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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23. 2023

무대에서  노래하는 아들을 보다.

거제 K팝공연

"엄마! 음악선생님께서 버스킹 있데요."


9월 17일 토요일에 공연이 생겼다며 아들이 내게 했던 말이었다. 다행히 그날은 내가 쉬는 토요일이라서 같이 갈 수 있었다. 그 공연에서는 듀엣곡까지 2곡을 부른다고 했다. 이무진의 '누구 없소'와 학원에서 같이 배우는 여학생과 함께 부르게 될 팝송곡이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일찍 눈이 떠지며 괜스레 내가 떨렸다. 묵주를 들고 아침해를 보며 아들이 공연을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공연은 오후 6부터 시작이었지만 우리는 4시에 도착했다. 공연관계자분과 연락해서 인사도 해야 했고 무대분위기도 익혀야 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지만 6시쯤에는 괜찮아진다는 날씨예보에 공연준비는 계속되었다.


공연장에 도착하고 보니 청소년수련관의 거래처 주무관님을 만나게 되었다. 여긴 웬일이냐며 물어보시길래 아들이 공연을 해서 따라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연관계자분도 만나 뵙게 되었고 기다리는 동안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 신경 쓸 게 많아 보였기에 자잘한 일거리들은 내가 자처해서 도와주게 되었다. 기념품으로 나누어줄 티셔츠들을 비닐에 넣거나 아이들 간식이나 생수를 나누어주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난 그날 스텝이 된 것 같았다.

"난 스텝입니다."


내가 티셔츠를 개고 있으면 아들은 비닐에 넣는 일을 했는데 공연관계자분께서 아들에게 공연하러 왔는데 이런 일까지 하냐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일하지 말고 연습하고 있으라고 했지만 아들은 말없이 나를 도와주었다. 작은 일도 도와주는 아들이 고마웠고 미안했다.

"아들! 이런 일은 나만 해도 되는데 도와줘서 고맙다."

 

아들의 순서는 제일 마지막이었고 리허설을 준비하는 동안에 다른 공연관계자분께서 인사를 해주셨다.

"유튜브에 나온 거 보고 우리가 초청했어요."

"아~ 네"

"싱어게인 이주혁 씨 알죠? 우리 청소년수련관팀에서 함께 했었어요."


나는 당시 그분을 잘 몰랐지만 지금 초청된 무대가 가벼운 버스킹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큰 무대와 K댄스동아리팀들의 경연 속에 초청된 유일한 노래였고 같이 듀엣곡을 부르기로 한 여학생은 참석하지 못해 혼자 2곡을 불러야 했다.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공연은 진행되었고 리허설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혹시 한곡 더 준비해 줄 수 있겠어요? 앵콜요청이 나오면 한 곡 더 해주세요."


총 3곡을 해야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앵콜곡에 고민하다 비가 오는 날에 잘 어울리는 곡인 '비와 당신'을 부르기로 했다. 연습을 한 게 아니라서 걱정했지만 그냥 해보기로 했다.  

아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하는 사람치고는  담담해 보였다. 떨린다고 말은 하는데 보기에는 그리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의 순서가 다가올수록 내가 떨렸지만 아들 앞에서 대담한 척했고 씩씩한 척했다.


"아들! 준비한 거 하고 즐겼으면 좋겠어"


아들의 공연은 시작되었고 유일한 청일점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아들의 모습을 정면에서 보지 못하고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인사하며 노래하는 아들이 멋져 보였다.

'이런 공연을 내가 보게 되다니'


좋은 분위기에 앵콜곡을 불렀고 완벽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한 무대였다. 무대를 마치고 나오는데 몇몇 학생들이 아들에게 사인을 요청했고 인스타 주소를 공유했다.

"세상에" 


우리가 생각한 무대보다 훨씬 큰 무대에서 엄청난 경험을 하게 해 준 공연이었다. 공연관계자분께서도 좋은 보이스라고 칭찬해 주셨고 고등학교 3학년이라 계속 함께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셨다. 이 공연은 분명 아들에게 좋은 기회였다. 이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했다.


모든 공연을 마치고 아들은 아쉬워했다. 무대에서 떨지는 않았지만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이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닐 것인데 아들은 운이 좋았다. 노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에게 이런 무대는 큰 영광이자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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