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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Oct 09. 2022

아베의 죽음이 한국에 좋지 않은 이유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과 닮은 이유

오랜만에 일본 정치로 돌아왔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한국인들에게 아베의 죽음은 그다지 좋은 결말이 아니다. 뭐 내 주변 사람 중에서는 아베 죽은 거 보고 쪽X리가 잘 뒤졌다며 좋아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아베를 싫어하는 이유를 공감 못하는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아베가 죽은 이후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아베를 흔히 혐한 정치인으로 분류하지만 정작 그는 혐한 운동을 억제하던 기성 보수적 정치인이었다. 자민당이 혐한 세력인 재특회와 사이가 좋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재특회의 일정 표가 자민당으로 가는 것은 맞지만 자민당에게 있어서 재특회는 골치 거리 중 하나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재특회의 활동을 축소시킨 헤이트스피치 금지 조례 통과를 주도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극우 정당이라 욕하는 자민당과 유신회였다. 또 동시에 아베는 1차 재임기에 현충원을 참배하기도 했고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유지하고자 했다. 위안부 합의도 우리나라에서는 비판받지만 일본에서는 공산당마저 찬성할 정도로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어쨌거나 야마가미 테츠야의 살인으로 아베는 일본 우익의 영웅이자 순교자로 남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그는 테러의 무고한 희생자가 되었기에 말이다. 이러한 사례를 의외로 일본 정치사에서 하나 더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 또한 아베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군국주의를 억제하던 사람이었다.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조슈파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한 입헌정우회라는 정당과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중심으로 한 군부로 나눠져 있었다. 그 중 야마가타는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을 도입해 일본 군국주의의 토대를 만들 정도로 강경한 자였다.


반면에 이토 히로부미는 어쨌든 문민 정치인이었다. 또 국제정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 마무리 되가고 독일에 맞서 영러의 연합이 구상되던 시기였는데 그에 발맞춰 러시아 측과 분쟁을 매듭지으려다가 이토는 총에 맞고 죽은 것이다.


안중근은 그러한 국제 정세에 대해 무지했기에 그냥 이토 히로부미를 쏴죽인 것이고 이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다.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것은 1909년 10월이고 한일합방이 공식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받은 게 다음해 8월 29일이었다. 거의 이토 히로부미가 죽고 난 다음 늦춰지고 있던 병합이 매우 빠르게 마무리된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경쟁자 이토가 죽자 야마가타를 위시로 한 군부 강경파들이 병합을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조선을 병합한 일본 제국은 남만주로 진출하여 철도 이권을 독점하고 1차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써 남양군도+칭다오, 각종 중국의 이권을 얻은 것도 모자라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본격적인 전쟁의 길로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의 발판에는 한일 병합이 있었다.


아베의 죽음도 이토의 죽음과 같다. 아베의 죽음 이후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공명당과 합해 과반을 차지했고 아베 때부터 차근차근 진행해온 집단적 자위권의 범위를 확장해 이번 방위백서에서 반격 능력을 추가했다. 특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며 일본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일본 입장에선 재무장의 명분이 생기고 있다.


또 하나 무서운 점은 일본은 비핵화 약속을 한 국가 중 유일하게 고농축 플로토늄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나마 지금 헌법 9조 덕분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건데 만약 이게 개정되면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더더욱 높아진다. 더욱이 일본은 대기권 재돌입 기술과 로켓을 비롯해 뛰어난 우주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얼마든지 ICBM으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이미 동아시아에선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작년에 아소 다로 부총리는 중국이 대만을 쳐들어가면 일본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개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시점에서 이 말은 중국하고 전면전을 감수하면서까지 오키나와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사실 인도 태평양 전략은 아베의 구상이었다. 즉 쿼드는 아베가 구상해낸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물론 쿼드는 트럼프가 추진하고 바이든 때 완성이 되었지만 최초 제안자는 아베였다. 일본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자유진영의 지지를 받으며 전범국의 멍에를 씼고 지역 대국이 될 발판을 다시 마련해가고 있고 지금 상황이 계속 된다면 분명 그렇게 될 거다.


그에 비해 한국은 아무런 대비가 없다. 일본과 중국이 자신이 구상하는 아시아의 질서를 놓고 대립하는 동안 한국은 일본도 싫고 중국도 싫다면서 미국만 믿겠다는 심보로 가고 있다. 지나칠 정도로 국제정세에 무감각한 한국인들은 아베의 죽음 하나로 요동치는 동북아시아의 상황보다 이준석과 윤석열의 싸움이 더 중요할 것이다.


만약 이대로 일본도 싫고 중국도 싫으니 미국한테 맡길래! 이런 생각으로 임한다면 본인들이 그렇게 싫은 중국 혹은 일본의 군사력이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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