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는 시사 문제를 가지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애가 시리아 내전 문제를 얘기하면서 아사드 정권은 마치 3.15 부정선거 당시 이승만 정권과 유사하며 미친 독재자라고 하면서 민주화 시위를 옹호했다. 그때 나는 여기에 의문이 들었고 발표 이후 반론을 했지만 독재 옹호자라는 욕만 들어먹었다.
지금도 독재 옹호자라는 소리를 들을 지언정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에 대한 생각은 변함 없다.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반란이며 이들이 추구했던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오해하진 마라. 나는 홍콩 시위도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던 사람이고 미얀마 민주항쟁도 지지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랍의 봄 만큼은 옹호할 수 없다. 애초에 아랍의 봄이 일어나게 된 사건부터가 이슬람과 연관성이 크다. 튀니지 민주화 시위를 보자면 어느 청년이 노점상을 하다가 여경찰에게 단속당하자 수모를 못견디고 분신 자살한 게 이슬람주의에 물든 아랍인들에게 기름에 불 붙인 격이었다. 참고로 튀니지는 그나마 아랍권에선 세속주의적이고 정교 분리가 잘된 국가였었다.
리비아의 경우는 서구의 잘못된 개입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카다피 정권은 비록 잔인했을지라도 정권 말에 리비아의 상당 부분을 녹지화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자원을 확보하고 또 카다피 집권 기간인 1981~1985년 동안 산업 생산이 연간 약 22%가량 증가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했다.
하지만 나토의 개입으로 그런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민주주의자를 자칭하던 친서구 이슬람 극단분자들이 그 수자원을 싹다 프랑스 회사에 넘겨버렸고, 해당 프랑스 회사는 수자원에서 채취한 물을 모조리 수출용으로 사용해버리는 탓에 현재 리비아는 식수마저 부족한 심각한 물 부족 국가가 되었다.
여성의 권리 역시 마찬가지다. 카다피 정권 동안 여성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았지만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자 서구화된 여성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일 수록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렇듯 리비아는 민주화 운동 때문에 더욱 상황이 안좋아진 것이다.
시리아도 그렇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아버지 하페즈 때의 강경한 탄압 정책을 완화하고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꿔나가며 점진적으로 개혁하는 와중에도 세속주의를 유지했다. 이걸 잘 볼 수 있는 것이 2011년 시위에 참가했던 아이가 죽은 채 발견되자 아사드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며 물러섰던 것이다.
그러던 아사드가 강경하게 입장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진상규명 약속에도 시위가 격화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적 주장이 나온 것도 있지만 무슬림 형제단과 외부 개입 때문이다. 시위의 배후에는 무슬림 형제단이 터키의 지원 아래 레바논 암시장을 통해 무기를 밀거래하고 또 시위 세력에 침투할 기미가 보이자 강경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당시 시리아 정부가 주장했던 외부 개입설은 구라로 취급받았었는데 알 누스라 전선과 자유시리아군의 무장 상태를 통해 터키와 사우디, 카타르 등이 개입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리아 내전에서 순수한 민주화 세력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자유 시리아군은 이슬람 독재자 터키의 에르도안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었으며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다에쉬와 알 누스라 전선은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시리아 정부군이 학살을 저지른 것은 부정안하겠지만 반군 역시 정부군 못지 않게 학살을 저질렀다. 일례로 반군이 장악중인 알레포 동부에서 화학공장이 있으며, 실제로 자유시리아군을 비롯한 시리아 반군들이 민간인을 학살해놓고 정부군 짓이라며 우긴 경우도 꽤 있었다.
이집트는 민주화 시위로 무바라크 정권을 끌어내렸었는데 무바라크 역시 세속주의 독재 정권이었고 민주화 시위대는 세속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무바라크가 끌어내려진 후 무슬림 형제단이 집권하여 파라오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이슬람 헌법을 제정하려다가 다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축출하는 등 민주화 운동의 결과가 매우 안좋았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을지라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시스템이 안된다면 섣부른 민주주의는 독재만도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랍의 봄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