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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리 교육과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의 갈림길, 진보와 퇴행

by 제이슨

2000년대는 일본에서 다시 활기가 조금이나마 생겼을 때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가 되며 전환점을 맞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자민당에서 철저히 비주류였던 사람이었다. 특히 헤이세이 아저씨로 유명한 오부치 게이조 및 하시모토 류타로와 총리직을 두고 싸우다가 패할 만큼 철저히 주류에서 밀려나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우익 대중주의적인 정치가였다. 성역 없는 개혁을 내걸고 공기업 민영화, 낙하산 철폐 등 관료 조직이 반발할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이게 도박이었던게 자민당의 주요 기반이 관료층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55년 체제를 겪으며 정치가란 관료들이 해놓은 정책에 도장 찍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걸 깬 게 고이즈미 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아베 신조 이전까지 가장 관료를 잘 다루던 정치가였다. 오늘날 기시다는 정 반대로 관료에 휘둘리지만.

특히나 그가 가장 최고의 도박으로 걸었던 것은 우정 민영화였다. 우정 민영화로 전통적인 관료층을 한번에 조지며 국민적인 대스타가 된 고이즈미는 이어서 의욕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했다. 지금에 와서야 이때 고이즈미 내각의 정책들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작은 정부만을 내세우면서 복지 사각지대가 늘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어쨌거나 고이즈미 총리는 당시로썬 불황을 극복한 총리였다.


내가 왜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얘기했나면 이때의 시대상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변화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의 교육 방침은 유토리 교육이라는 것이었는데 교과목 수업을 줄이고 활기찬 학교 생활을 강조했었다. 이러한 흐름은 쉽게 말해 당시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느냐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90년대의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났던 것이었다.

이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을 꼽으라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을 꼽을 수 있겠다. 이 두 작품은 큰 틀에서 학원물이라는 점이 공통점인데 밝은 분위기에서 우정을 강조하며 희망찬 내일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하루히는 하루히즘이라 불릴 만큼 일본 애니메이션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뒤 이어 이 시대상을 이어받은게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와 토라도라였다.


하루히즘 시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철저히 개인 간의 문제에만 집중함으로써 나쁜 의미로는 일본 애니 특유의 사회 문제 경시성이 심해지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과 에반게리온은 사회에 정면으로 부딪혀 목소리를 낸다면 하루히즘 시대 애니메이션들은 낙관적인 미래만을 중시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애니메이션은 하루히즘이 단순히 현실에 관심을 덜 두 던 것이었다면 이 시기는 그냥 당장의 흥미를 최우선을 두는 현실 부정형으로 흘러간다. 하루히가 학원물 러브코미디의 시작을 열었다면 2012년 방영한 소드 아트 온라인은 2020년대까지 영향을 끼치는 패러다임인 이세계물의 시초 격이 되는 작품이다.

소드 아트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오타쿠들의 희열만을 충족시키는 단순 흥미 위주 킬링타임용 양산형으로 찍어내듯이 나온다. 소아온은 재미면에서 보면 압도적이고 퀄리티 또한 매우 준수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오는 다른 양산형 이세계물보다야 낫긴 하다. 그러나 소아온은 진짜 말 그대로 현실을 부정하여 멋진 이상에 갇히겠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모두 재밌게 시청했었고 나름의 애정도 있다. 하지만 점점 갈 수록 서사가 퇴행하고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로 자기만족을 하는 용도로만 그치려는 듯 해보여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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