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홍콩 입법회 선거 결과를 보아하니 민주협진당, 홍콩공회연합회, 신민당 같은 친중파 정당들이 완전히 압살하며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중국은 홍콩 보안법 통과와 더불어 더 이상 홍콩을 장악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하나 더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에게는 안된 소식이지만 냉정하게 광복홍콩 시대혁명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홍콩 민주화운동가들이 저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9년 범죄인 인도법 반대를 내세우며 홍콩의 젊은 청년들은 들고 일어났었다. 그러나 오늘날 홍콩에서 반정부의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홍콩은 독재 국가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일까? 한번 홍콩 민주항쟁이 왜 실패했는지 알아보자
1. 구호의 모호함
홍콩 항쟁 당시 시위대가 내걸었던 구호는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였다. 다만 이걸 근거로 홍콩 시민들이 진짜 독립을 바랬는지는 의구심이 드는게 애초에 홍콩 독립주의자들은 민주파 내에서도 다수를 점하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주파 내에서도 독립주의자들과 순수한 일국양제 지지자들이 이 구호를 같이 사용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목적이 다른 집단이 민주파로 뭉쳐있으니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 홍콩을 민주화 하되 일국양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그칠 것인지, 아니면 아예 독립하여 새로운 민주 국가로써 나아갈 것인지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시민들은 전자를 지지했겠지만 후자 역시 세력이 어느정도 있기에 의견이 통합되지 못해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는 모호한 채로 남았다.
성공한 혁명들은 뚜렷한 목표를 지닌다. 러시아 혁명은 차르 체제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세운다는 목표가 있었으며 반대로 1989년 동유럽 민주혁명은 소련의 간섭과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종식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연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홍콩 민주화 세력은 뚜렷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내세우지 못했고 그 결과 실패했다.
2. 코로나 19의 유행
2019년에 시작된 홍콩 민주항쟁은 2020년이 되어서도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변수가 등장하는데 바로 코로나 19였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중국 당국이 시위를 통제할 충분한 명분이 생겼고 바이러스 확산 걱정 때문에 시민들은 뭉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어떤 외부의 위기가 생겨나면 집단은 통제하는 명분으로 써먹으니 말이다.
3. 중국 공산당의 계략
중국 입장에서는 비록 일국양제인 곳이어도 홍콩을 절대 잃을 수 없다. 홍콩을 잃는 순간 연쇄적으로 티베트나 위구르까지 독립 운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홍콩은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다가 1997년 영국과 반환 협정을 하면서 되찾은 곳인지라 중국에게 있어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폭압적으로 진압했다. 그때 마침 코로나까지 겹쳐 통제의 명분까지 생겼고 이를 발판으로 홍콩 보안법까지 제정했다. 홍콩 보안법의 제정으로 중국 당국은 거슬리던 조슈아 웡을 구속시킬 수 있었다. 구심점을 잃은 홍콩 민주화운동가들은 해외로 망명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홍콩을 완전히 손에 넣을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이번 선거도 그 일환이다. 친중파들을 당선시켜 민주파를 입법회에서 쫓아내어 마구 중국식 독재 법안들을 찍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중국 공산당의 목표다.
4. 고학력자들이 주축이 된 시위
원래 혁명이란 고학력자들이 주축이 될 수 밖에 없긴 하다.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혁명의 에너지는 빈곤한 계층에 있지만 혁명을 지도할 리더가 없으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6월 민주 항쟁을 주도했던 것은 대학 진학률이 낮던 당시 사회에서 지식인 역할을 하던 대학생들이었다.
그래서 홍콩 시위의 주축이 된 것도 대학생들이다. 홍콩 시위에 참여한 인원의 80% 이상이 대학 교육을 받은 고학력자로 드러났다. 하지만 홍콩의 평균적인 대학 진학률은 15%~20% 밖에 안된다. 홍콩에는 대학이 8개 밖에 없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받은 득표율은 22%였는데 이는 대다수의 고졸 이하의 홍콩 시민들과 고학력자들의 괴리감이 크다는 것을 증명한다.
홍콩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은 영미권과 단절되면 피해를 본다. 확실히 사상적 자유가 줄어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반 홍콩 시민들은? 홍콩이 중국과 병합되든 말든 삶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중국으로부터 벗어났다가 불안정해지는 것보다야 그냥 큰 국가로의 병합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5. 그래서 그 이후는?
홍콩 시위가 성공했다 치자. 그렇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시위대는 대책이 없었다. 언제 중국에 의해 깨질 지 모르는 일국양제로 계속 가든가, 아니면 아예 리셋인 독립으로 가던가 둘 중 하나인데 애석하게도 둘 다 홍콩인들은 대책이 없었다. 확고한 일국양제를 보장받는다 해도 몇십년 후면 조약에 따라 중국에게 돌아가게 되어있으며 중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독립도 마찬가지다. 홍콩은 독립과 함께 세계 초강대국인 중국을 정면에서 마주해야 한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경제야 홍콩이 가지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어찌 될 지도 모르겠고 잘하면 싱가포르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주변에 중국 만큼이나 거대한 적대국이 없으니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니 일국양제안, 독립안 모두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홍콩 민주항쟁의 실패는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