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주의 시詩론
언어의 도달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의 한계는 이름 붙여진 순간 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무라고 이름짓는 순간 개념적 한계는 정해져있다. 우리의 사고과정이 개념적 처리 방식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를 정확히는 나무-일반을 인식 할 수 없다.
달을 가르키면 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가르키는 손에 있다는 불교의 비유처럼, 우리는 도구로써의 모든 것들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그것을 첨예하게 만드는 기법이 있으니 그것은 상징이다. 나는 적어도 상징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상징은 언어의 극한이자 한계이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 할 때 그것을 그대로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비틀어서 이해한다. 왜곡과 균열이 존재한다. 우리는 대상에 대한 트라우마나 정신 병리적 도착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음을 말한다. 그것을 걷어 냄으로서 우리는 명징하게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상징이라는 것은 괴물과 같다. 그것은 덕지덕지 붙여진 키메라와 같다. 이것은 명징하게 바라보는 것의 다른 방향의 극단이다. 자연을 비선형적으로 비틀어내어 우리는 대상을 명확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한 점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빨아내어 연성하는 블랙홀과 같다. 우리의 인식 방법이라는 것은 상징으로 처리한다.
우리의 언어를 첨예하게 가다듬는 것은 상징에 속한다. 상징주의 시라는 것은 내게 그런 식으로 이해 된다. 비틀린 시구들의 조합이 우리를 대상에 바로 가져다가 놓는다. 그 언어에 멈추지 않고 대상에 직접 도달하게 만들기 위함이 상징의 역할이다.
괴물을 볼 때 외경(畏敬)을 느끼는 것 처럼 우리는 상징을 공포로 인식한다. 그것이 점점 대상과 가까워 질 수록 우리는 피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언어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식은 대상 직전에 끊어진다.
세상을 바로 보는 순간 삶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상징을 보면서 우리가 불편 할 것이라는 예감을 한다. 그것은 우리 삶을 불구로 만들것이다. 지금까지의 가치체계의 전도, 지금까지 믿었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상실감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바로 보고 싶지 않아한다. 그러나 상징에 끌린다는 것은 순전한 호기심에 있다. 피안을 넘어 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단순한 본능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상징을 말한다는 것은 도달하지 못하는 글쓰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도구로써 언어를 가공해 보았자 그것이 본질이 될 수는 없다. 언어를 첨예하게 다듬는것은 양극단이 존재한다. 하나는 논리적인 완결성을 따지는 것이고, 하나는 상징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이렇게 이해한다. 그러나 둘 역시 대상을 바라보는데에 본질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둘 중 무엇을 택할지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 그것을 증명할 수단이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어떤 것을 택할지라도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 운명을 받아들이든 자유의지를 받아들이든 그것은 개인의 믿음에 속하는 것이지 증명할 방도가 없는 논의이다.
따라서 믿음의 영역은 논리적인 영역도, 상징적인 영역도 아니다. 전적이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말한다. 대상에 대한 경외는 신에 대한 경외에 속한다. 범신론은 하나님을 상정하기 싫을 뿐이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의 본질적인 면은 편재함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는 선택의 영역이다. 다만 모든 것을 배제하지 않고 동시에 품음으로서 우리는 멀리나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는 믿음에 따른 행동이 존재해야한다. 그것이 있을거라는 논리적이고 상징적인 결론이 아니라 일단은 믿고 행하는것이 중요하다. 믿고-행함은 행위만을 양산하지 않는 유일한 행동 양식인지도 모른다.
상징은 따라서 대상을 향한 열렬한 기도이자 극한의 글쓰기이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무심한 임아,
그리도 고운 네 몸의,
하늘거리는 무슨 천과도 같이
반짝거리는 그 살결을!
그윽한 너의 머리칼에는
짜릿한 냄새, 그 향기로운 바다, 떠도는 바다에는
푸른 물결 갈색 물결.
아침 바람에 잠을 깨는
한 척 배와도 같이, 먼 하늘을 향해
내 꿈꾸는 혼은 돛을 올린다.
즐거움도 쓰라림도
무엇 하나 내색하지 않는 네 눈은
황금과 무쇠가
한데 섞이는 싸늘한 두 알의 보석.
박자 맞추어 걸어가는 너를 보면,
자유방심의 미녀야,
막대 끝에서
춤을 추는 뱀이 아닌가 싶지.
게으름의 짐에 눌려, 앳된 너의 머리는
어린 코끼리처럼 유연하게
흔들거리고,
몸을 굽혀 길게 누우면,
가냘픈 한 척의 배가
뱃전에서 뱃전으로 흔들거리다가
물속에 제 활대를 잠그는 듯.
빙하가 우르릉거리며 녹아
불어난 강물처럼
너의 잇몸 기슭에
네 입의 침이 솟아 넘칠 때는
나는 쓰고도 강렬한 보헤미아의
술이라도 마시는 것 같아,
내 가슴에 별을
뿌리는 저 흐르는 하늘을!
<악의 꽃> 中 춤추는 뱀 황현산 역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