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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가속하라 다시 한번 가속하라

예술적 글쓰기에 대한 프렐류드

by abecekonyv

당신이 정녕 글이라는 걸 쓴다면. 밀어붙여라. 설명이아니라 선언이 되는 것 같이 가속하라. 말은 그 자체로 돌출되어 중립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은 우리의 세속에서는 거의 무용한 것 처럼 취급되어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우리의 삶에는 기만과 날조 그리고 일언반구로 상대를 잠깐이나마 일축하는 언어 게임의 연장이다. 과하게 사족을 붙인 글은 매력이 없다. 우리 인간이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잘 생각해보라. 그들은 모순의 양면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군림하기도 하고 무릎 꿇기도 한다. 바보가 되기도하고 정념에 사로잡힌 폭군이 되기도 한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주(註)를 다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예술가의 기질이 없는 것이다. 예술의 정의가 모호하기 이전에 무엇을 하든 가능하다는 보편적인 명제를 끌어올리는게 비교적 가능한 시대에서 아직까지도 눈치를 본다는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용기의 미덕. 그것이 현대에는 필히 결여되어 있다. 우리의 말은 하나하나가 용기를 요구한다. 이 말이 무엇을 야기시킬지 생각해보는 것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이다. 적어도 예술에서는 이것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학위 논문 디펜스를 하는 것 같이 예술을 하는게 아닌지 진심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남에게 부끄럽기 이전에 자신에게 부끄럽진 않은지. 내가 진정 희구하는게 무엇인지 반성해봐야 한다. 삶이라는게 이것저것 더러운 것들로 뒤덮이지만 우리는 가볍고도 명징하게 우리의 생각을 말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제 발로 걷어 차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유부단함은 인간 삶에서 분노를 야기한다. 그것은 나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에게 혹은 외부 조건에 대한 분노로 나아간다. 이런 일만 없었더라면, 이런 조건은 나한테 너무 불리하다 등등. 우리는 항상 솔직할 수 있었던 공간이라는게 존재했다. 다만 솔직하지 않았을 뿐이다. 삶에 치여서, 고생스러워서, 이렇게하면 남들이 뭐라고 할까봐, 어려운 길이 잖아 이렇게 하는게 당연해, 우리는 항상 솔직하지 못하기에 돌아간다. 그 돌아간 길은 종국에는 솔직함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솔직하지 못했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앞으로의 솔직함은 미래를 향한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솔직하다는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일인지! 아마 모든 것에 솔직하려면 대장부의 기질이 필요한 듯 싶다. 우리에겐 이제 용기와 판단이란게 존재하지 않는다. 효율과 지름길에 눈이 팔려있어 움츠러드는 우리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될 뿐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나는 이 현시대의 문제에 대한 대주제를 글쓰기에 국한시켜 보기로 한다.


글에는 형식이란게 있고 그것은 시대마다 다르다. 우리에겐 설명문, 문학, 설문지 등등 다양한 류의 글쓰기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것 조차도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에게 정해진 폼(form)은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시대가 요구하는 글쓰기의 방향과 기준이 정해질 뿐이다.


하드보일드, 짧게쓰라! 당신은 타인에게 무엇을 이해시키고 싶은가? 현시대의 타인은 당신의 이야기 따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해시켜라! 당신의 글은 대기업의 분쇄기에 갈려나갈 뿐이다. 긴글은 현시대의 미덕이 아닐지니, 짧게 쓰라! 어디 고전 문학이니 뭐니 철학이니 뭐니 인용하지 말고 차라리 과학적 사실과 통계를 쓰란 말이다. 얼마나 이해하기 쉬운가? 이것이 현시대의 외침이다.


아, 진실로 우리는 하드보일드하다. 그것이 조려낸 불고기와 같은 깊은 맛을 베어내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하드보일드하다. 마치 살풍경한 아파트 주택단지를 보는 것 처럼, 우리의 문체는 군대식으로 조율되어 지휘를 따른다. 비틀림은 용인되지 않는다. 당신은 비틀리지 말아야한다. 종교적으로 나아가라. 단 한치의 각도도 고개를 트는 것은 용인 할 수 없다. 앞으로만 나아가라. 가속하라!


우리는 항상 이런 시대의 변주를 듣는다. 우리의 멜로디는 정해져있다. 반주가 그것을 다르게 할 뿐.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글을 구원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생각은 문학이다. 바로 문학이다. 인류의 모든 글은 크게 보면 문학이다. 나는 이야기에 국한하기로 한다. 우리는 문학을 써봐야 한다. 등장인물은 나의 부분을 타자화 시킨 것이다. 따라서 그 문학작품의 종결성으로 우리는 파편화된 모순과 완결이라는 두 가지의 양면을 모두 품어낼 수 있다. 이것이 진짜 하드보일드가 아닐런지? 문학은 그 자체로 하드보일드하다!


예술에서 무엇을 구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용인되지 않는 것을 내비치고자 하는 용기 말이다. 현시대의 과잉은 모든 것을 깍아내리려 한다. 다이아몬드의 세공법이 전문화 되면 될 수록 다이아몬드 그 자체는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원석이 있어봤자 아무리 좋은 세공사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시대내에 아주 비싼 다이아몬드로 책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조율하는 것은 외부에 있다. 다만 당신의 것은 오로지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잃는 다는건 나의 소멸일 뿐만아니라 나의 부분집합인 예술을 잃는 것 이다. 예술은 실로 그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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