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노벨, 그러니까 라이트노벨(가벼운 소설)을 자주 읽는다. 이 중에는 내청코, 소아온 같은 유명한 책들도 많고 그보다 덜 유명한 것들도 있다. 그런 라노벨들을 읽을 때 보통 별 생각없이 본다. 라노벨도 소설이라면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웬만한 라노벨들은 문학이라고 붙여주기엔 좀 모자란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내게도 소설들 만큼이나 인상깊었던 라노벨이 있다. 이상한 제목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피하게 되지만 따지고 보면 굉장히 짜임새 있고 문장력도 좋고 소설로서 시사하는 바도 상당한 라노벨이다. 바로 오늘 소개할 책 <사쿠라장의 애완그녀>이다.
작품의 배경은 스이고라는 예술 학교에 문제아들이 모인 사쿠라장이라는 기숙사다. 주인공 칸다 소라타는 다른 문제가 없었음에도 원래 살던 기숙사에서 고양이들을 주워와 키우는 바람에 쫓겨나와 살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쿠라장에 스이고로 전학온 시이나 마시로라는 여학생이 오게 된다.
시이나 마시로는 생활력은 파탄났다. 방은 엉망이고 제대로 옷을 입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보니 영국에서 이미 실력을 극찬받은 천재화가였고 만화가 그리고 싶어서 일본에 온 것이었다. 마시로의 재능을 낭비하는 듯한 행동에 마시로와 영국에서 같이 그림을 그렸던 리타라는 친구가 찾아오게 되며 우연히 소라타는 마시로가 그린 그림을 목격한다.
마시로의 재능은 정말 압도적인 수준이었고 소라타는 같은 나이임에도 이뤄낸 것 없는 자신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가진다. 그러나 얼마 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오히려 여기서 동기를 얻고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게임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 작품에 나오는 나머지 사쿠라장의 학생들도 천재 또는 범인으로 나뉘어져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를 두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보통 작품에서는 천재들은 게으른데 성과가 잘 나오는 것처럼 묘사하지 이 작품은 밤새 작업하고 아침에 쓰러져 자는 마시로의 모습을 통해 천재도 자기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오야마는 피나도록 노력했음에도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평범한 범인들에게는 시련을 안겨다준다. 작중 소라타의 친구이자 사쿠라장의 학생 아오야마 나나미는 오사카에서 홀로 상경해 성우가 되기 위해 생활비도 직접 벌고 쓰러질 정도로 매일 연습하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했다. 모든게 좌절된 나나미는 정말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미타카 진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천재 애니메이터인 카미이구사 미사키와 함께 작업하길 원하지만 정작 아마추어 각본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작중에서 그가 말하길 재능은 주위 사람들을 자각없이 말려들게 해 너덜너덜 하게 만드는 것이며 가까이 있을 수록 더욱 그렇다고 한다.
주인공 소라타도 시련을 피해가지 못했다. 여러차례 자신이 만든 게임을 공모전에 보내고 마침내 회사로부터 제의를 받아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열심히 자신이 온 정성을 바쳤음에도 다른 게임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이유로 소라타의 기획안은 퇴짜맞는데 소라타의 기획안에 쓰인 마시로의 그림만 회사관계자들에게 주목받는다.
소라타는 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너덜너덜 해질 도록 노력해도 아무 쓸모없다"며 한탄하는데 이 시기 마시로는 소라타와는 달리 2번의 투고만에 만화 정식 연재에 성공하고 인기있는 신인만화가로 급부상했다. 이처럼 사쿠라장의 애완그녀는 재능이 있는 자에게는 성공을, 평범한 자에게는 시련을 안겨다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작가가 이를 통해 '만약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실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노력에는 합당한 보상이 따라와야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싶지 않았나 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자신 속에서 많은 물음이 일어났다. '이들은 죽을 만큼 노력해도 실패와 좌절을 맛보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많은 청소년기에 이걸 본다면 자괴감이 들 정도로 이 책은 라노벨, 즉 가벼운 소설임에도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작중 소라타와 마시로가 처음 만난 장소에서 마시로는 대뜸 소라타에게 너는 무슨 색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 소라타는 지금은 비단벌레 색이라며 얼버무리는데 이는 자신의 명확한 색이 없음을 뜻한다. 그리고 소라타는 역질문으로 마시로에게 너는 무슨 색이 되고 싶냐고 묻는데 마시로는 망설임 없이 흰색이라 대답한다.
여기서 흰색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엿볼 수 있다.
" 당신의 눈에는 자신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디 좌절하지 마십시요. 당신의 미래는 아직 백지입니다. 백지이기에 어떤 미래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
이처럼 사쿠라장의 애완그녀는 청소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작품이다. 노력과 재능, 그리고 실패와 좌절의 마주를 주제로 이렇게 잘 다룬 작품은 소설 중에서도 찾기 힘들다. 자신의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