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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엘리온 Dec 12. 2023

떡볶이처럼 아름답습니다


프로그램실에 들어서는 나에게 누군가가 대뜸 큰 소리로 외친다.

“선생님~!!”

‘누구지?’ 하고 둘러보았더니 역시나 K이다.

K는 그 당시 진행되던 집단상담의 분위기 메이커인 동시에 나의 기쁨조였다.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 “예. K님 말씀하세요~”

K: 선생님~!! 선생님은 떡볶이처럼 아름다우십니다.~!!

...

나를 포함해 9명이 모여 있던 프로그램실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누군가의 킥킥거리는 소리를 시작으로 모두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그렇게 웃음이 터지고 나서야 나도 정신을 차리고 그 의미를 물어본다.

나: 떡볶이처럼 아름답다는 건 뭘까요?

K: (큰 소리로 웃으면서) 하하하... 그냥 받아들이세요.  떡볶이가 아름답잖아요.  동의 못하세요?  떡볶이 안 드셔보셨어요? 내가 살던 동네에 기가 막힌 떡볶이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야기가 ‘또’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여러 명이 함께 모여서 하는 ‘집단’ 상담이기에 적당한 선에서 적당한 말로 그의 말을 끊고, 프로그램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발언 중에도 수시로 끼어드는 그로 인하여 프로그램 진행이 순조롭지 않다.



  

그의 질환명은 ‘제1형 양극성 정동장애’이다.

1형 양극성 정동장애는 조증과 우울증이 교대로, 또는 조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장애를 말하는데, 그는

조증이 나타나는 시기에 감당 못 할 사업을 추진하였고, 그에 필요한 사업자금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치고 구속된 케이스이다.  

  기분이 들뜬 조증 상태에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고, 생각과 말이 빨라지고, 사회적인 활동이 증가하고, 자기 능력을 넘어선 과소비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증상으로 인하여 다툼이나 법적인 문제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구속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제대로 된 약발(?)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를 수용거실 안에만 가두어 두기보다는 집단상담에 참여시켜 과하게 분출되는 에너지를 잠시라도 발산하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수용동 안에서의 불필요한 싸움을 막는 것에도 도움을 줄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많은 약속을 했다.

“병원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가진 인맥을 이용해서 고속 승진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중인데, 그곳의 원장이 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의 다짐들은 나를 미소 짓게 했지만, 그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이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그의 피해자 중엔, 30년 공무원 인생의 퇴직금을 날려버린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돈이든 나름의 사연이 다 있겠지만, 노후 자금이 사라져 버린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지 생각하면, 이곳에서 박장대소하며 웃고, 떠들고, 고양된 기분으로 현재를 즐기고 있는 그를 보는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다.

  여전히, 그는 진행하려던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이곳에서도 이런저런 구상을 하느라 바쁘다.  그렇기에 그에게 피해자는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에게 약속한 대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고, 피해자들이 투자한 돈도 마땅히 돌려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이곳에 온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거대한 사업 구상을 이해하기에는 그를 고소한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나 평범한 수준이기 때문에 그를 오해할 수도 있다는 넓은 아량으로 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그의 범죄를 직면시키기 위한 노력은 무의미하다.  우선은 드러나는 당장의 문제 행동에 초점을 두면서 약물 치료가 적절한 효과를 나타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증의 시기가 지나고 우울 삽화가 나타나는 것에도 주의하여 관찰할 필요가 있다.  조증 상태 때와 달리,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우울증이 나타나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처지를 비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그의 약물 복용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고, 재발을 막기 위한 예방 교육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기분이 안정되는 것을 보기도 전에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가벼렸다.  정신질환자들을 분리 수용하는 의료 수용동에 입병(입원)과 퇴병(퇴원)이라는 것을 하긴 하지만, 교도소는 궁극적으로 치료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 경과와 상관없이 이송이 결정되는 경우들이 있다.  최근 그의 근황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떡볶이 앞에서 문득문득 그를 떠올린다.  도대체 ‘떡볶이처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칭찬인지, 욕인지 얼핏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는 떡볶이를 찬양하고 있었으니, 칭찬 쪽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는 안정된 기분을 회복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참회하고, 같은 죄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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