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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Oct 24. 2023

맏이병이었구나!

내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것 때문일 수 있겠구나.

집안의 첫째로 살면서 느꼈던 상황들에서 나는 가끔 힘들어했다. 어릴 때 몰랐던 것들을 크면서 알게 되니 한꺼번에 아팠다. 원인도 몰랐던 힘듦을 어린 시절 나를 바라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맏이병을 앓았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어른행세하듯 살아왔기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나를 위해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맏이들의 공통점은 나와 내가 아는 맏이들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지극히 개인적 일 수 있다. 정확도를 나열하기보다는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적은 것이다. 이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가진 마음의 병이기에 치유하며 살고 싶다.


맏이병은 자신보다 타인을 위하는 비율이 많은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안의 첫째가 그런 경우가 많다는 뜻이지 첫째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맏이병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맏이병은 나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고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이들로 책임감이 높다. 하지만 희생을 당연시 여기존중받지 못하며 늘 이해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받은 억울함이 시작이 되어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 상태를 말한다. 그 억울함들을 타인에게 잘 표현하면 괜찮은데 괜히 착한 병에 걸려 분노를 참고 삼키다가 생긴 마음염증이라 생각한다. 나보다 타인을 너무 심하게 생각해 주다가 마음에 병이 생긴 것이리라.


본인이 어렵고 힘들지 않다면 맏이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맏이들은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힘든 상황이 왔는데도 주변 같은 상황이라면 마음의 상처는 염증을 일으킨다. 감기가 심해져서 독감으로 열병을 앓는 것이다.  


첫째는 DNA가 다른 것일까? 아니면 맏이로 살아가면서 체득하게 된 눈치일까? 내가 장녀로서 느낀 바로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육아가 처음인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첫아이였기에 최선을 다하며 사랑과 보살핌을 줬겠지만 서툴렀을 것이다. "첫째는 시험대상이다."란 말처럼.


둘째가 태어나면서는 부모님의 에너지가 둘째에게 쏟아지는 것을 보며 예전과 다른 분위기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인 것이 큰아이의 입장에서는 생존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고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도움들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과 같은 관심과 사랑이 그리워 혼자 애쓰는 것이다.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하면 동생들을 챙기며 분위기를 살폈기에 오감이 발달하며 예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속상한 말들을 받아내는 것은 맏이들의 차지였을 것이고 속상한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감정쓰레기통이 돼버린 것이다. 그런 부모님에게 도움이 되거나 불편한 상황은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겨도 최대한 혼자 고민하며 숨기다 감정표현에 서투른 사람이 되고 만다. 혼자서 척척 해내는 아이로 보이지만 내적인 고민들로 생각은 늘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며 감정적으로 힘들어한다.


집안이 아니라 밖에서는 또 어떤가. 내 동생이 누구와 싸워서 울고 들어오는 상황이라도 생긴다면 내가 맞고 온 것보다 더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동생을 지키야 했기에 장군 같은 씩씩함을 가져야 했을 것이고 울고 있던 동생을 달래주고 부모님의 속상함을 대신했기에 공감능력도 뛰어나게 됐을 것이다.


어린 동생들도 첫째를 따른다. 부모들보다도 형이나 누나를 더 편안해하며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첫째들은 본능적으로 동생들을 챙기며 첫째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한 행동들을 했을 것이다.


"언니가 돼가지고 그것도 못해줘?"

"누나가 돼가지고 동생한테 그것 하나 양보 못해?"

"형이니까 네가 먼저 해"

맏이들이라면 한 번씩은 들었던 말일 것이다.


동생들과 놀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맏이가 챙기지 못해서 그런 거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늘 신경을  을 것이다. 같은 어린아이로서 긴장 속에 살았을 것이고 그것이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맏이들의 뼛속에 새겨졌을 것이다.

태어나고 보니 첫째였는데. 내가 첫째로 태어나고 싶었을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데 말이다.


남자와는 달리 여자아이라면 집안의 소소한 일들도 모두 도와야 했을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이나 주어진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주변 챙겨야 하는 요소들이 많다는 거다.


이런 기본적인 상황에서도 개인이 가진 기질에 따라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이타적인 성향의 아이였다면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신을 더 내려놓았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는 아이라면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부정의 말들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과 극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시소의 한쪽처럼 양쪽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좋은 상황이라 말할 수 없다.


시소처럼 균형이 깨진 상태일 경우 마음의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억울한 순간들이 생각날 것이기 때문이다.


자라온 환경으로 새겨진 맏이는 남들 보기엔 똑똑하고 일을 잘하며 배려심이 많다고 칭찬받는다. 부모님 대신이라는 말로 맏이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해내느라 나도 모르게 어른아이가 되고 만다.

동생들보다 일을 많이 했고 챙기는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말들에 거부하지 않고 더 잘하려다가 본인을 힘들게 하는 경우들 많다. 주변에서 칭찬을 해 주 인정받는 것 같아서 맏이병에 걸릴 줄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런 성향의 맏이들이 결혼을 한다면? 끔찍하게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시댁식구들을 대한다. 친정도 힘든데 시댁까지 합해지고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니 내 뼈를 갈아서 챙긴다고 말할 수 있다. 맏며느리가 아님에도 늘 집안의 대소사를 진심으로 챙기다 호구가 되고 만다. 신랑이라도 나를 보호해 주면 좋겠지만 늘 받아버릇한 남의 편은 되레 내게 희생을 강요한다. 내가 남의 편 버릇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잘해주면 남의 편도 나를 생각해주어야 하는데 또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넘어가다 보니 내가 바보가 되는 것이다.


나는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 참았던 과거의 일들이 생각나며 화가 나기 시작하여 주최할 수 없는 분노로 힘들었다. 나의 분노로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하지만 이혼을 하고 친정을 가지 않는 행동을 함으로써 내 마음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자극으로부터 멀어졌고 멈춤으로써 나는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오히려 복수한다는 마음이 들어 통쾌하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시소의 균형을 맞추어가다 보니 굉장히 이성적인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용서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선도 필요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행동해 볼 것이다.


나는 맏이병이라는 마음의 병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타인을 생각해 주다가 나의 삶에 집중하지 못해서 생긴 마음의 병이니 나부터 사랑하고 존중하며 알아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예전을 나를 돌아보며 서운했던 그때의 나를 위로해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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