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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가 풀어내는 일본 사회의 공동체 담론

최근 애니들에 관한 고찰

by 제이슨

최근 1년 사이에 흥행한 애니로는 대표적으로 리코리스 리코일, 체인소맨,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봇치 더 락, 스파이 패밀리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상당히 재밌는 작품들이라 필자도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들이다. 어쨌건 이 작품들도 단순한 씹덕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우린 일본 사회의 공동체 담론을 발견할 수 있다.

첫번째로 공동체 담론을 풀어내는 방식은 자신이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작품은 봇치 더락, 체인소맨, 리코리스 리코일이 있는데 리코리스 리코일에선 타키나가 DA를 떠나 카페 리코리코와 치사토에게로, 봇치 더락에선 아예 속할 곳이 없던 외톨이인 고토 히토리가 밴드에 속하게 된다.


일본은 겉으로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공동체주의가 강한 곳이다. 과거 전국시대부터 번으로부터 나간 로닌들은 어디에서도 대접받지 못했으며 이는 바람의 검심 속 히무라 켄신으로 잘 느끼지는 부분이다. 특히 지난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사회는 공동체가 무너지면 히키코모리라는 용어가 보여지는 듯이 개인이 파편화 되어 고독사 한다는 걸 너무 잘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공동체에 속할 때 안심을 느낀다. '타다이마', '오카에리'라는 말에서 느끼듯이 일본인들은 잠시 떠나더라도 돌아올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서 안심을 한다. 전국시대부터 영지 중심의 지방 분권의 사회와 신토라는 종교는 오랫동안 충성심과 일체감만 확인시켜주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줬는데 이게 일본에서 결속을 다지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두번째 방식인 기존의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방식도 이와 맞닿아있다. 스파이 패밀리 속 로이드 포저와 요르 포저는 각기 서로 섞일 수 없는 신분임에도 현재 자신이 속한 공동체, 즉 가정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를 지키기 위해 현재를 지키는 것을 선택한다. 이게 또 오늘날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바로 일본 사회의 보수성 부분인데 진실을 알면 서로가 화합할 수 없기에 이를 덮고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진격의 거인 속 칼 프리츠 왕이 잘 보여준 사례인데 그는 벽 안 사람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안락을 누리는 건데 스파패 속 포저 일가가 언제 깨질 지 모르는 유리잔인 것처럼 말이다.


이게 오늘날 일본 사회를 잘 보여준다. 스파패 속 로이드 일가의 평화가 영원히 이어질 리 없다고 보는 대부분의 독자처럼 일본 사회도 중요한 문제는 덮는 게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다. 그 덕분에 자민당이 잃어버린 20년의 주요 공신 중 하나임에도 계속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거고. 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당장은 더 나은 선택지도 없으니까. 다만 언젠가 폭발할 수 밖에 없다.

세번째 방식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공동체를 떠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 건담 시리즈와 진격의 거인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특히 이번에 방영하고 있는 수성의 마녀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자신의 과거에 혼란이 있는 슬레타 머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개인이 자유롭게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건담 시리즈 대부 토미노 요시유키가 극좌적 진영에 있는 걸로 알 수 있다시피 건담은 매우 신좌파적인 포스트 모던적 입장을 취하는 작품이다. 작품이 가면 갈 수록 슬레타는 미오리네를 통해, 구엘은 슬레타를 통해 바뀌어 가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때로는 거짓된 평화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떠나게 된다.


어찌보면 두번째 방식과 반대되는 입장인데 그럼에도 세 가지 방식 모두 말하려는 바는 간단하다. 바로 공동체에 있든 속하지 않고 떠나든 독립된 자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코리스 리코일의 타키나나 스파이 패밀리의 포저 일가나 건담의 슬레타나 결국 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지금의 공동체에서 벗어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애니가 지향하는 최종적인 시사점은 "이건 다른 누구의 인생이 아니라 너의 인생이니 자아를 스스로 실현해야 한다. 단 그 여정에서 주변의 도움을 거부하지 마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갈 수록 일본이 불황에 시달리고 우리도 이 전철을 밟아가는 상황 속 참 의미 깊은 주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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