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은근히 일본 야당이 잘 되기를 바라는 여론이 크다. 당장 한국인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일본 총리 1순위에는 하토야마 유키오와 간 나오토가 항상 있으며 에다노 유키오 또한 딱히 친한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했음에도 입헌민주당의 대표라는 이유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야당이란 그냥 경멸의 대상일 뿐이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너무나도 잘 알겠지만 2009~2012년 사이의 실정 탓일 거다. 국민 대다수가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밀어 308석에 달하는 거대 여당으로 만들어줬음에도 민주당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지 못했다. 결국 후텐마 기지 이전,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사고, 소비세 인상 논란이 겹쳐 3년만에 자민당에 다시 정권을 내줬다.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최순실 게이트로 지지율 4%를 찍은 대통령을 배출해낸 정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러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어쨌든 2030의 표심을 살짝이라도 잡았지만 일본 야당들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일본 야당들은 호헌과 개헌 사이에서도 길을 못잡고 있기에 자민당 정권에 맞설 대여투쟁을 위한 단결조차 안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일본에선 자민당보다 입헌민주당이 더 구세대 정당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은 외교 안보에서도 경제에서도 의견 일치를 못보기에 통일된 담론이라는게 존재하질 않는다. 또 그들은 도장 추방 건도 거부하면서 아날로그 방식을 옹호할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자민당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정당이다.
한국 사람들한테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호헌이라는 담론도 사실 일본에선 구세대 담론으로 취급받고 있다. 요시다 시게루가 호헌 담론의 시초 격인 사람으로써 보수 본류들은 호헌, 경무장, 경제 우선의 논리로 개헌의 목소리를 억눌러왔다. 그러다가 1991년 미야자와 내각의 걸프전 지원 홀대 논란으로 개헌 논쟁이 터져나왔고 2010년 센카쿠 순시선 사건을 겪으며 지금에서야 자민당에서 개헌파가 호헌파를 누른 것이며 그조차도 3분의 1가량은 여전히 호헌파가 차지하고 있다.
일본 개헌파의 조상 하토야마 이치로
일본에서 보수 방류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전에 하토야마 이치로,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 나카소네 야스히로, 모리 요시로 정도가 네임드 인사의 끝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 청년들은 호헌 담론보다 개헌 담론을 더 신선하다고 느끼는 것이며 호헌 타령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고도성장기의 환상 속에 갇힌 틀딱으로 보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은 지역 조직이 매우 부실하다. 공산당은 그래도 전통적인 노조의 지지 기반을 가지며 사회당 붕괴 이후 유입된 구좌파층을 데려오는 것에 성공했지만 입민당과 국민민주당은 신생 정당이고 오자와 이치로가 있을 시절에 비해 정치력도 매우 하락한 상황이라 미래가 더 암울하다.
지역 조직의 미약이 왜 문제인가? 간단하다. 2018년에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면서 지역 기반이 날라간 미래통합당이 2020년 총선에서 어떠한 결과를 얻고 민주당이 자멸하기 전까지 빌빌 거렸는지 보면 된다. 일본의 민주계 정당은 크게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으로 갈라져있는데 둘의 세력이 크게 차이가 안나는지라 안 그래도 미약한 세가 반으로 더 준 것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국민민주당은 아예 자유민주당이나 유신회와 손잡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물론 이 둘이 합당을 받아줄 리가 없지만 입헌민주당을 고사시키기 위해 자민당이 이들을 이이제이 논리로 협력을 받아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유신회가 입민당을 대체할 야권 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일본의 정치 구도는 보수vs혁신도 보수vs민주도 아닌 보수vs지역주의 보수로 흘러갈 수도 있게 되었다.
야권 세력을 위해 그래도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이들도 나름대로 바꿔볼 의지는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관료 집단과 언론의 노골적인 적대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뭘해도 안될 거라는 패배 의식이 쌓여 체념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 현재 일본 야당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