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은 사회주의 사상의 일부인가?
용어의 개념과 오남용
생각난 김에 파시즘을 사회주의로 볼 수 있는가, 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부 분파가 사회주의에 친화적인 것과 별개로 파시즘은 사회주의 사상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본다. 우선 파시즘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때 과정에서 사회주의의 역할이 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반유대주의 성향의 오스트리아 빈 시장 카를 뤼거는 가톨릭 사회주의자였고 좀바르트나 슈펭글러 같이 관념론을 주장하는 이른바 '독일 사회주의'라 불리는 보수적 사회주의가 원류가 되었다. 그리고 보수적 사회주의는 1차세계대전 패전 이후 '보수혁명론'으로 발전한다. 윙거와 슈펭글러 등이 주도한 보수혁명론은 처음에 나치를 천박하다며 경계했으나 슈트라서와 슈미트가 나치에 넘어가며 어느정도는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독일 파시즘의 원류인 보수적 사회주의는 과연 마르크스주의와 얼마나 접점이 있는가? 애초에 보수적 사회주의자라는 표현 자체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 시몽, 푸리에 계통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관념적이라 비판할 때 사용했던 용어였다. 물론 윙거나 슈트라서가 바이마르 시대에 상당히 친소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도 어느정도 사실이지만 그들은 민족볼셰비키로써 반유대적, 서구화에 맞서는 동방화의 정신적 연대로써 소련과의 친선을 주장한 것으로 더 이상 바이마르에서 지킬 보수주의 가치가 없기에 반서구적, 반문명적 지향성에서 차라리 공산주의자들에게 패를 던진 것이나 다름 없다. 나치 좌파였던 슈트라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에 동의한 적이 없으며 세부적인 경제적 성향도 고전적인 길드사회주의로써 레닌주의식 경제랑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치의 경제 정책만이라도 좌파적이었나? 글쎄? 물론 나치가 폭스바겐을 공급하고 완전고용 상태를 이루고 '기쁨을 통한 힘' 같은 혁신적인 복지 정책 등 여러 면에서 당대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보다 유의미한 성과를 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게 좌파를 넘어 사회주의적이었나를 따지자면 난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나치의 재무장관은 얄마르 샤흐트라는 부르주아인 은행가 출신 정치인이었고 샤흐트가 재군비를 두고 히틀러랑 대립해서 쫓겨난 이후에 장관이 된 괴링은 나치 우파 출신에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뭐 괴링도 국가 주도로 루르 지방을 개발하며 민간 기업들을 인수합병하여 국영기업을 세우긴 했으나 이는 루즈벨트의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나 일본의 2키 3스케 중 기시 노부스케의 만주중공업개발주식회사 설립 추진 등과 비슷하니 사회주의라기 보단 케인스주의, 코포라티즘에 가까울 것이다.
나치당은 초창기 에른스트 룀을 중심으로 한 투쟁 덕분에 강경한 반자본주의 성향을 띈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 이후 나치당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가인민당과 손잡는다. 이 곳의 대표는 후겐베르크였는데 그는 대량의 자산을 보유한 사업가였다. 또 프로이센 쿠데타 과정에서 히틀러는 가톨릭 중앙당의 왕당파 정치인 프란츠 폰 파펜과 손잡았고 이때 나치 좌파에선 반발했다. 집권 후 히틀러와 괴링을 비롯한 나치 우파는 룀과 슈트라서를 처단하는 '장검의 밤'을 일으킨다. 그리고 돌격대를 기존 국방군을 대체할 새로운 계급투쟁을 기치로 내건 인민군, 시민군으로 만들고자 했던 룀의 바램과는 달리 히틀러는 하인리히 힘러를 중심으로 친위대를 재조직하고 국방군의 융커 계층의 권익을 보장해줬다.
이탈리아 파시즘도 살펴보자. 이탈리아 파시즘의 사상적 근원 중 한 명의 인물을 꼽자면 아마 조르주 소렐일 것이다. 생디칼리슴 이론의 공헌자이며 폭력 혁명의 찬미자, 반유대주의자였던 소렐은 레닌과 무솔리니 양쪽의 사상에 영향을 줬던 인물로 알려져있다. 소렐 사후 그의 사상을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한게 국민생디칼리슴이며 이것은 이탈리아 초기 파시스트들, 스페인의 팔랑헤에 영향을 준다. 무솔리니는 단눈치오 같은 미래주의 지식인들의 영향을 받아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를 처음에 내걸었다. 왜냐면 무솔리니를 비롯해 초창기 파시 디 콤바티멘토의 멤버들은 이탈리아 사회당 출신이었지만 1차세계대전 때 전쟁에 찬성하며 사회주의 진영과 결별한 생디칼리스트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 진군 이전부터 이탈리아 파시스트들, 그러니까 검은 셔츠단의 투쟁은 지극히 선택적으로 노조를 겨냥했었다. 포 계곡에서 검은 셔츠단 단원들은 지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산당원들을 폭행하거나 살해하고 다녔고 결정적으로 로마 진군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승인 덕분에 성공해서 애초에 귀족들 및 왕당파랑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체제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가장 좌파적이었던 순간은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라 불리는, 본토에 연합군이 상륙하고 독일 지원으로 무솔리니가 도피해서 세웠던 정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왕의 눈치 안보고 다했으니 말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도 파시즘은 마르크스주의와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해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확실한 창시자가 있다. 또 개념에 대한 정의가 일관성이 있고 확실하다. 그러나 파시즘은 원류를 따지자면 미궁 속을 찾아해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지금도 파시즘은 ~다라고 확실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학자는 없다. 로버트 팩스턴이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에서 지적한 부분이 바로 그거다. 학계에서는 그나마 대부분이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은 파쇼라 보지만 나머지 것들은 확언을 못하고 있다. 가령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은 교권 파시즘이냐 교권 군사독재냐로, 일본 쇼와 국가주의 정권은 천황제 파시즘이냐 봉건적 군국주의 독재냐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엇갈린다. 그나마 루마니아의 안토네스쿠 정권은 확실히 파시즘 정권이 아니라 군사 독재라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지만.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파시즘 낙인 찍기를 정치적 수사로 사용하는 거다. 대표적으로 우파 자유주의자이자 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두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소련식 마르크스주의, 독일 나치즘, 좀바르트와 슈펭글러의 보수적 사회주의, 라살레의 국가사회주의를 모두 같은 사회주의 개념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아예 독일이라는 나라의 철학 전통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좌파 진영도 마찬가지다. 파시즘과 군사독재, 반동주의 이 세 개를 구분하지 못하고 파쇼라는 단어를 너무 지나치게 남발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개념도 사실 따지고 보면 말 같지도 않은 개념이다. '대중독재' 논쟁 때도 박정희를 대중독재로 봐야 하나 파시즘으로 봐야 하나 불판이 타올랐었고.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이라는 단어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개념이 왜곡되어 오남용되는게 조금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