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이라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자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의사 리유는 병에 맞서 사람들을 돌보고 타루는 실존주의적 사고관으로서 질병이라는 현실에 직시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신부는 전염병은 타락한 인간에게 내린 신의 심판이기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관념론적인 모습을 보인다.
카뮈는 우선 실존주의 문학가다. 동시에 프랑스 공산당원으로서 체제에 저항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알제리 태생임에도 알제리 독립을 반대한 시대적 한계를 가진 사람이었고 동시에 2차세계대전 당시의 레지스탕스들을 싫어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페스트> 속 재앙은 전전 시대 스페인 독감이나 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속 상황을 은유했다고 보는게 맞다. 그 상황에서 관념과 실존적 세계관이 부딪히며 벌어지는 시대를 묘사했다. 어쩌면 재앙의 상황에서 순응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항해야 하는가 카뮈는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카뮈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작중에서 나오는데 바로 관념론자 신부와 실존주의 저항가 타루를 둘다 전염병으로 죽인 것이다. 관념론자 신부는 비시 프랑스에 순응하던 교권 세력을, 실존주의자 타루는 레지스탕스를 상징한다. 카뮈는 공산당원이었음에도 레지스탕스들이 전후에 한 것 없이 꺼드덕 거리는 걸 싫어했다.
다만 그렇다고 카뮈가 실존주의적 저항의 의의를 아예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걸 상징하는 인물이 의사 리유이며 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전염병이 종식되는 것을 지켜봤다. 타루보다도 전염병 종식에 기여한 그의 투지는 오늘날 코로나 19 속 의사의 모습과 겹친다. 그래서 카뮈가 말하는 대답이란 진정한 의미의 실존주의가 아닐까 한다.
<페스트>는 오늘날 실존주의자들은 물론 관념론자, 더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패러다임을 제시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