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의 음성증상
이번에는 조현병의 ‘음성증상’이 연관된 사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조현병의 증상은 크게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 ‘분열 증상’, ‘인지 손상’으로 분류된다.
이 중, ‘음성증상’은 무욕증, 사회성 결여, 무언어증, 무감동 등과 같이 정상적인 정서적 ·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거나 상실되는 것을 말한다.
범죄 당시 그녀에게는 환각과 망상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잔류 증상만 남아 있었고, 그 자리를 음성증상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음성증상’이라는 것은 그녀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게 만들었다.
의미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과 시비가 붙는 행동들로 통신사 상담원이라는 직업을 잃은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부모님이 그녀의 생계를 도와주고 있었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경제적 지원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녀가 벌어 둔 돈도 밑바닥을 보였다. 자취방의 밀린 월세와 관리비 같은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지만, 그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취급했다. 집주인을 더 화나게 했던 것은 청소가 되지 않은 집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집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집주인은 몇 가지 법적 조치와 함께 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그녀는 응하지 않았고, 결국은 ‘퇴거 불응죄’와 함께 임대 계약서에서 지켜지지 않은 항목들과 해결되지 않은 금전 문제 등으로 구속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막상 교도소에 입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다시 양성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귀에서 들렸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어떤 목소리들과 대화를 했으며(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임), 옷을 입은 상태로 아무 곳에서나 대·소변을 보고, 수용 거실 창살을 떼어 내려하고, 울다가 갑자기 춤추고 웃는 등의 이상행동들을 하였다. 이런 증상들을 보이는 수용자들은 치료기관이 아닌 일반 교도소에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필자가 근무하는 곳으로 보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은 정신질환자 집중 치료기관으로 특성화되어 있는 교도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기서는 약물치료의 효과로 증상들이 안정됐고, 사고의 우려가 있는 어떤 문제 행동들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는 정신과 약물들도 조현병의 음성증상에는 효과가 한정적으로 나타났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시기는 다시 음성증상을 보일 때였고, 출소를 약 6개월 정도 앞두고 있을 즈음이었다. 기본적인 자기 관리조차 되지 않는 당시의 모습 그대로 출소한다면, 여전히 그녀는 자립하지 못할 것이고, 이는 재범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녀를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겠다고 결심했고, ‘만성 조현병 환자의 음성증상 완화를 위한 동기 상담 적용에 관한 단일사례연구’라는 논문을 참고해 그녀의 삶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쉽지 않았다.
‘상담’을 한다는 것도 누군가를 대면하는 사회적 관계이지만, 그녀는 그 관계를 위해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흐트러진 긴 곱슬머리는 누워 있다가 바로 상담실로 나왔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입가와 옷에는 붉은 양념들이 묻어 있다. ‘내 말이 그녀에게 가 닿았을까?’라는 의심이 들 때쯤에나 그녀는 내가 준 자극에 대한 느린 반응을 내놓는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공허하고, 어떤 감정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헤아리기가 어렵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그녀와 상관없는 일인 것만 같다.
- 필자의 상담 기록 중-
나름, 오랜 정신과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환자들을 대하기는 늘 쉽지 않았다. 몇 마디 말을 건네 보아도, 단답형의 대답이 돌아오면 나도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폐쇄형 질문’이 ‘단답형’의 대답을 유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 ‘개방형 질문’을 해보기도 했었지만, 생각이나 어휘 자체가 빈곤한 이들이 열린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래 표는 실제로 그녀와 함께 작성해 본 하루 일과표이고, 대부분 ‘잠’과 ‘누워있기’, ‘멍 때리기’로 이루어진다.
이 일상을 풀어서 다시 설명하자면, 아침 기상과 점검 시간은 반드시 일어나 있어야 하는 시간이므로 일단은 몸을 일으켜 움직인다. 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고 아침 식사 시간이 되면, 잠에 식사를 양보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식기 당번제’ 규칙에 의해서 6일에 한 번은 자신이 설거지와 뒷정리를 해야 하지만, 그 외의 날은 주로 잠을 잔다. 그리고, 아침 약을 먹고 다 같이 간단한 방 청소를 하고, 잠깐의 점검을 하고 나면, 자유 시간이 되어 TV 시청을 하거나 세안 등을 하게 된다. 하지만, 위생관리에 관심이 없는 그녀는 세안은 물론이고, 양치를 거르는 날도 많다. 위 일과표에서 TV 시청, 라디오 청취‘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실제로는 누워서 잠을 자거나(규정상 낮 동안 누워 있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 멍을 때리는 시간이다. 시선이 TV를 향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녀는 TV의 내용에 관심이 없다. 그저 눈앞에 TV가 있을 뿐이다. 모두가 박장대소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지만, 그녀는 웃지 않는다. 무표정할 뿐이다.
월 1회 주기의 만남을 주 2회로 늘여 우선은 그녀와 친해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스스로에게 관심 가질 수 있는 질문들을 많이 했었고, 자신의 강점을 함께 찾아보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마음과 상관없이 근무자의 지시에 따라 상담실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방에서조차 움직이지 않으려는 그녀가 일주일에 두 번씩 상담을 위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큰 변화였을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출소 후 원하는 삶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살을 빼서 예쁜 옷을 입고 싶다고 했었고, 가족과 여행을 가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도 했다.
이 중, 당장 교도소 안에서 실천해 볼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당시 96kg의 체중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여행을 가기 위해서도, 예쁜 옷을 입기 위해서도 체중 감량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함께 다이어트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웠는데, ‘주 2회 체중 체크하기, 1일 물 10잔 마시기, 실외 운동 나가기, 낮잠 줄이기(대체 활동으로 그림 그리기, 편지 쓰기를 주로 함), 위생관리’가 그것이다. 중간중간 수정과 보완이 뒤따랐지만, 비교적 그녀는 잘해주었고, 상담 시간에 웃거나 서운한 기색을 보이는 등의 감정 표현이 늘었고, 수용 생활에 대해 먼저 말하는 등 말수가 많아지기도 했다.
사실, 음성증상을 보이는 수용자는 수용관리 차원에서는 신경이 덜 쓰이는 부분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만큼 ‘사고’를 치거나 ‘문제행동’을 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거의 잠만 자던 그녀의 이런 변화가 수용동 근무를 하는 직원들을 불안하게 만들지나 않을지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의 실천 활동들이 그렇게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와 나는 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결국, 증상의 호전으로 그녀는 퇴병(정신과 퇴원의 개념을 이곳에서는 ‘퇴병’이라고 부른다.) 되어, 다른 교도소로 이송을 간 후 출소하였고, 이송 가기 전 마지막 몸무게는 92kg였다. 날씬한 몸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나름 큰 성과였고, 출소 후에 그녀는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와 함께 ‘필자와 보냈던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너무나도 소중했다’라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내주기도 했다. 이 편지가 너무 기쁘고, 뿌듯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던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이 이런 보람을 느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증상이 재발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