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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Nov 07. 2023

(치유일기) 아기 때가 생각난다.

치유일기 첫걸음!

-내 과거의 기억-


치유일기를 쓰기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나의 첫 기억은 아기 때다. 몸무게가 39kg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등에 업혀 있던 아기 때가 생각난다. 작은 등에 업혀있을 정도라면 겨우 걷거나 걷지 못하는 1~2살 정도의 아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셨던 집에 동네어른들이 오시게 되었고 작은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졌다. 할머니는 나를 업고 양팔을 벌려가며 두 분의 다툼을 말리셨다. 어른들의 싸우는 모습이 무서워 할머니등에 볼을 붙이며 불안에 떨었던 내가 생각난다.




-나에게 쓰는 편지-


불안에 떨며 무서워하는 아기에게!

저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눈앞의 모습들과 분위기를 기억한다는 것이 늘 놀라웠었지. 40대 중반이 된 지금도 말이야. 아마도 엄마가 동생을 가지면서 친척집에서 키웠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가 아니었나 싶어. 혼자 살았던 외할머니집에 두 부부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싸움까지 간 것 같은데 작은 체구의 할머니등에 업혀서 불안해하며 떨고 있는 우리 아기가 안쓰럽구나. 당시 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할머니등에 네 뺨을 더 밀착시키며 숨는 일밖에 할 수 없었을 거야. 어른들의 고성과 몸싸움이 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 장면에서 너는 공포스러웠을 것 같아.


부부싸움을 조용히 집에서 하시던가. 남에 집에서 그것도 아기가 있는데 말이야. 그건 어른들이 굉장히 잘못한 거야.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들도 많은 실수를 하고 산다는 것을 느끼게 돼. 이해해 달라고 하면 괜찮은 말이 될 수 있을까? 그 당시의 어른을 대신해서 큰소리치고 불안하게 해서 미안해. 조금 있으면 조용해질 거야. 넌 안전해!




저때의 기억으로 내가 유독 싸움을 싫어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다툼에 대한 나의 불안도와 예민함은 저 기억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저런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어른으로서 나도 저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분명 우리 아이들도 느꼈을 텐데. 저런 마음의 불안함과 예민함이 있을 텐데. 미처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의 불안도는 우리 때의 불안보다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많이 미안하고도 안타까울 뿐이다.




-나를 위한 기도-


신앙이 있는 분들이라면 기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면 어색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보이지 않는 실체에 기도를 한다는 것은 어색하다. 다만 나의 경우엔 '하느님'이라는 단어에 의지를 많이 했고 종교생활도 했었기에 할 줄 아는 게 기도밖에 없었다. 지금은 성당에 가지 않고 종교에 중요성도 퇴색되었지만 기도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다. 간절했던 내게 종교는 유일한 탈출구였지만 과하면 독이라고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래서 기도가 어색한 분이라면 나를 위한 기도란에 그냥 나의 소원이나 희망들을 읊조리는 수준의 글들을 적어 내려가도 좋을 것 같다.


나를 지켜주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내게 따뜻하고 든든한 느낌을 준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런 존재의 믿음자체는 큰 힘이 된다. 그런 믿음이 있어 감사하다.


"분명 나를 지켜주셨수호천사가 내 곁에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감사드리며 늘 마음에 평화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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