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꽤 재밌는 점이 있다면 카를 슈미트가 후기에 가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인민 전쟁에도 나름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가 쓴 <파르티잔>이라는 책에서 슈미트는 레닌의 혁명에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전쟁론이 큰 역할을 했으며 그 기원은 1812~1813년 시절 나폴레옹 원정군에 맞서 게릴라 전을 펼쳤던 프로이센 민병대에 있다고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보로디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러시아군에게 패한 요인로 물자 보급을 차단하는 지연전을 펼쳤던 것을 지목했다.
2. 또 슈미트는 게릴라 전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도 맞닿아있다고 주장했다. 정규군이나 비정규군 모두 실존적 의미에서의 적을 규정한 채 싸우며 인민 전쟁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따른 것이라 주장했다. 특히 현대의 파르티잔은 이전 프로이센과 스페인 해방 전쟁 시절의 게릴라와는 달리 정파, 혁명 수행이라는 정치적 성격이 더해졌으며 전투에서 적으로부터 어떠한 자비도 바랄 수 없는 처지로써 재래적인 적대관계로부터 벗어나 다른 종류의 즉, 테러와 역테러에 의해 상호절멸에 이르는 현실적인 적대관계로 나아갔다.
3. 슈미트는 정치적인 면에서 볼 때 파르티잔은 정치에 강도 높게 관여한다고 봤다. 비정규성이라는 점과 교차하는 이런 성격 때문에 파르티잔은 사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보통의 약탈자나 범죄집단과 구별된다. 파르티잔의 이런 정치성은 언제나 합법성과 비합법성이라는 대립 쌍에 의문을 던지고 새롭게 구성하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 파르티잔의 또 다른 특징은 방어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카를 슈미트가 대지적이라고 불렀던 이런 특징은 파르티잔이 외국 점령군으로 상징되는, 부당한 군사적 정치적 적에 대한 저항운동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 이후 파르티잔은 세계적으로 공격적이며 혁명적인 활동을 수행한다는 목표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파르티잔에는 이 두 가지 성격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4. 그러나 그럼에도 슈미트는 역시나 보수주의 학자로써 파르티잔 투쟁에 대해선 선을 미묘하지만 긋긴 했다. 분명 그는 마오쩌둥과 카스트로를 천재적인 게릴라 지도자로 평했다. 그럼에도 슈미트는 파르티잔의 딜레마를 기존의 정규적인 것으로부터 승인을 받을 것인가, 자기 힘으로 새로운 정규성을 만들어낼 것인가로 봤다. 이것은 냉엄한 양자택일이며 마오쩌둥처럼 성공할 수 없다면 안하는게 낫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가 필연의 투쟁을 얘기하며 레닌의 혁명 이론에 영향을 받아 절대적인 적대 관계를 구축해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투쟁은 종료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있고.
5. 그래서 내가 놀라웠던 지점은 슈미트의 파르티잔 이론이 어찌 보면 마오쩌둥과 카스트로도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따른다고 보는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좌익 대중주의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도 슈미트 철학을 일정 부분 계승했으며 샹탈 무페도 슈미트의 적, 동지 개념과 <파르티잔>에서의 실존적 적대관계, 즉 현실적 의미에서의 적대관계를 가져와 좌파 포퓰리즘 운동의 정의를 재구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