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큰아들과 싸웠던 날이었다. 장군 같은 엄마 곁에 알게 모르게 억압받았던 설움들이 아들에겐 있을 것이다. 사춘기 때 부딪혔던 일 외엔 우리는 평화로웠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겠지만 자식과의 갈등은 황당함 그 자체다. 남이 아닌 내 자식이라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나에 대해 잘 알기에부인할 수도 없다. 남편과 싸웠다면 남에게 욕이라도 하겠지만 자식과의 싸움은 내 얼굴에 침 뱉기다.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에게 차오르는 원망을 조절해야 하기에 힘들다. 더욱이 이혼 후 홀로 고군분투하며 여러 일들을 해내고 있는 내가 아닌가. 분노와 외로움과 쓸쓸한 고독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의 감정과는 별개지만 아들의 태도에 대해 불편한 점이 보이면 나는 말을 하는 편이다. 자신의 행동을 알게 해 주어야 하기에 편지를 쓰거나 말로 표현한다. 물론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몇 번을 생각하고 눈치껏 말한다.
어렸을 때는 그냥 "~~ 해"라 했지만
요즘엔 "엄마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식이다. 아주 조심스럽다.
그날도 그렇게 아들의 불편한 태도에 대해 지적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아들도 나에 대한 서운함을 폭발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해 쏟아냈고 나는 미안해졌다. 하지만 미안함은 미안함이고 잘못된 태도는 잘못됐다고 말해야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주제로 싸우다 보니 싸움이 길어졌다. 주차 후 차 안에서 둘의 고성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하루종일 일하다 지친 상태로 싸움까지 하다 보니 체력이 방전되어 아들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차 안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집으로 가니 아들이 없었다. 저녁이라 걱정됐지만 내 마음부터 챙겨야 했다.
그러다 2시간 뒤에 받은 카톡문자! 아들이었다. 짧은 문자로 네, 아니오만 하던 녀석이 내게 보내온 문장은 길었다. 자신의 과거에 서러움을 현재에 힘든 엄마한테 풀어서 죄송하다고. 철없게 굴어서 죄송하다며 보내온 문자에 우선 안심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글 끝에 보이는 '엄마는 저의 멘토입니다. 존경합니다.'
그런 아들에게 감동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 주어 고마웠다. '그래'라는 짧은 문자를 아들에게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에 문 밖에서 내 문자를 기다린 것 같았다. 기타를 메고 쌀쌀한 날씨에 밖에서 서성거렸을 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걸어 다니는 길을 걸어보며 엄마에 대한 마음을 생각해 봤다고 했다. 철없는 자신을 자책하기에 괜찮다고 말해 줬지만 괜히 짠했다.
결과적으로 아들과 나는 이날의 싸움으로 더 친해졌다. 부부싸움도 그렇게는 안 했는데 상대가 다르니 화해하는 법도 다르구나를 느꼈다. 큰아들은 내게도 멘토다. 아들의 목표로 우리는 새로운 이정표를 새우고 살아간다. 아들이 가는 길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엄마인 나도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우리는 서로에게 멘토가 되었다.
올바른 갈등의 해결은 서로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갈등을 올바르게 풀어냈다. 그렇게 서로에게 믿음을 가지고 각자의 길에서 멘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갈등이란 골에 신뢰라는 살이 차올랐다.
갈등이란 골에 믿음이라는 살이 차올랐다.
나와 너 사이에 채워진 그 살들은 소중하다.
대학생이 된 아들은 실용음악과를 다니는 학생이다. 노래도 잘해야 하고 작사, 작곡도 해야 하는 싱어송라이터! 아직도 배울 게 많지만 재미있어하니 다행이다. 그런 아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며 그날의 싸움으로 너의 입장에서 써 본 글이라 했더니 웃었다. 반문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그려 본 아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았나 보다.
가사는 노래를 부르는 이의 입장에서 그려보는 게 좋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글이 아들의 마음에 들지 알 수 없다. 그래서많은 글들을 아들에게 보여 줄 예정이다. 나는 그저 아들에게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 과정에서 아들에게 영감이 될 글감들이 나오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