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궁금할 것이다. 어떻게 일본에선 자민당이 저렇게 권력을 오랫동안 잡고 있냐고. 이 때문에 일본은 정치 후진국이라는 별명도 얻었으며 한국에서 3류 국가 취급 당하는 주 원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선 자민당의 일당 우위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볼 거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긍정, 부정 양쪽 입장을 다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담담하게 얘기할 것이다.
먼저 일본 특유의 보수성과 그 아젠다를 전환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인 게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섬나라로써 외부의 침입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기껏 해봐야 몽골이나 미국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섬나라로써 일본이 보여준 특징은 외부의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보수성을 유지했다. 이 말의 절정은 존황양이였다.
존황양이는 처음에는 우리가 아는 위정척사파와 비슷했었다. 그러나 서양의 기술을 보며 단순히 쇄국을 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 섬나라로써 보여준 유연한 태도였는데 그래서 이들은 고메이 천황의 뜻을 거스르고 과감히 쇄국을 통한 양이는 포기한다. 대신 힘을 길러 양이를 하자고 주장을 하였고 그렇게 권력을 잡은 삿초동맹의 유신지사들은 메이지 유신을 펼친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은 케말의 근대화는 달리 정신과 사상 측면에서의 근대주의를 거부했다. 케말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으로써 아랍 문자를 버리고 알파벳을 들여오는 등 정신 자체를 아랍에서 서구로 바꾸고자 하였으나 일본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의 유신은 천황이라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한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최초 기독교인, 사회주의자 총리 가타야마 데쓰
그렇기에 메이지 유신의 와중에 양이는 점점 사라져 갔지만 존황은 점차 강화되어 갔고 이것이 오래되면서 일본인들은 급진적인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고토쿠 슈스이나 가타야마 센이 열심히 선전했음에도 일본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성장하지 못한 반면 존황을 내건 군부 강경파는 힘을 얻었다. 물론 군부 강경파의 대부 기타 잇키는 급진주의자이나 일본의 상황을 봐서 존황이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사상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본이 급진화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바로 전쟁이 끝난 뒤, 그러니 전후 쇼와 시대다. 이때는 보수고 나발이고 더 이상 지킬 가치마저 미국이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 쑥대밭이 된 상황이었다. 맥아더 장군과 GHQ(특히 민정국)는 일본의 근본 자체를 개조한다는 생각으로 사회당 출신 가타야마 데쓰가 총리가 되는 것을 묵인했다.
그러나 이들은 미숙했으며 일본인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요시다 시게루, 하토야마 이치로, 이시바시 단잔, 기시 노부스케, 이케다 하야토로 이어지는 고도 성장기 동안 사회당은 아예 복지 정책조차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며 반대했다. 그들에게 복지란 부르주아들이 노동자들에게 당근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봤으며 혁명을 통해 의회 민주정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노선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유럽의 좌파 정당이 의회 정치를 통한 복지를 주장해 표를 받은 것과 대조된다.
두번째는 관료 조직 문제다. 관료조직은 절대적으로 보수 세력을 선호한다. 메이지 유신 이래 그들은 입헌정우회, 민정당-자유당-자민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카르텔과 일관되게 같이 일을 해왔다. 그렇기에 이들의 유착 관계는 장난 아니다. 록히드 사건부터 리쿠르트 사건, 사가와규빈 스캔들, 오자와 스캔, 모리토모 비리 사건까지 안 엮인 게 없다.
자민당은 안정적으로 국정 운영을 수행해야 하고 관료 조직은 자기들의 지위를 보장해줄 만한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이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관료들은 자민당의 방향성에, 자민당은 관료들의 특혜를 보장해주며 카르텔이 된 것이다. 관료 조직은 자민당 내 비주류, 고이즈미 준이치로와는 그닥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례적으로 아베 신조에게는 일방적으로 끌려다녔지만 반대로 스가 요시히데나 기시다 후미오 같은 대부분의 자민당 총리들은 관료들의 통제 아래 있다.
그래서 관료 조직은 자민당이 아닌 집단이 권력을 잡았을 때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2009년 민주당이 권력을 잡은 뒤 하토야마 유키오가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려 하다가 미국과 야당, 여론에서 공격을 받을 때 관료들 중 그 누구도 나서서 비호해주지 않았다. 이후 간 나오토는 대놓고 관료를 '바카야로'라고 칭하다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관료들이 아무도 협조하지 않은 채 총리를 무시했다. 간 나오토는 그나마 총리 권한을 써서라도 방사능이 동부를 넘어 더 확산되는 것을 방지했으나 진실과 상관 없이 관료 조직이 우호적인 언론은 간 총리의 책임으로 보도했고 그렇게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마지막은 자민당이 잘할 때는 잘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내가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면서도 그걸 주도하는 자민당이 썩어도 준치라고 보는 이유다. 어쨌거나 좋든 싫든 자민당은 1955년 이래 70년이 다 되가는 시간 동안 전전 일본이 파괴된 이후 새로운 일본의 정체성을 만든 집단이다. 버블경제를 이끌었던 것도 자민당이고 그걸 붕괴시킨 것도 자민당이니 말이다.
아무리 일본이 썩었다 한들 대신 집권한 사회당과 사키가케, 민주당은 대안이 되기는 커녕 스스로 자멸하며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리고 그걸 복구한 것은 언제나 자민당이었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을 때 복구하겠다고 권력을 잡은 비 자민 연립정권은 자신들의 부패와 옴진리교 테러를 겪으며 스스로 무너졌고 그걸 살린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였다.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일본 민주당 정권 동안 중국에게 경제를 추월당하고 엔고가 고착화 되고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다. 이들이 아베(1차)-후쿠다-아소로 이어지는 자민당의 도련님 정권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에 비해 초라한 결과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황폐화된 환경을 아베는 아베노믹스를 통해 조금이나마 개선했다. 나는 아베노믹스에 대해 단기부양책이었을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반쪽짜리 개혁이었다고 보나 그래도 산소호흡기 정도는 붙인 격이다.
결국 이러한 여러가지들이 겹쳐 자민당이 장기집권할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 봤다면 자민당이 어쨌든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장 낫다는 건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이 체제론 일본은 언젠가 망한다. 일본의 경제는 90년대부터 20년대까지 평균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려왔으며 이를 바꿔야 할 정치판조차 고이고 썩을대로 썩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려는 정치인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