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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투 세대 담론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산업

아이가 세상을 구하는 중심이라는 가치관

by 제이슨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고 그 에반게리온은 철저히 전공투 세대 담론의 연장선이었다. 아직 아이인 신지가 신세기를 열 에반게리온 초호기의 조종사가 되는 것은 더 깊게 들어가보자면 전후 일본 전공투 세대 담론 형성의 맥락을 봐야 한다.


1960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은 미국 정부와 신안보조약을 체결했다. 아직 전쟁의 아픔이 가시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가 다시 전쟁이 가능해지는 사회를 선택해갈려고 하는 것은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커다란 실망감을 줬다. 이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것은 전학련-전공투로 이이지던 집단으로 이들은 과거의 원죄가 있는 기성세대들, 즉 전쟁 세대로는 일본을 바꿔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공투 세대가 내린 결론은 바로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이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학생운동이 소강 상태에 접어든 후 많은 전공투 출신들은 애니메이션 업계로 들어갔다. 대표적인게 미야자키 하야오인데 그가 만든 작품인 이웃집 토토로, 마녀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두 아이들이 세상을 구하는 중심에 서있는 작품들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한 전후 포스트 모던 기류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써 전공투 세대의 담론을 이어간다. 이러한 에반게리온의 서사는 진격의 거인으로도 이어졌다. 진격의 거인 속에서 중심에 있는 것 또한 어린 아이였던 에렌과 아르민, 미카사였고 결국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한 에렌이 아르민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기는 결말을 택하는 것 역시 비록 그 시점에서는 어른이었지만 어린 아이의 순수성을 잃지 않은 아르민이었기에 그런 해석이 된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은 에반게리온류 서사와는 조금 다르게 죠죠류 서사로 흘러가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인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이다. 이 죠죠류 서사는 분명 전공투 세대의 담론과는 거의 결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역시 완전한 결별이라 보긴 그런게 그 서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귀멸의 칼날은 자기 파괴적이었던 에반게리온이나 진격의 거인보다도 더 아이가 세상을 구하는 구조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일본 전통적인 영웅상, 즉 전국 시대 무사였던 미야모토 무사시상인 강자는 약자를 무조건 지킨다는 그런 식의 감성으로 흘러간다. 당장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는 무잔을 쓰러뜨릴 시점 때까지도 아직 청소년이었으며 귀살대 대원들 또한 나이가 어리다.


결국 귀멸의 칼날은 에반게리온류의 서사와 결별한 일본판 신세대 작품이었지만 그럼에도 전공투 세대의 담론의 영향이 존재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아이가 세상을 구하는 중심에 있는 서사를 충실히 따르는 점 말이다. 진격의 거인은 전공투 세대 담론의 영향을 받은 에반게리온류 서사이면서도 반대로 자유를 추구하던 아이가 진실을 깨달아 세상을 파괴하고 뭐 진정한 순수성을 가지고 있는 다른 아이에게 인류의 미래가 맡겨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귀멸의 칼날은 반 에반게리온류 서사로써 전통적인 영웅상의 모습만 그렸지만 그럼에도 아이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애매하게 선 그은 진격의 거인이나 귀멸의 칼날과는 달리 전공투 세대와의 담론을 완전히 결별하려 한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날씨의 아이다. 날씨의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관념 자체를 거부한다. 마지막에 가서는 원래라면 세상을 구해야 할 호다카와 히나가 세상을 부수는 결말로 갔다.

이러한 결말에 대해 히나(청년층)의 희생으로 비(사회 문제. 특히 잃어버린 30년)이 그치지 않는다면 차라리 영원히 그치지 말라는 메세지라는 해석도 있다. 이는 어찌보면 아이가 세상을 꼭 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사례로서 눈여겨 볼 만은 하다. 그런 점에서 날씨의 아이는 젊은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에 의문을 던진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사람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 풍조를 비판한 것과 별개로 과연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까지 옹호하려 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들도 제기된다. 히나의 희생의 정당성을 다 떠나서 어찌 되었건 호다카가 한 선택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세상을 무너뜨린 선택이었다. 이 작품이 끝내 호다카에 대해 부정하는 쪽의 의견은 전혀 싣지 않으면서 개인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까지도 옹호하려는 태도로 가버리며 2% 아쉬웠다.


곧 있으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극장판 작품 <스즈메의 문 단속>이 개봉하고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 사이 쯤에는 귀멸의 칼날 3기와 진격의 거인 파이널 시즌의 최종장이 방영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변화로 일본 사회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 지켜볼 수 있기에 흥미롭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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