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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May 18. 2023

1차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패한 게 배후중상 탓?

1차세계대전에서 러시아가 항복한 게 마냥 볼셰비키 때문만은 아니다.


전후 유대 볼셰비즘 음모론의 본산지가 된 독일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어떤 반응이었을까? 놀랍게도 루덴도르프는 스위스에 있던 레닌이 러시아로 가는 교통편과 경비 등을 제공해줬다. 러시아를 전쟁에서 빠지게 한 뒤 동부전선의 병력을 모아서 프랑스를 함락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은 루덴도르프 공세를 하여 마른강을 넘어섰으나...킬 군항 반란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애초에 1917년 시점에서 러시아는 더 이상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다. 당장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러시아군이 우세를 점했던 적은 브루실로프 공세를 제외하면 거의 없으며 첫 전투였던 타넨베르크 전투도 분명 동프로이센의 독일군이 서부전선으로 이동한 탓에 전력상으론 우세했지만 졌다. 결정적으로 1917년에서 러시아가 더 이상 전쟁을 못한다고 확실히 증명된 사건이 있었는데 임시정부의 수반 케렌스키가 무리하게 공세를 펴다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고 군 자체가 붕괴 위기에 처한 사건이었다.


러시아가 독일만으로도 버거웠는데 문제는 다른 나라와도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캅카스에서 오스만군이 공세를 취한 것은 실패했다. 캅카스 지역은 낮은 곳에서도 영하 20도로 내려가는데다가 원정 계획이 6개월간 눈이 쌓여 있는 겨울이 시작할 때 시작하기로 했다. 단선 철도가 닿지 않는 곳부터는 도로에 의존해야 했는데 도로는 필수 교통량의 무게를 감당하기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제정 러시아의 체제가 아무리 후진적일지라도 포병 화력 만큼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과의 전투는 물론 러시아가 우세할 때도 있었지만 동유럽에서 러시아의 동맹국이 되어줄 국가의 대부분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범슬라브주의 진영의 일원 세르비아는 베오그라드가 함락당하며 망명정부 및 저항군 신세로 전락했고 루마니아는 1916년에 참전하여 어설프게 싸우다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예 같은 슬라브족 국가이자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아낌 없이 지원했던 불가리아는 동맹국의 편으로 참전했다.


물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이 잘 싸우는 군대라고는 전혀 볼 수가 없다. 걔네는 통일된 지 얼마 안되었는데다가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개같이 털렸던 이탈리아 하나 제압 못해서 이손초 강 주변에서 무의미한 소모전만 몇년 째 했었거든. 그러나 안 그래도 전선이 넓고 독일 하나로도 벅찬 게 러시아의 신세였는데 그나마 도와줄 동맹국들마저 다 털린 상황이었다. 이게 작은 문제로 보일 수 있겠지만 서부전선도 독일에 맞서 프랑스 혼자서 싸웠다면 아마 보불전쟁처럼 끝났을 것이다.


국내 러시아의 보급 체계 면에서도 이미 게임은 끝났었다. 가장 전쟁 준비가 잘 되어있었던 독일조차도 전쟁이 벌어지자 순식간에 탄약이 바닥났는데 러시아는 단기결전을 염두에 뒀는데다가 생산 능력이 매우 부족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물자를 해외에서 발주했는데 특히 TNT 생산은 톨루엔(toluene)이라는 독일에서 원자재 가져오는 독일계 러시아 회사에게 맡겼다가 전쟁이 나니 심각한 상황을 맞이 했다.


1차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제국군은 소총과 기관총 탄약은 동원 계획에 따라 약 33억 6,600만 발을 생산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생산량의 부족으로 러시아군 수뇌부는 27억 4,500만 발로 계획량을 줄였고 이는 전선에서의 탄약 부족 문제를 만성적으로 일으키게 된다. 1914년 9월 9일에 수호믈리노프가 러시아의 주요 기업관계자들을 소집해서 총 665만발의 포탄을 주문하고 한달 평균 150만발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러시아 기업들의 생산능력으로는 한달에 최대 50만발을 생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1914년 11월까지 러시아는 80만 명의 남성을 징병하여 훈련을 모두 마쳤지만, 최전방에서는 계속 병력이 부족하다고 계속 외쳐대고 있었다. 생산 문제 등으로 장비가 부족하니 병력이 소집되어도 무장을 할 수 없고, 무장하지 못한 병력은 계속 훈련소에서 머물거나 비전투부대로 빠져버리는 사태도 이것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오죽하면 아예 러시아 제8군 예하 2개 군단은 노획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소총(만리허 소총)을 제식 장비로 써먹었을 지경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이처럼 러시아 제국은 이미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었고 전쟁을 계속한다고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918년 킬 군항 반란 당시 독일도 전시경제체제와 전투 수행에 한계에 다다랐지만 애당초 제대로 된 총동원 체제도 못한 반봉건 국가 제정 러시아와는 비교가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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