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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권력이다

권력의 속성을 지니는 유행에 대하여

by abecekonyv

시대마다 유행이란 게 있다. 모든 분야에 유행이란 건 존재한다. 왜냐하면 유행이라는 건 곧 그 시대를 대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유행이라는 게 한시적일지라도 그 시대를 짧게나마 풍미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행은 엄밀히 말하자면 강제와 공격의 위치에 서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에 유행은 외부에서 나에게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어떻게든 나의 틈을 공략해서 아픈 부분을 파내려 한다. 지금 이걸 하면 유행에 뒤처지는 게 아닌지. 이런 생각은 내가 말한 것처럼 직접적인 말로 떠오르진 않더라도 다른 변주로써 내 마음 안에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게 만든다.


앞서 말한 유행의 속성은 대다수에 해당한다. 소수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수는 지금의 유행을 만들거나 이미 그렇게 살아온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칼을 갈며 자신의 시대가 오기를 기다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유행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없고 딱히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유행은 외부의 강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그의 시대의 도래이기 때문이다. 이 동시성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지금은 나의 시대가 아닌 것 같다는 막연함을 가진 당신이라도 언젠가는 당신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문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지금은 확실히 AI의 시대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시대가 올 것인지 아닌지 알기도 전에 자신의 시대가 도래하기 기다렸음은 분명하다. 철학에도 현재는 분석철학이 유행인 듯싶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어디로 많이 가는 질 보면 그 학문의 유행이라는 게 보인다.


유행에 벗어난 소수라는 건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언제 힘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는 말이다. 철학에는 아주 유명한 격언이 있다. 헤겔이 한 말로, 바로 이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이 말을 여기다 쓸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철학이란 건 미래를 감지하는 학문이 아니라 지나고 나서야 그 철학이 분명해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행도 이렇게 생각한다. 유행도 지나 봐야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뿐더러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최소 앞날에 무엇이 올 것인지 조차 전문가들은 예측에 실패한다. 그러나 그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그건 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미래에 무엇이 올진 감을 잡을 수는 있어도 구체성을 상실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 모든 게 그렇지만 미래는 구체성을 가질 때 비로소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 외에도 다른 학문, 거의 모든 분야가 그런 듯하다. 이미 지나고 난 후에야 그것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AI 연구자들이 현시대가 도래할 줄 알았을까. 적어도 감은 잡고 있어도 구체적인 느낌은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행이란 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유행은 누군가에게 어떤 시점에서 금의환향이고 어떤 사람에겐 외부의 것이다. 따라서 이를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대단히 힘들지 모르겠다.


현재는 조금 식은 것 같다만, 헬스 유행이 급속도로 불거질 때 나도 헬스를 조금씩 하게 되었다. 그전에 경험이 있긴 했으나 한 동안 안 하다가 다시 시작한 것이다.


나는 헬스에 꽤 많은 효과와 즐거움을 발견했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할 것 같다. 적어도 건강 관리의 측면에서 그리고 체력 유지와 체력 증진을 위해서 앞으로도 할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유행을 한 번 실천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행은 거부하기보다는 알기를 강제하는 것에 가깝다는 게 나의 글의 논지이다. 유행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거부라는 건 유행이란 게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유행이란 게 없는데 뭘 거부하냐는 거다.


알고 있는 편이 더 괜찮은 선택지가 아닐까. 이것이 왜 나왔는지를 추적해 보면 이 시대가 왜 도래했는지는 너무나 필연적으로 보인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우연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지나갔기에 필연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행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이 한시적인 것인지 조차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단을 해봐야 한다. 직접 체험을 해보든 생각을 해보든 그것이 왜 현시대에 유행이 되었는지를 고찰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유행은 최소 시대의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미래라는 게 암흑일지라도 하나의 등불이 되어 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비선형적으로 전혀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눈앞의 시야를 조금은 밝혀주기 때문이다.


소수자는 불변하는가? 대답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다수는 과거에 소수자였다. 그들의 시대를 함부로 욕하기 어려울뿐더러 소수가 이 시기에는 권력이 되어버렸다. 유행은 권력의 속성을 가진다. 즉, 내가 앞에 말한 강제하는 것의 속성에 가까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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