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빠져나와 급하게 차에 오른다.
차 시트에 몸을 안착시키자 마음에도 조금의 안정이 찾아오는 듯하다.
하지만, 온전한 평안을 누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재빨리 시동을 걸고, 바쁜 약속이라도 있는 듯 속도를 높여 급하게 회사를 빠져나온다.
그곳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졌다는 생각이 든 후에야 엑셀레이터에서 서서히 발을 떼고, 주변의 경치를 살핀다.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느낀다.
월세 걱정 없는 내 건물에 카페를 만들고,
아르바이트생을 두어 출퇴근 시간 상관없이 드나들 수 있는 주인이 되길 꿈꾼다.
하지만, 로또 한 장 사지 않는 월급쟁이 인생에 그것은 상상으로만 머문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는다.
수개월 전부터 그곳에 놓여 있었지만 프롤로그만 세 번 읽고 덮어둔 책을 오늘도 노려본다.
로또 18장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얻은 이 책에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작가의 조언을 차근차근 잘 밟는다면, 카페 주인이라는 꿈 따위는 그저 우습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이 책을 펼치지 않는다.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고집스레 책상에서 치우지도 않는다.
인생역전을 앞에 두고 왜 이리 머뭇거리는 걸까.
나라는 사람은 이 글을 읽는 것으로 끝낼 것이라는 믿음.
제아무리 큰돈이 생기는 방법이라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마트 경품잔치에서 늘 '꽝'이었듯이 5%라는 역행자의 행운에 나는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결국, '나랑은 상관없네~!"라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책을 덮을 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는 기어이
책을 펼치지 않는다.
- 무의식은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짓고 자의식은 끊임없는 합리화를 유도하여 발전을 가로막는다.
-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 "정체성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
<역행자. 자청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