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일본 정치 관련해서 많이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자민당이 극우 정당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로 자민당이 급속도로 우경화된 감이 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전까지는 개헌을 중시하는 보수 방류(시게미쓰 노선)보단 내치에 집중하자는 본류 쪽(요시다 노선)이 우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민당은 과연 극우 정당일까? 일단 자민당 자체가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정당이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굳이 살펴보자면 자민당의 오늘날 주류인 보수 방류, 그러니까 아베 신조 계열은 극우처럼 보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극우라기엔 체제 수호적인 면이 크다.
진짜 일본 극우로 분류되는 사람 중에는 미시마 유키오가 있다. 그의 철학에서 천황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에게 천황이란 로마제국 황제처럼 헌법의 외부에 위치하면서 때로는 ‘무질서’를 예외로서 인정해 법 집행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법 초월자적인 주권자이어야 했고, 이러한 존재로서의 천황은 이와 같은 정치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암살을 비롯한 테러리즘도 전통적 미로서 용인함이 마땅했다.
아베는 어떨까? 아베에게 있어서 천황은 일본 역사의 근간임을 강조하면서도 일본국 속의 천황의 역할을 국가, 국민의 안녕을 기도하는 존재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일본 극우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천황관인데 오히려 아베의 관점은 전통적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셈이다. 아베의 정치 철학은 급진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극우적이라기보다는 법질서를 유지하는 천황관이라는 점에서 매우 관료적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일본 극우가 지니는 경제관은 의외로 좌파적이다. 당장 황도파의 정신적 지주 기타 잇키와 대일본애국당 총재 아카오 빈은 사회주의자 출신이고 1930년대 쇼와 유신 운동이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것도 농촌의 몰락, 빈부격차, 재벌과 기득권의 부패를 본 혈기왕성한 그들이 사회에 저항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마디로 일본 극우의 발흥은 오히려 사회주의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극우는 반체제적 성격을 띈다. 19세기 말 메이지 번벌 정권과 자유민권운동 모두에 저항하던 국권주의자들이 시초였고 황도파 청년장교들과 미시마 유키오도 그러했다. 다만 이 반체제라는 것은 오로지 정당과 재벌, 화족들을 향한 것이기에 천황만은 끝까지 지키려 든다는 것이 일본 극우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극우라고 불리는 아베 신조는 사실 일본 극우의 지향성과는 영 거리가 멀다. 왜냐면 아베 신조는 전후 체제를 보통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 목표지, 헤이세이 유신(?)을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천황과 아베 신조 사이도 그리 매끄럽지도 않았었고. 이처럼 아베 신조의 정치 철학은 일본 극우가 보이는 반체제 지향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아베가 극우라고 쳐도 자민당 내 온건파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보수 본류는 오부치 게이조 이후 몰락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당 내에서 방류 세력에 대한 저항 세력으로 남아있다. 이시바 시게루 등이 대표 사례로 이들은 자위대 증강에 반대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개헌에는 소극적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이시바도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극우들과 관점이 일치하니 다를 바 없게 보이겠지만 사실 독도 문제는 공산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본 정당들이 다케시마라고 부른다.
결론을 말하자면 일본 극우는 반체제적 특성을 띄지만 아베 신조는 관료주의 체제에 대한 옹호자이며 보통 국가로 바꿀려는 것 또한 전후 체제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