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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n 17. 2023

전혀 민주적이지도, 평화롭지도 않은 '민주평화론'

자유주의 국제정치학의 탈을 쓴 제국주의 국제정치학

민주평화론이라는 국제정치학 이론이 있다. 카를 슈미트로 대표되는 전근대적인 베스트팔렌 체제 지향의 공법론자나 한스 모겐소와 미어샤이머로 대표되는 정치현실주의와는 대치되는 자유주의 국제정치학 계보의 이론이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루돌프 럼멜이라는 사람이 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뿌리로 두는 이 이론은 윌슨식 자유주의 구상처럼 상당히 이상으로만 본다면 멋져보이고 인간적으로 훌륭해보일 거다. 특히 미어샤이머나 이춘근 같은 학자들이 사람 죽어나가는데도 독재 국가를 민주화 시킬 필요 없다 라며 냉정하게 말하는 거에 질린 사람이라면 더더욱.

우선 민주평화론의 내용을 보자. 일단 기본 전제는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끼리는 전쟁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슘페터가 자본주의가 근대 국가를 평화롭게 만들고 엘리트들이 자연스럽게 제국주의를 반대하게 될 거라고 한 가정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칸트의 영구평화론이랑은 차이가 다소 있다. 기본적으로 칸트는 전쟁을 악이라고 규정하며 상비군을 점진적으로 철폐할 것을 주장했고 타국에 대한 정치 간섭을 반대했다. 물론 조건은 각 국가가 모두 공화정이고 국제 연대가 결성된 이후라고 봤지만 말이다.

하지만 민주평화론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독재 국가이기에 그들과의 전쟁은 필요악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민주평화론자들의 모순은 시작된다. 대표 학자 루돌프 럼멜이라는 이의 이력부터가 답이 나온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지지한 것도 모자라 부시 정권 시절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며 테러와의 전쟁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동시에 럼멜은 국익을 추구하더라도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여 이익 실현 자체가 평화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독재 국가는 내부의 지지를 위해 호전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타국과 갈등을 부추키고 절대권력은 극단의 대량학살과 인권탄압을 낳는다고 했다.

사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나로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익 실현 자체가 평화에 있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만 최소한 독재 국가들이 호전적 성향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럼멜이 데모사이드(democide)를 주장하며 독재 국가들의 학살을 연구한 자료들은 아직도 신빙성에서 문제가 있고 정치적 문제 또한 있다. 스탈린 시절 학살당한 소련 인구에 대해 럼멜은 2천만 이상이라는 설을 제기했지만 당대 소련 인구가 고작 1억 6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나 피츠패트릭 교수가 스탈린의 대숙청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가 아닌 관료 집단을 겨냥한 계급투쟁적 성격에 가까웠다고 수정주의 학설을 얘기한 것을 종합해보면 진짜 2천만 넘게 죽었는지 의문이 든다. 뭐 이미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을 정의롭다고 한 시점에서 민주니 평화니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만.

이 민주평화론의 첫번째 비판 논거는 민주주의가 더 큰 비극이나 데모사이드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1차세계대전 이후 유럽 어느 국가보다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춘 민주주의 국가 바이마르 공화국이 국민 스스로 전체주의의 길을 간 걸 생각해보자. 또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의 압제로부터 해방해줬지만 미국이 세운 친미 정권은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다시 탈레반의 손으로 돌아갔고 카다피라는 철권통치자가 죽은 리비아는 독재 시절보다 붕괴된 이후 더 유혈 참극이 벌어지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이 아랍의 독재 국가들을 무너뜨리고 민중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선물해준다는 명분으로 민주평화론을 동원해가며 색깔혁명을 시도했건만 결과는 그 이전보다 매우 끔찍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재정 보호를 위해 전쟁을 기피한다는 것도 웃음 포인트인게 네오콘들이 항상 협상 테이블보다 폭격기로 대화하던 걸 잊었나 보다. 정작 민주평화론의 대부 루돌프 럼멜이야말로 소련과 중국, 북한의 폭력을 비판하지만 그래놓고 자기는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찬양했던 모순이 있다. 언제 네오콘이 재정 보호를 신경쓰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맨날 국회에서 국방 예산 더 달라고 생떼 부리면 부렸지, 결코 재정을 아끼기 위해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리고 전쟁을 한다면 국민들이 스스로 반발하고 일어서서 막을 거라는데 베트남 전쟁만 보면 68 혁명 당시였으니 틀린 해석은 아니다만 이라크 전쟁과 리비아 공습 때 미국인들이 막기는 커녕 들고 일어나긴 했는가?

이러면 민주평화론은 전쟁을 막기 위해 전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을 확대하고 국제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때까지 자유무역은 제3세계 민중들의 서구에 대한 반감만 더 키웠지 결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보는 건 상호가 아니라 더 가진 쪽이니까. 그리고 국제연대로 전쟁을 막는다는 발상도 웃긴게 전간기 국제연맹이 오히려 독일을 더 자극했던 측면이 있던 것은 못보나 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국제연대의 본질은 주권보다 국제법이 중심으로 결국 선발 주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흘러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당장 미국이 남미에 CIA가 쿠데타로 세운 자칭 자유민주주의 정권을 통해 이식한 자유시장경제적 정책들이 미국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고 빈익빈 부익부를 불러온 걸 생각하면 아마 민주평화론, 최소한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평화론에 입각한 질서가 무슨 꼴이 날 지는 자명하다.

민주평화론의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그 본질은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제국주의적 행보를 미화하고 또 세탁하며 정작 공격적 현실주의보다는 자신은 깨끗하다고 스스로 위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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