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작은 아들의 목표는 3D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해 오던 아들의 행동을 본다면 적성에 맞는 진로라고 판단된다. 책을 보며 펜을 잡는 것보다 컴퓨터를 보며 마우스를 잡는 날이 많았으니 그 분야의 경험으로 따진다면 충분히 이해되는 결정이다.
하지만 영상을 만드는 것도 생각을 하고 공부를 해야하는 일이다. 학교 공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경험과 그에 수반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인데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 아들의 행동은 내 믿음에 부합하지 못했다. 게임만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습에 장난섞인 잔소리만 나왔으니 작은 녀석의 목표에 대해 늘 의심스러워 했다.
2025년 대학 수시 원서를 넣는 것도 그랬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수시를 응시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였다. 그 성적으로 대학원서는 넣을 수 있는 거냐며 받아주는 학교가 있는 거냐며 물어보곤 했다. 오히려 아들은 해당 과에 자신이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의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고 원서를 넣었다. 어디서 그런 똥배짱이 숨어 있는지 대단한 용기의 소유자라 생각했고 우리 때와 달라진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공부는 못해도 당당한 아들의 모습에 밥은 굶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영상에도 진심이란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됐다.
수시 지원의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지원한 3곳 모두 예비를 달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학의 예비순서가 11번이었다. 거의 합격이라고 봐도 될만한 숫자로 추가합격이 확정될 때가지 자중해야겠지만 그에 관련된 준비는 할 필요가 있었다.
수시결과로 대학에 갈 확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수능 시험을 칠 준비도 해야했다. 시험을 앞두고도 여유로운 아들의 행동을 보고 물었다.
"아들. 내일 수능인데 시험지 받고 풀 수 있겠어?"
"예? 저는 수능시험 1교시만 치고 도망칠 건데요." 당당한 표정으로 신나게 말하는 아들에게 말했다.
"뭐라카노. 그러다 잡히면 어쩌려고. "
"잡으러 오시는 선생님보다 빨리 뛰어야죠. 고등학교 3학년을 기념할 추억거린데 그 정돈 달려야죠. 아무튼 수능시험 도중에 나오는 게 내일 제 계획이예요."
지랄도 풍년이라더니 말인가 글인가 싶다. 하지만 진짜 실행할 것 같은 다부진 표정에 걱정이 된 나는 외쳤다.
"이 시끼야. 선생님들 곤란하게 하지 말고 그냥 수능시험 치러 가지마. 생각만해도 쪽팔려."
다행히 아들의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보수적인 시각의 내게 저런 발상 자체는 독특함이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같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지만 차분하고 정의로운 아들이다. 만년 꼴찌였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많고 대학부터 진정한 공부가 시작된다고 하니 감사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목표는 정해졌다. 큰아들은 노래를 하고 작은 아들은 영상을 만들며 엄마는 글을 쓰는 것으로 말이다. 이제 시작이고 그런 과정에 있지만 충실하고 끈질기게 해냈으면 좋겠다.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작은 아들의 결과로 믿음이 생기면서 아들에게 해 준 말이 있다.
"아들. 네가 영상쪽으로 공부한다고 하니 넌 우리의 그림을 완성해 줄 마무리 선이자 기둥인느낌이다. 왠지 든든해. 이리 저리 날뛰는 엄마와 형을 붙잡아 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니 잘 배워 봐. 천천히 가도 되니까 욕심내지 말고 매일 꾸준히만 가."
아들은 이 말을 좋아했다. 대학생이 되기전 엄마에게 부탁받은 숙제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 표정을 본 나는 배움에 대한 책임을 수시로 인지시키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 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