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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13. 2023

친정이 불편하다

가지 않으니 편하다

이혼으로서 나의 마음염증은 끝난 줄 알았다. 더 이상 아플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혼을 하고 나니 친정에 가는 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딸을 생각한답시고 하시는 위로의 말씀들이 가시가 되어 박히고 누나의 이혼에 영향을 준 것 같은 동생의 미안함 내 상황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뱉어내는 여동생의 말들에서 상처를 받았다.


나는 장녀다. 어렸을 때부터 일도 잘했고 무엇이든 잘 챙겼다. 남의 것을 챙기느라 내 것은 보지 못해 짜증만 늘어가는 장녀였지만 말이다.


어느 날 어린 두 동생들과 할머니집에 가는데 버스표를 사야 했다.  잘 모르니까 주는 데로 표 3장을 샀는데 아저씨가 


“너희들은 소인인데 대인표를 샀네”


그러면 바꿔주던가.

그날 버스를 타고 오는데 계속 그 소리가 맴돌았다.


‘아. 아무래도 내가 버스표를 잘 못 샀구나’ 


어려도 알 수 있었지만 말하지 못하고 아까운 돈만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고모집에 아기를 돌봐 주러 대구에 가게 되었다. 지금 내가 부모였으면 보내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물론 지금의 아이들보다 성숙하고 야무졌겠지만 애한테 아기를 맡기는 상황이 아니던가. 뭘 믿고 맡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방학 겸 혼자 올라간 것 같다. 그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아이였나 보다. 나도 어렸을 텐데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해준다. 애썼다고!     


어디를 가든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보다 남을 챙기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는데 내가 힘들고 보니 나를 위로해 줄 가족들이 없었다. 동생들이 힘들다면 내가 나서서 감정쓰레기통을 자처했고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해 주었던 나였는데 이런 상황이고 보니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은 공평하지 않아'

'뭔가 서럽고 억울해'


한순간에 느낀 피해의식과 배신감은 억울함이란 감정을 폭발하게 하였다. 마음의 울타리들이 무너지면서 그 전의 참았던 모든 감정들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너무 분하고 원통해서 눈물이 나는 것도 아까웠지만 넘치는 눈물을 욱여넣을 순 없었다.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들은 털고 일어나면 그만인데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는 상상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아픔이었다.


막바지 전쟁을 끝내고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다 갑작스러운 핵폭탄을 맞은 느낌이었다.

이건 진짜 최강이었다. 그래서 이 부분만큼은 아직도 소화시키는 중이다.


위로해주고 싶은 이에게 때로는 침묵이 최선일 때도 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밥 먹었냐는 말도 아프게 다가올 수가 있으니 말이다. 제발 입 다물고 손가락 함부로 놀리지 말으면 좋겠다.


'어중간한 이해로 남에게 위로의 말을 날리지 마라. 최고의 위로는 침묵이다.'


친정에 가지 않은지 1년이 넘었다.

처음의 난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치를 떨어야 했고 바늘처럼 찌르는 눈물 속에서도 이성을 찾아야 했다. 아무리 진정해 보려 해도 진정되지 않는 나를 보며 상처의 깊이에 놀라곤 했다.

 

'내가 이렇게 아파했었구나'하며 깊은 상처를 어쩔 줄 몰라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쩌면 본래의 깊은 상처의 원인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눈물이 찌를 듯 아프게 나올 때가 있다. 아파서 놀래고 아직도 많아서 놀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상대가 원하지도 않았던 나 혼자만의 배려일 수도 있다. 균형을 이루지 못했던 내 지난날의 못난 모습이 더해졌을 것이다. 착했던 게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말을 하지 못하고 미련하게 참았던 것들이 이제야 폭발한 것이다.


이렇게 가족들에게 느끼게 된 배신감을 누른 채로 친정에 다니다가는 한순간에 큰 사고를 칠 것 같았. 남을 해치지 못한다면 나를 해칠 것 같은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 불편한 친정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보호하고 있다. 피를 나눈 형제와 가족들과의 교류도 끊어버린 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마음이 괜찮다는 거다.

오히려 가지 않아서 그런지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있다. 마도 남을 위해 펼쳤던 에너지들을 나와 아이들에게만 쓰고 있어서 괜찮아지는 것 같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이래도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지만 마음이 편한 것은 실이기에 당분간은 나를 존중하며 살아갈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은 나의 위로처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일 뿐이었다. 앞으로 몇 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으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다친 나를 보살펴야 한다. 우선 내 마음에 물어보고 마음이 끌리는 데로 할 것이다.

쓸데없는 책임감과 죄책감 따위는 버렸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전의 나를 버렸다.

새로운 나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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