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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우울증

미시적 사회주의의 악령이 시대를 배회하고 있다.

by abecekonyv

작은 것을 생각하는게 우주를 품는 것이다. 나의 감각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좋은 연장이기 때문이다. 감각이 미연의 것들을 예상하고 모든 것들을 예측한다. 마치 그것이 모든 것을 만드는 것 같아 보인다. 신적인 권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알고 보면 우리의 도처에는 모든 것의 원인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품기 위해서는 잘게 쪼개 봐야 안다.


도처에 위선이 깔려있어 우리의 감각을 죽인다. 그 위선이라는게 현재는 문화병처럼 기능한다. 우리는 화려함에 취해 필연적으로 세련된 문화를 동경한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시대의 취향에 봉사한다. 그것에 반한다는 건 그시대의 부덕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침묵이 인생의 가장 큰 덕목인 이유가 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서 모든 것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 역시 침묵하는 건 아닌건지 점검해봐야 한다. 우리는 내면을 바주보지 않는다. 바깥 세계의 풍요로움이란 자신을 마주하는것 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내면을 마주치지 않아서 그렇다. 많은 감각에 취하여 우리는 편안함을 잊어버렸다. 편안함을 갈구하기 위해 더 많은 물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자신과 대면하는게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그것으로 우리는 삶에 대한 단초를 얻는다.


사교의 기만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게 되면 자신도 기만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된다. 단지 나의 행동이라는 것은 기만에 잠식당해 양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을 얼마나 세련되게 현시대의 취향에 맞게 갈고 개조하는지에만 관심이 생긴다.


심각한 우울증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행동만을 양산하는 것은 인생을 비게 만든다.


벤야민은 제일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돌아온 군인들을 예로 든다. 그들은 일상과 완전히 다른 극단적인 사건을 겪고 돌아왔는데도 할말이 별로 없는데, "전달 가능한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온 것이 아니라 그러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전달 가능한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로 돌아오게 된 원인은 "물량전이 육체적 전쟁"을 대체한 최초의 대규모 기술전쟁인 제일차세계대전에 있다. - <벤야민과 기억> 윤미애
니콜렌카는 이제 일주일 후에 출정한데, ...그의...영장이...나왔어... 그가 직접 내게 말해줬어...절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쪽지를 보여줬다. 니콜라이가 적어준 시였다.)... 나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는 몰라... 아무도 모를 거야... 그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 <전쟁과 평화> 박형규 역(譯)

까라면 까라는게 지금의 시대이다. 한발짝식 나아가는게 힘들면 안된다. 불편함을 지울는게 우리의 삶을 텅 비게 만든다. 군대의 미덕이 사회로까지 확장 되었다.


가끔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는 현시대가 된 이유가 이런 감각의 망각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싶다. 행동만을 양산하게 되어 모든 내용을 소실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에는 결과만 있고 그에 따른 비교가 생겨난다. 따라서 그것을 비교하게 되어 타인의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게 가능해진다. 누구도 그 내용을 잊지 않는다면 사실 타인에게 말할 이유가 없다.


현대의 우울증은 이런 공허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잉된 우울증이 아니라 오히려 빔(無)의 우울증이다. 이들의 내면은 심히 비어있다. 외부세계의 문화적 풍토에만 전념하여 내부세계를 파괴하였다. 망각하고 있다.


"당신 자신도 자기 체계를 조합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졌는데,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장교가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중략)... "대체 왜 헛소리라는 건가요? 시갈료프 씨는 어느 정도 광신적인 인류애를 가지고 있긴 하지요. 하지만 푸리에나, 특히 카베, 심지어 프루동 같은 사람도 가장 전제적이고 가장 환상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기억해 두십시오. 시갈료프 씨는 어쩌면 그들보다 훨씬 더 냉철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략).... 그느 아마도 누구보다 현실주의에 가까울 것이며, 그의 지상 낙원은 거의 실제입니다. 만약 그런 낙원이 언젠가 존재했다면 인류는 그것의 상실에 한숨을 내쉴 바로 그런 것입니다. - <악령> 도스토옙스키 박혜경 역(譯)

우리 삶에는 이론이 없다. 이론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목적없는 실증주의가 우리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검증할 대상이 없는데 검증해야한다. 우리는 미시적인 사회주의를 경험한다.


인간의 생활세계 내면까지도 이런 동등함을 요구한다. 이론의 비대함, 자아의 비대함은 용인되지 않는다. 모든 내면의 하향평준화를 바라는것이다.


균형을 잃어버렸다. 이론과 실증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을 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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