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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Mar 01. 2022

안중근의 의거에 대한 평가

독립운동과 테러리즘

오늘은 3월 1일이다. 아시아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민중운동이 있었던 날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시민혁명사에도 한 획을 그은 날이다. 그런 날인 만큼 오늘만큼은 독립투사들을 기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3.1운동은 결과적으로는 폭력 혁명으로 변질되었지만 시작은 평화운동이었기에 유관순은 비폭력 독립운동가로 분류된다.


유관순이 비폭력 독립운동가의 대명사라면 무장 투쟁 독립운동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안중근이다. 스가 전 총리가 취임 이전 관방 장관 시절에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망언이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곤 했었는데 그렇다면 독립운동과 테러리즘은 뭐로 기준이 정해지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일례로 아일랜드의 사례를 들어보자. 1921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세워지고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남은 상황에서 아일랜드 공화국군(이하 IRA)는 가열차게 투쟁을 벌었었다. 이때 영국인들은 IRA를 테러리스트로 인식했었는데 그 이유는 IRA가 영국 관료들을 죽이고 때로는 단순 민간인까지 겨냥한 테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북아일랜드에 사는 아일랜드인들에게 IRA가 영웅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보다 나쁜 것은 영국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 역시 북아일랜드에 단지 영국인이 많이 산다는 제국주의적인 이유로 아일랜드 자유국이 세워질 때 북아일랜드만 따로 분리해서 영국에 편입시켰고 영국 지배자들의 태도도 실제로 많이 강압적이었다. 영국 경찰들은 아일랜드인들을 테러 용의자랍시고 잡아와서 고문하고 구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저항하는 IRA가 영웅으로도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아일랜드의 사례로 볼 수 있듯이 누군가는 테러로 인식하지만 누군가는 또 정당한 독립운동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옳고 그름을 얘기할 생각은 없지만 이걸 얘기한 이유는 한국 독립운동 또한 마찬가지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한국인들에게는 독립운동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대 일본인이나 제3자들로써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고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는 행위가 테러로도 충분히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중근도 마찬가지다. 우리 입장에선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의 국권을 짓밟은 제국주의자이겠지만 일본인들한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이토는 일본 최초의 근대 헌법을 만든 사람이라 국부로 칭송받고 있던 사람임과 동시에 또 나름 일본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청일, 러일전쟁 개전에도 반대하고 한일합방에 미온적이며 자치권 방향으로 주려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죽이는 건 조선인들에게도 좋은 방향이 아니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건 극단적인 평화주의적 관점으로 나는 절대 동의하는 부분이 아니지만 모든 폭력은 다 테러기에 어떠한 경우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이에 대해 반박을 하자면 적이 먼저 처들어온 경우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나? 이러면 프랑스 혁명도 폭동이고 5.18도 잘못된 운동이라는 억지 논리가 성립된다.


결론적으로 안중근의 의거는 관점에 따라, 어느 국가냐의 따라서 독립운동과 테러로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일본인들이 테러라고 본다고 그걸 무작정 욕하기보단 이해하면서도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에게 안중근은 국권을 빼앗은 제국주의자를 처단한 영웅이지만 일본인들에게 메이지 유신의 영웅이기에.


다만 안중근 거사가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만 가져왔다는 주장에는 난 좀 회의적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토 히로부미는 조슈번 출신임에도 조선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나름 청일, 러일 개전에도 반대하던 온건파였었다. 그래서 당시 정한론이 많이 득세했어도 이토 히로부미라는 원로가 딱 지키고 있으니 막 나가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토 히로부미가 죽으면서 일본의 폭주를 막을 원로가 없어졌다. 그 이후 일본의 실세가 된 것은 이토의 정적 야마가타 아리토모였는데 그는 이토와 달리 한일 합방과 만주 진출에 찬성하는 자였다. 그렇게 되어 이토가 후원하던 온건파들은 갈 수록 힘을 잃어갔고 야마가타로 대표되는 육군 출신들이 힘을 키워감에 따라 일본의 폭주로 이어진 부분 또한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토의 암살이 안좋은 면이 있다 할 지라도 안중근 의사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토가 아무리 온건파였어도 분명히 그는 제국주의자로써 한국의 국권 강탈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도 이제 일본=절대악, 한국=선한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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