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은 초등학생 입맛이다. 큰아이는 이유식을 잘 챙겨줘서 그런지 많지 않은 양이라도 골고루 잘 먹는 편인데 작은 아이는 편식이 심하다. 일 한답시고 대충 먹인 대가치곤 미안할 정도로 야채를 싫어한다. 그래서 볶음밥을 주로 해줬는데 이젠그마저도 질려해 손사래를 친다. 하기야 고등학생 정도면 주는 밥만 먹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컸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걸 찾게 된다. 떡볶이도 작은 아이가 만든 게 더 맛있으니 나보다 음식을 잘한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많이 아팠고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항생제로 키웠다시피 했기에 건강이 걱정이었다. 잔병치레하면 큰 병은 없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어렸을 때 못 챙겨 먹인 게 걸려 늘 미안하다. 그렇다고 지금 잘 챙겨주는 건 절대 아니다. 있었던 음식솜씨마저도 없어지는 통에 만들어 주는 음식마다 실패다. 그래서 배달을 시키거나 본연 그대로의 자연식을 식탁에 올려놓으면 뱀 나오겠다고 난리다. 몸에 좋은 거라며 먹으라 해도 라면으로 한 끼를 해결하니 고민스럽다.
소식하고도 건강한 연예인들을 TV로 보며 적은 음식량에 놀라곤 했다. 저렇게 적게 먹고도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에 다행으로 생각하고 소식도 괜찮은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이 먹어야 힘을 쓴다는 고정관념에 무조건 먹이려 했는데 그것도 정답은 아닌가 보다. 각자의 정해진 양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학 때 아이들이 하루종일 먹은 음식이 콘푸라이트이고 내 몸이 파김치라면 몸에 좋은 음식을 생각하게 된다. 정성을 들여 만들어주면 좋으련만 내 몸은 식탁의자를 향하고 무슨 음식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냉장고만 째려보다
"뭐 먹을래?"를 외치면
"아무거나요. 배 안고파요."
신기하다. 고작 그것만 먹고도 하루를 버틸 수 있다니. 식비를 아껴주어 감사하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크다.
'제발 좀 잘 챙겨 먹어다오. 그리고 엄마밥도 좀 챙겨다오.'
학기가 시작되고 주말에 큰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목소리가 변해있었다. 평일연습에 무리를 했나 걱정이 되어 맛있는 거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며 배즙을 신청해 주었다.
"아직 어려서 괜찮아요."
"아들아! 너는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니 몸은 성질낼 수도 있단다. 몸이 성질내기 전에 배즙으로 달래줘."
우리는 몸이 아프면 무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맞다. 내 체력보다 그 이상을 써버리면 몸에 탈이 나면서 아프다.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으로도 그렇다. 육체적으로 무리를 하면 몸이 아프면서 남들에게 표시라도 나지만 마음이 아프다면 본인이 자각하기 전까지 표시 나지 않는다. 표시 나지 않아 본인도 아픈 걸 모른 채 병을 키우는 것이라 더 위험하다. 나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체크해 주며 몸과 마음이 화를 내기 전에 좋은 걸로 달래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