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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게

사랑에 대하여

by abecekonyv

나의 인생은 취미의 연쇄였다. 짧은 인생이지만 정해진 일 외에 항상 즐기는 소일거리가 있었다. 그것이 나의 진로가 되기도 했고, 그것이 나의 좌절이 되기도 했으며, 그것이 나의 인생이기도 했다. 게임을 좋아하기도 했으며, 공부를 좋아하기도 했고, 독서에 빠지기도 했고, 그림에 빠지기도 했으며, 음악에 빠지기도 했다. 음악은 한 동안 나의 인생에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전체 인생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세부적인 디테일이 생략되었을 수는 있으나 대게 몇 년을 주기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관둔 것은 아니다. 느슨한 형태로 내 삶에 항상 안착 되어있다. 이미 과거의 취미들은 몸 속에 인이 박혀서 내가 되었다. 취미는 연애와 같다는 생각이든다. 취미를 생각할 때 마다 사랑이 생각난다. 취미를 다룰 때 마다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과도한 집착이 불러오는 후폭풍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물질에 집착하는 것이나 사랑에 집착하는 것이나 거의 같은 것이다. 담백한 연애라는게 존재하기라도 하는건지 모르겠다. 사랑이라는게 뭔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허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것이 인생의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대게 부모님을 보면 결혼 생활은 가늘고 느슨한 관계인 것 같다. 강렬함은 연애 초기의 불타오름과 같다. 앞서 말한 취미의 첫경험과 비슷하다.


요즘 같이 연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대가 있었을까. 방송 매체는 항상 연애를 주제로 다룬다. 성욕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긴 하지만 미디어는 사랑에 시달린다. 내가 '취미 = 사랑' 이라는 도식을 설정한 것에 의하면 지나친 노출은 집착에 해당한다. 연애에 대해 뭐 그리 생각할게 많은지 모르겠다. 취미도 몇 년씩 하다보면 집착하게 된다. 기준이 높아지고 조건이 따라 붙는다. '이 책은 출판사가 여기네', '흠... 표지 디자인이 아쉬운걸', '책 상태가 불량이네', '번역가는 어떤가? 오, 대단한 경력이군. 믿을만 하겠어.', '읽어보니 작가나 번역가의 역량이 대단하군', '평점은 어떤가', '음 이 책은 왜이리 쓸데없이 비싼 것 같지?' 등등. 대게 내가 책 사러 갈 때 드는 생각이다. 책에 취미를 붙인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골이 쑤실정도로 복잡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책을 사러 갔으면 무모하게 지르는게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낀다. 서점에서 이러다 보면 한시간은 훅 지나간다. 그것을 즐길 수도 있지만, 괴로운 경험이다. 연애도 이런 식 아닌가. 많이 만날 수록 상대를 따지게 된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미디어가 비추는 것 같이 사랑에 대한 접근성이 많아진 시대라 따지는게 많아진다. 경험해보지도 않아 놓고 따지는게 많아진다. 경험이 비어있는데 생각은 늘어간다. 가끔은 지르는게 중요하다.


처음의 강렬함을 과대 평가하면 대게 이런 식이다. 따라서 나도 새로운 일을 대할 때 심하게 강렬하다면 조심해야겠다고 예감하게 된다. 내게 이 정도 쾌락의 반향은 후에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직감한다. 처음의 쾌락이 강렬할 수록 대게 쥐약이다. 그것을 겪어내면서 대가를 치르게 한다. 때로는 몸도 괴롭고 정신도 괴로워지고 건강도 결국 잃게 된다. 취미라는거에 정력이 빼앗겨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갈것 같다. 필자는 초등학생 고학년 때를 기점으로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적이 있다. 리스트 파가니니 에튀드 사냥을 처음 들었을 때의 멜로디는 아직도 생생하다. 첫사랑의 기분은 이런 식이다. 한 눈에 반할 수록 쥐약이다. 예쁜 여자는 다루기 힘들다. 그것은 나를 말려죽일 것이 분명하다. 내가 자초한 것이지만 어려운 문제이다. 담백하게 살아가는게 이토록 어려운건지 취미를 생각할 때 마다 느낀다.


아마 그런 강렬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경험을 나열하여 담백함을 모르는 것 같지만, 담백한 것은 건강하다. 닭 국수의 국물 마냥 맑다. 슴슴한 평양 냉면의 정취이다. 내가 바라는 사랑이나 취미의 방향성이다. 가끔은 그걸 바라는게 유약해진 늙어감을 반영하는 것 같아 슬프기도하다. 경험도 미천한데 너무 일찍 느끼게된 것은 아닌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는 것은 변함없이 예감한다. 자신의 인생에 직관을 믿어야 한다. 아무도 그것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내가 애써 해명할 필요도 없는 법이다. 단지 느끼면 느낀대로 행해야한다. 그것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쇼트컷이기 때문이다.


한 눈에 반한다는게 뭐라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 사실 취미나 사랑이나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기 힘들다. 괴롭기 그지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게 날 강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작동의 메커니즘이 마약과 비슷하다. 단약하기란 쉽지가 않다. 처음 들은 음악이 깊은 강렬함을 주는 경우가 있다. 나는 한 동안 그것만 듣는다.


내가 말한 담백함과 집착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나는 안해본것을 하려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극히 담백하게만 느끼는 사람들은 강렬함으로 나아갈 것이다. 강렬한 경험은 깊이를 만들어 낸다. 적어도 뭔갈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 꺼낼 건덕지가 생긴다. 슴슴한 맛은 이야기는 없지만 건강하다. 적어도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비틀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생기지 않는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은 불완전하기에 사랑이 생긴다. 내가 없는 부분이 돋보이고, 상대가 가지지 않은 것들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불화하기도 하지만 조화되기도 한다. 대게 사람들은 뒤틀려있다는 지젝의 말이 떠오른다. 취향이라는 것은 비틀린 것이다. 자신의 모든 신경을 한 곳으로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사랑에는 생각할게 별로 없기도 하다. 불교의 사성제 마냥 정해놓고 원칙에 맞게 움직이는게 좋은지도 모른다. 상대를 좋아하는 거에 무슨 설명을 덧붙이랴.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 말이다. 이후의 관계 조절은 경험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애초에 경험하기 이전에 무엇도 생각할게 없다. 사랑은 아는 체하면 할 수록 추해진다. 경험 많은게 좋은게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랑을 말할 때면 조심스러워진다. 애초에 평소엔 말하지도 않는다. 사랑의 속성이 말 할 수록 추해지는 속성 때문에 글이 한 줄 늘어갈 때마다 괴로워진다. 편지를 수십통을 써도 한 줄 진심에 일축되는 법이다. 도달하지 못한다고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는걸 뼈저리 느낀다. 취미도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취미인으로서 실력이 안되어도 괴로워 할 필요는 없다. 괴로워 할 수록 집착만 늘어갈 뿐이다.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인생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격언이 생각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은 넘쳐난다. 상대의 마음이 그렇겠지. 그것을 생각해서 무엇하랴. 그냥 내가 좋았다면 그만이다.


누구나 바보가 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내가 클래식 음악 앞에서 얼마나 좌절 했는지 모르겠다. 피아노 실력의 성숙하지 못함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비관했던 지난날이 아쉬워진다. 그러나 이미 지난일이다. 생각해서 무엇하랴.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된다. 가끔은 자존심에 눈물 흘린 나날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적어도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많이 한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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