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오브듀티 블랙옵스 콜드워에 대한 스포가 있다. 주의 바람.
그동안의 콜옵과는 달리 블랙옵스 콜드워에선 미국은 선이 아니다. CIA와 함께 무시무시한 계획을 실행하려는 페르세우스를 막기 위해 행동하는 주인공 벨은 애들러가 포로로 잡은 페르세우스 부하를 세뇌시켜 만들어낸 인물이었으며 이는 오로지 그를 이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애들러의 행동 자체가 아예 이해가 안 가는게 아닌 것은 페르세우스의 계획이 최종단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남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페르세우스가 원하는대로 그린라이트 작전에 이용되어 보관된 유럽에 배치된 미국의 핵무기가 소련 강경파에 의해 기폭되기 때문이었다.
즉 어찌 되었건 미국은 인권 침해를 보여줬지만 당위성 측면에서 비판하긴 어려우며 애당초 세뇌한 대상이라고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매력적인 특성을 가진 인물은 크게 두 명이 있다. 한명은 애들러고 한명은 페르세우스다.
애들러는 전형적인 냉전 시절 CIA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소련에게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정보를 숨기고 인권은 좀 무시될 필요가 있는 가치였다. 이런 걸 가장 잘 보여줬던 것이 에드거 후버 CIA 전 국장이었는데 이 시기 미국은 정보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소련과는 다른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하는 국가임에도 자유를 침해하는 등 부작용이 컸다.
그리고 이 작품은 두 가지 결말 루트가 존재하는데 베드 엔딩은 소련이 승리하는 것이고 노멀 엔딩은 미국이 계획을 저지하지만 주인공이 토사구팽 당하는 엔딩이다. 토사구팽 당하는 엔딩은 애들러가 벨을 불러놓고 죽이는 것인데 이는 냉전의 상황 속에서 아무리 자기 진영에 이득을 가져다 줬어도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자는 필요 없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조금 상황이 다르긴 하나 대표적인 게 실미도 사건인데 이들은 김신조 사태 이후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였지만 남북이 화해 무드로 접어들면서 필요성이 극단적으로 떨어졌다. 분명 이득을 가져다 줄 존재였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국가 기밀을 안고 있는 그들은 위협이면 위협이지 살려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진영 특성을 가진 리더의 큰 딜레마다. 자본주의적으로 필요할 때는 사용하지만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그런 거다. 물론 공산주의에서도 박헌영 숙청이나 강철의 대원수의 숙청처럼 그런 사례들이 있긴 하나 대개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 세력이 보이는 문제로 크게 지목받는다.
반면 페르세우스는 애들러와는 많이 다르다. 유럽에 배치된 핵무기를 기폭시키고 그 책임을 미국에게 덮어씌우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냥 인권침해나 정보 은폐 정도로만 그치는 애들러는 애교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적어도 벨을 헌신짝처럼 버린 애들러와는 달리 부하를 끝까지 생각하는 부분이 강했다. 약육강식전 세계관이 그의 사상의 기초이나 세뇌당한 벨이 애들러에 붙어먹을 때도 페르세우스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배드 엔딩으로 갈 시 핵무기 기폭 명령을 내리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벨에게 맡긴다.
끝끝내 배드엔딩에선 사람을 세뇌하여 부하로 이용하고 버리려 한 애들러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하는 것에 비해 부하가 배신해도 버리지 않던 페르세우스의 선택은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어찌 보면 공산주의적 리더쉽이 가장 긍정적으로 발현한 게 페르세우스일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차렸겠지만 바로 선과 악이 이렇게나 모호하다는 것이다. 애들러는 잘한 게 없지만 그렇다고 페르세우스도 아닌 그런 것. 현실 세계에 대입해봐도 선악은 이렇게나 모호하다.
블랙옵스 콜드워의 시도는 그동안 선악에 집중하던 콜옵, 더 나아가 할리우드 문화에 나름 발자취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