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프리고진이 쿠데타(?)를 시도했고 러시아 정부 명령에서 체포 명령을 시도했다는데 내 생각 몇가지를 말해본다.
1.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크렘린의 정확한 내부 사정을 알 길은 없다. 원래 소련 시절부터 서방 매체들은 크렘린 내부 권력투쟁을 정확하게 분석하기가 매우 힘들었으며 특히 지금 러시아가 서방권과 관계를 단절해가고 대러제재로 서방권도 러시아에서 철수한 이상 정보는 소련 시절, 특히 스탈린 때만큼이나 제한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역사적으로 봐도 소련 내부 권력 투쟁이 외부에 세세하게 알려진 것은 대부분 붕괴 이후 기밀문서가 풀리면서부터 였고 그 전까지는 트로츠키나 유리 베즈메노프 같은 비롯한 망명자들의 증언에 의존하여 소련 내부 사정을 파악했다.
2. 그럼에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그너 그룹이 아무리 아르툐모프스크 전투로 인해 푸틴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도 기존 실로비키 세력이 중심이 되는 러시아 정치 구도 속에서 확고하게 자리잡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 프리고진은 FSB도 GRU도 아닌 전과자 포주 출신에서 핫도그 장사도 하고 식당도 운영하며 푸틴의 눈 안에 들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반면 실로비키들은 차근차근 정보기관과 군대를 장악하며 정석적인 코스를 밟아 능력을 보여 푸틴의 최측근이 되었고 이는 2014년 크림위기 및 돈바스 전쟁에서 활약해 국방장관으로써 입지를 다진 쇼이구나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러시아군 사령관으로써 IS 토벌에 귀신 같은 능력을 보여준 드보르니코프도 마찬가지다.
3. 그렇기에 이들 입장에서 막장 같은 인생을 산 프리고진과 그가 키운 바그너 그룹이 아니꼬울 것이다. 게다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초기 키예프 공략에 실패하고 하르코프, 헤르손 등에서 졸전을 치르고 BTG 중심 편제만 과신하다가 큰 코 다친 러시아 정규군에 비해 바그너 그룹은 아르툐모프스크에서 나름대로 잘 싸웠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프리고진은 푸틴의 직접적인 총애를 받는 위치에 올라섰고 쇼이구가 이를 견제하기 위해 한 조치가 바로 아르툐모프스크에서 싸우는 바그너 그룹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고 물적, 인적 지원을 소극적으로 한 것이다. 오죽하면 분노한 프리고진이 전선을 방문했을 때 직접 영상을 찍어올리겠는가?
4.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을 어쨌든 단순한 용병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무장친위대나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의 공화국 수비대, 오늘날 이란의 혁명수비대와 같은 위치까지 끌어올리고자 했다. 그러나 정규군이 있는 국가에 또다른 군대를 둔다는 것은 기존 세력의 반발을 받을 것이다. 독일만 하더라도 무장친위대와 국방군이 갈등을 자주 빚었는데 파울 하우서, 요아힘 파이퍼 같은 이들이 히틀러의 총애를 받는 걸 본 오토 카리우스 같은 국방군 장교들은 분노를 품었고 특히나 무장친위대 내부에서도 토텐코프 사단은 그 중에서조차 별종으로서 미친 전쟁광들로 평가받았다. 이처럼 제2의 군대를 둔다는 것은 견제자를 둘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사실상 여우들로 가득찬 군부에 한마리 더 데려오는 행위나 다름 없는 위험 요소도 있다.
5. 실로비키 집단의 프리고진 토사구팽은 안해도 위험하고 해도 위험한 딜레마다. 러시아군보다 바그너 그룹이 전선에서 더 활약하고 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며 냅둔다면 진짜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의 공화국 수비대와 같은 역할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푸틴 사후라던지 급변사태에서도 이들은 군부로부터 독립되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토사구팽을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위험한데 프리고진은 밑에서부터 올라와 푸틴의 최측근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 내부 사정은 물론이고 숨기고 싶은 치부까지도 다 알고 있다는 것. 만약 그가 숙청당하고 일단은 가정이지만 최악의 경우 실로비키들에 의해 목숨까지 위험한 상황에 온다면 곱게 안죽을 거다. 너 죽고 나 죽자라는 마인드로 다 터트리고 동귀어진 하겠지.
6. 이 사건을 보고 소련 말기인 1991년에 있었던 8월 쿠데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8월 쿠데타는 고르바초프의 온건한 방침에 소련 공산당 보수파들이 반발을 해서 벌인 사건이라면 이번 일은 강경파vs강경파의 싸움이기 때문. 그리고 아예 고르바초프부터 가택연금 시키며 시작한 8월 쿠데타와는 달리 바그너의 쿠데타는 푸틴에 대해선 건들지 않는다. 또 8월 쿠데타의 경우에는 고르바초프라는 자칭 신흥 엘리트 집단(?)과 소련 공산당 보수파라는 기성 엘리트 집단의 충돌로 벌어진 사건이라면 이번 쿠데타는 방어 측인 쇼이구, 게라시모프 같은 실로비키가 기성 집단이고 반대로 공격 측인 프리고진이 신흥 집단이라는 것..
7. 프리고진이 전쟁을 끝낼 목적에서 일으켰는지, 더 강경하게 가라고 했는지는 모르나 만약 후자라면 그건 성공한 프룬제 쿠데타 모의 사건이 아닐까 한다. 프룬제 사건은 소련 유학파 엘리트들이 열병식에서 후계자로 지목받던 김정일을 암살하고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만든 다음 북한을 제대로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을 침공해 적화통일한다는 시나리오였다. 프리고진도 프룬제 유학파들처럼 진짜로 목표가 강경하게 전쟁을 확대하는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만 일단 이 부분은 말을 아끼겠다. 왜냐면 실로비키들이라고 해서 프리고진보다 더 평화적인 건 아니거든.
8. 또 하나 의문인 점이라면 왜 이 시점에서 프리고진이 쿠데타를 무리수를 뒀을까, 라는 부분이다. 나도 솔직히 이해가 잘 안가는 면이 있는게 왜냐면 사건 이전까지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은 아르툐모프스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러시아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프리고진은 영웅에서 반역자로 이미지가 급나락행을 갈텐데 설령 한다고 해도 굳이 지금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내가 곰곰히 생각해본 추측으로 가장 합당하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쇼이구나 수로비킨 등의 군부 실로비키들이 바그너 그룹을 어떤 형태로든 권력에서 배제하려다가 그들이 칼을 뽑기 전에 프리고진이 먼저 선수친 것이라는 건데 진실은 공개될 때까지 모를 듯.
9. 푸틴의 역할은 중요해졌다. 마치 2.26 사건 당시 히로히토 천황의 처지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황도파 청년장교들은 유신을 일으키며 천황이 자신들의 대의, 즉 존황토간과 국가개조를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동생 지치부노미야의 만류에도 히로히토는 매우 분노하여 소극적으로 대응 중이던 군부에 압력을 가해 결국 궐기군을 반란군으로 만들었고 주모자들은 비참하게 죽었다. 푸틴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 생각은 푸틴은 실로비키를 잃어가면서까지 바그너의 편을 들 것 같지가 않다. 왜냐면 푸틴은 그 전부터 바그너 그룹을 놔두고 굳이 체첸군과 정식계약을 했는데 이 체첸군의 리더는 람잔 카디로프라는 실로비키 중 하나다. 따라서 아마 그는 히로히토가 황도파에 대해 반란군으로 규정하며 진압 명령을 내렸던 것처럼 바그너도 숙청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10. 사실 전쟁 이후 들어오는 러시아 정보 자체가 북한군 6군단 반란설 마냥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이 쿠데타의 성공 여부에 대해 판단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근원은 강경파vs온건파도 아니고 충성파vs반대파의 대결도 아닌 기성 집단vs신흥 집단의 대결로서 쇼와 시대 일본 군부의 통제파vs황도파 대결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