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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Oct 31. 2023

치유의 일기를 써야겠다.

나를 돌아본다.

수녀님께서 알려주신 치유의 기도는 나의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게 했다. 알 수 없는 힘듦이 쌓이면서 마냥 씩씩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고 행복할 것만 같던 일상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은 나를 당황스럽게 했고 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어렸을 때는 누가 야단을 쳐도 독하게 울지도 않고 버티던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슬퍼지면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경험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힘들다는 이유를 모르고 살아서일까?

심리학 관련책들을 골라서 읽고도 잠시만 이해했을 뿐 내 힘듬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성당을 다니며 수녀님과 대화를 나누며 갑작스럽게 흘린 눈물로 수녀님은 나를 알아봐 주셨다. 겉으로 보기에 밝았고 아무렇지 않게 보였던 나였기에 수녀님은 의아해하셨다. 성당 자모회 회장으로 봉사하던 나에게 계속 관심을 보여주셨고 마음의 치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치유의 기도는 쉽지 않으며 고통스럽지만 마음의 치유를 돕는다고 하시니 하고 싶었다. 그 당시 나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계속 힘들어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방법을 알려 주셨다.


우선 첫 번째로 수녀님은 나에게 어렸을 때 생각나는 게 무엇인지부터 적어보라고 하셨다.

사실 어렸을 때 생생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의 장면들이 있었다. 이 장면들을 적으면서 나를 알아갔다.

두 번째 단계로 수녀님은 그 장면에 있는 나에게로 가서 지금의 내가 위로해 주라고 하셨다. 어른들의 따뜻한 말로 어린 나에게 위로를 해 주고 안아주라는 말씀이셨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치유해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눈물이 나는 것은 마음의 염증을 빼내는 것이니 참지 말고 마음껏 울라고 하셨다.

'눈물을 참지 않는다.'


참신하다. 나는 눈물이 나려 해도 그 눈물을 참으며 괜찮은 척 지내왔는데 내 행동이 잘못된 방식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실제로 눈물은 스트레스호르몬도 같이 배출된다고 하니 칭찬처럼 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를 알고 이해해 주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면 바로 치유가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상황들을 인지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들이 생기며 나를 위해 버려야 할 선택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치유의 기도는 이어가질 못했다.


하지만 그때와 상황이 다르고 마음도 편안한 요즘 확실한 치유를 위해 6~7년 전에 시작해 멈춰버린 치유의 기도를 마무리할 필요성을 느낀다. 맏이병이라는 마음에 병명도 알았으니 나를 돌아보며 치유의 일기를 써보려 한다.  



치유일기의 형식은 이렇게 정했다.


1. 생각나는 내 과거의 기억을 적는다.

2.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편지를 써준다.
-지금의 내가 어린 나에게 주는 위로의 편지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위로가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괜찮다'라는 말만 써도 좋을 것 같다.

3.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
-이 짧은 한 줄이 너무 힘들었다. 기도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나를 위한 따뜻한 말이나 바람들을 적어도 좋을 것 같다.


 어렸던 내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불쌍함이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것도 하나의 과정인 것 같다. 불쌍해 보인다고 힘들어하는 것을 멈추면 더 힘들어진다. 계속해서 같은 기억 속에 나를 바라보면 처음과 다른 것들이 보이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잘게 부수고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니 힘들다고 중도포기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그래서 더욱 글로 남겨야 했다.


아직도 흘려보내지 못한 과거들을 일기로 써보고 정리하여 살펴보리라. 보낸 기억들을 생각하며 추억할 수 있게끔 만들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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