 조용한 꿀알바라 할 수 있다.

아들과 같이 일을 해서 좋았던 점은 내가 하는 일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엄마가 집에 오면 왜 뻗는지 알겠어요.”     


집에 와서 뻗어버리는 엄마가 왜 그런지를 눈으로 봤기 때문에 나를 더 이해해 주었다.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들과 나는 출근을 했고 물건이 많아 정리해야 할 것도 많은 날이었다. 그때는 사장님도 업체납품 때문에 물건들을 많이 가져온 날이어서 신경 쓸 게 많았다. 물품 정리 후에도 쉴 틈 없이 아들에게 할 일을 안겨 줄 필요가 있었다. 사장님 앞에서 할 일없이 놀고 있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스티커매대에 있는 스티커를 닦아서 다시 진열시키는 일을 시켰다. 평소 정리정돈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냥 보아도 괜찮은 매대인데 다시 진열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평소 말을 잘 듣던 아들은 갑자기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정리하라는 거예요?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은데 지금 안 해도 되잖아요.”

“그냥 해.”


나는 다른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일이 가르쳐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장님 앞에서     


“아니. 조금 천천히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급하게 하려고 해요. 앞에 물건도 저번에 본 거랑 달라진 게 없는데.”     


라며 흥분하는 것이 아닌가.

‘저것이 미쳤나

사장님 앞에서 흥분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어 진땀을 뺐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알겠냐마는 일반직원이라면 상사의 말에 저렇게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랑 같이 일하는 아들의 투정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들과 일하는 것이 일에 지장을 줄까 봐 사장님 앞에서는 조심하려 했었다. 나와 일할 때는 괜찮지만 사장님 앞에서는 돈값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사장님은 잠깐 계셨다가 가셨지만 가실 때 한 말씀하셨다.

“아들이 아르바이트가 처음인 거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속상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엄마를 생각해서 천천히 하라고 말했던 것일 텐데 일에서만큼은 냉정했어야 했다.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아들을 나는 이해하지만 남들에게는 철없이 보이는 행동일 수도 있었기에 더 속상했다.


그날 나는 아들에게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번 행동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차에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 아까 사장님 앞에서 엄마에게 했던 말 때문에 서운했어.”

“뭐가요?”

“매장에서 엄마는 관리자고 너는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야. 아르바이트생은 관리자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하고. 그런데 너는 툴툴거리며 하기 싫어했어. 그건 일할 때 좋은 자세가 아니야.”

“엄마는 뭐 차분하게 이야기했어요?”     

"엥?"


아들은 지난 일들을 꺼내며 나에게 서운한 것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서만 말했는데 아들은 과거의 상처까지 다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고 싹싹하게 말해 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챙겨야 할 것 도 많고 혼자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며 살았기에 장군 같은 스타일이었다. 어린 아들에게는 이런 씩씩한 엄마가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들의 말에서 예전 나의 상처가 떠올랐고 미안하다고 했다.    

  

“너를 서운하게 한 것들을 잘 모르겠지만 네 마음이 그렇다니 정말 미안하다. 엄마도 되도록 좋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혹시라도 내 말투가 네게 상처가 된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줘”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어도 지난날의 서러움이 말 한마디에 녹아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차 안에서 엄청나게 싸웠다.

참는 것에 한계를 느낀 나는 갑자기 서러움이 폭발하여     


“자꾸 나 보고만 씩씩하게 살려고 하지 마.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냐. 엄마도 힘들어. 여기를 가도 나는 중간이고 저기를 가도 중간인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아?”     


우리는 둘 다 눈이 뻘게지도록 울며 싸웠다. 주차한 차 안에서 싸운 지 1시간 정도 되었을까? 너무 진이 빠지고 힘들어서 아들에게     

“먼저 올라가라”     


아들이 차에서 먼저 나가고도 한참을 있었다. 집으로 바로 가기가 싫었다.

어디라도 다녀올까 하다가 너무 지친 상태라 운전할 힘이 없었다. 차에서 마음을 추스른 뒤 집으로 올라갔는데 아들이 없었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되었지만 내 마음도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순간 카톡이 왔다. 아들이었다.


평소 단답형 문자만 주고받던 아들에게 장문의 문자를 받았는데 카톡내용엔 아들의 고뇌와 미안함이 묻어있었다.

긴 글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길을 걸으며 생각하니 나에게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들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는데 나는 내 마음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 상처로 엄마를 괴롭혔다고. 엄마 잘못이 아니라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를 너무 존경한다고 용서해 달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와~ 그때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들과의 말다툼으로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여서 기분이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그 문자만으로도 충분히 용서할만했다. 엄마인 나를 존경한다니 아들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아들! 그렇게 생각해 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는 하루만 어색해했고 나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지 가득 8장을 채운 봉투를 아들의 책상 앞에 두었고 아들은 말없이 읽었다. 우리는 진정한 화해를 했지만 그 주에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나는 아들과의 다툼을 통해서 크게 싸우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신사적으로 목소리만 높인 말다툼일 경우에만 말이다. 싸움의 순서라는 것이 말로 다투다가 몸싸움이 나고 무엇이 날아가는 상황들이 일반적이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들을 보아왔기에 싸움 자체를 너무나도 싫어했다. 내게 싸운다는 것은 그 관계가 끝나는 것을 의미할 정도였다.    

      

그런 내게 서로에게 서운했던 것을 울고 불고 소리치며 싸우고도 서로 화해하는 과정으로 더 깊은 이해를 이루어 낸 이 싸움의 과정이 놀라웠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부부싸움도 이렇게는 안 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싸움이어도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겠구나라는 깨달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런 과정도 소통의 하나이구나. 나는 배웠다.

물론 서로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오래 묵은 감정이라면 묵직한 무게 때문에 소리가 클 것이다. 그 무게들을 떨쳐 내고 서로 이해하는 소통을 이룰 수 있다면 이런 싸움도 해 볼만하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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