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일관계가 이슈다. 반일 성향이 강하던 문재인 정부가 물러서고 상대적 친일 성향이 강한 윤석열 정부가 집권함에 따라 한국 내에서는 수출규제가 잘 풀리지 않을까란 기대가 생겼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이 망친 한일관계를 정상화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지라 당연히 일본과 잘 풀릴 거라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일본 측 반응은 냉랭하다. 산케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외무성 관계자가 윤석열 정부가 영토 문제, 위안부 협의,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있어서 전향적인 태도를 안보이면서 정작 한일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것은 기만으로 밖에 안보인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는 아예 한일관계 정상화는 일본보다 한국이 더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선 그었다.
조금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 기시다는 아베에 비해 온건한 성향인데 저렇게 나왔다는 점일 거다. 물론 당연한 소리지만 자민당은 한일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파탄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사퇴했었던 아베가 다나카 가쿠에이가 그러했듯이 자민당의 '어둠의 쇼군'으로 군림하기 위해 세이와 정책 연구회라는 파벌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들의 규모가 무시할 정도가 아닌데다가 무엇보다 기시다는 비 아베 계열이기에 이들이 흔들 것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기시다가 한일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세우고 행동에 나선다면 문제는 아베파의 흔들기 뿐만이 아니다. 지금 알다시피 기시다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고 지지율은 60%대가 나오는 상황이다. 거기에 더해 입헌민주당은 내분으로 망하기 직전이고 국민민주당은 아예 자민당에 붙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최대 적은 아마 입민당이 아닌 새롭게 떠오르는 유신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일관계가 잘 풀린다면 기시다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그러나 지금 한일관계는 일본이 먼저 손을 내민다고 해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너무 심하게 꼬인 상황이며 당연하겠지만 일본 측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 있어 태도를 굽힐 수 없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이기에 단기적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라 지지율 상승에 써먹기에 애매하다. 장기적으로 접근한다면 해결 가능성은 높지만 지금 당장의 지지율에는 도움이 안될 것이다.
기시다가 기존 자민당의 입장을, 그것도 아베의 뜻을 거슬러 가면서까지 뒤집고 윤석열과 한일 단독 정상회담에 나선다면 그건 분명 반대파에게 꼬투리 잡힐 게 많다. 지금 자민당 내 강경 우파나 넷우익 사이에선 기시다가 한일관계에 지나치게 저자세라고 비판받는 중인데 분명 한다 하면 한국으로부터 강제징용 배상 요구 철회 약속이나 받고 하라고 더 욕먹을 것이다.
즉 2018년 당시 남북정상회담과는 달리 2022년 한일정상회담은 선거용으로도 쓰기 안좋다. 오히려 기시다의 친한적 행보 강화에 불만을 품은 강성 우파층이 유신회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유신회는 이 틈을 노려 자민당이 일본 국익을 포기하고 있다고 네거티브를 할 것이고 자민당 내에서도 한국에 양보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내분이 날 것이다,
결국 참의원 선거는 자이니치vs일본인이라는 마치 윤미향이 총선은 한일전이라 드립쳤던 것마냥 이런 식으로 프레임이 잡혀 자민당이 예상 외로 선거에서 부진하고 기시다가 아베에게 꼬투리 잡혀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안되려면 한일정상회담의 조건으로 강제징용 배상 요구 철회, 위안부 합의 이행 등 정도라도 내거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그냥 회담 자체가 결렬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한국의 보수 정권이 친일적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친일이라는 겉모습을 하고 뒤에 칼 꽂는다고 보기에 못미더워 한다. 그 예가 요미우리 TV에 출연한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발표한 최악의 한국인 2위에 이승만이 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이 친일파를 기용했다는 이유에서 친일이라 평 받지만 일본에선 독도에 침범한 일본 어선들을 폭파시키고 임기 내내 끝까지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했다는 점 때문에 문재인 이전까지는 반일의 최고봉으로 평 받았다.
무토 마사토시를 인용한 것은 간단하다. 이 사람이 일본 외무성의 지한파 관료층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본 우익들은 한국 보수를 싫어한다. 그것의 최절정을 찍은 게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 사과 발언 사건이었다.
이명박은 임기 초만 해도 일본에서 친일적인 인사로 평 받았다. 전임자인 노무현 때 독도 문제와 야스쿠니 문제로 크게 다퉜었는지라 후임자가 반노 세력이었기에 기대가 있었고 특히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 일본이 상대적 친한파인 하토야마가 총리였기 때문에 한일관계는 한동안 우호적이었다. 2016년에 체결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사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되던 것이었고 이 시기 간 나오토 총리가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아 식민 통치에 대해 사과하는 간 담화를 발표할 정도로 한일관계는 매우 좋았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명박을 믿었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이 친한파였던 간에서 상대적 반한인 노다로 바뀌며 상황이 달라진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인들의 조롱이 일본 언론에 보도된 것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가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위안부 문제를 끝내는 안을 거부하면서부터 어긋났다.
급기야 이명박 정부는 아키히토 천황에게 과거사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현재 천황이 히로히토의 자식인 만큼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사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일본 사회의 문화적 맥락을 무시한 발언이나 다름 없었다. 일본 황실은 2,600년 동안 존재해왔으며 그렇기에 2차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조차도 못건들인 일본 그 자체의 정체성이었는데 그걸 부정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독도를 방문한 사건이 절정이었다. 이때가 딱 아베 신조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였다. 일본은 좌우 할 것 없이 독도를 메이지 38년 각의 결정서를 근거로 자기 영토라고 해왔었다. 그런데 친일 대통령이라 생각했었던 사람이 독도에 방문해 '한국령'이라 새기니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그 후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도 한동안 일본을 적대하다가 나중에 오바마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위안부 합의를 대충 맺고 끝낸 걸 보면 한국 보수에 대한 일본인들의 배신감이 컸을 것이다.
사실 일본인들의 한국 보수에 대한 환상은 55년 체제 당시 한국의 군사정권과 일본 간의 밀월관계에 시작되었다. 다들 잘 알겠지만 일본 우익의 뿌리 중 하나인 기시 노부스케는 한일협력위원회를 만들어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밀어줬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도 전두환이 방위분담금 명목으로 40억 달러 요구하는 터무니 없는 짓 했을 때도 받아줬었다. 즉 일본인들 입장에선 한국 보수 진영이 자신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성장하면서 한일관계가 일방적인 수혜관계에서 상호관계로 발전하고 특히나 90년대를 전후로 위안부 문제가 급부상하여 한국 내 반일 여론이 강해지면서 일본 우익이 한국 정부와 밀월관계를 이어가는게 무리가 생겼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이 친일본 진영 국가가 더 이상 아니게 되었으니 잘해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고 한국 입장에서는 친일 논란까지 만들면서 일본과 밀월관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렇게 이미 한국 보수와 일본 간의 밀월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그냥 일본에 좋은 말 몇마디만 던져 관계를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 같다. 이게 일본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게 윤봉길 기념관에서 대통령 출마 선언한 사람이 이제와서 나 친일이니 믿어줍쇼 하니 꼴 받는 것이다. 오히려 독도 문제라던가 과거사 문제에서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와 그다지 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일본 측의 입장에는 모르쇠 한 체 자신의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럴 거면 그냥 일본에 강경하게 하지 왜 일본에 친한척하면서 뒤에서 칼로 찌를 궁리만 하고 있냐는 게 일본 측 생각이다.
물론 나는 문재인이 한일관계를 망쳐놨다고 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조금은 친일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일간 갈등이 더 벌어져봐야 좋을 것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이미 몇십년에 걸쳐 쌓이고 쌓인 한일관계의 앙금을 그저 달콤한 말 몇마디로 일본을 속여 넘겨 해결할려는 태도는 안일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과 진정으로 대화하며 서로의 과거사를 서두르지 않고, 또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