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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n 25. 2023

바그너 그룹 쿠데타, 사건 이후의 향후 과제

기력을 다한 푸틴의 리더쉽

러시아 국기 패치를 붙이고 쿠데타를 일으킨 바그너 그룹. 이를 통해 그들은 러시아 정부에 대한 반역이 아닌 실로비키의 축출을 원했을 알 수 있다.

https://www.foxnews.com/live-news/putin-accuses-wagner-group-of-betrayal-as-russian-mercenaries-march-towards-moscow

1. 언론에서 내전설을 제기하던 것은 전부 추측이 빗나갔다. 내전은 커녕 지금 바그너 그룹은 프리고진과 러시아 정부의 합의로 원대복귀하는 중이다. 내전설이 처음 나왔을 때 무슨 1918년 당시 적백내전도 아니고 바그너가 확실히 행정, 정치적 기반이 되는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외부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내전을 일으켜 장기적으로 끌고 가냐, 이리 생각하며 헛소리로 취급했다. 바그너 그룹이 에도 막부 말기 조슈 번이나 사쓰마 번이라도 되는 줄 아시는지? 아니면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에 나오는 러시아 국수주의자 빌런 자카예프처럼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라도 장악했나???


2. 그럼에도 내 추측은 반만 맞았다. 나는 2.26 사건을 예로 들며 결국 원대 복귀할 것이라고 봤는데 실제로 원대 복귀가 결정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고진은 이번 쿠데타에 대해 끝내 푸틴 정권을 교체한다거나 정부에 대한 폭정을 종결시킨다는게 아닌 어디까지나 간신배인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제거한다는 명분이었는데 이는 존황토간 국가개조를 외치면서 천황 친정 체제 수립을 주장한 2.26 사건 주도자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대 복귀가 일방적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중재를 통해 이뤄졌기에 복귀 후 총살당한 2.26의 황도파 청년장교들과는 달리 바그너 그룹은 마냥 당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쿠데타는 굳이 따지자면 2.26 사건보다는 오스만 제국 시기 예니체리 반란의 성격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따라서 합의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 이상 푸틴은 프리고진의 요구를 어느정도 따를 수 밖에 없다. 러시아 정부가 강경한 사후 대처를 못하는 환경상 프리고진을 정치적으로 죽일 방법도 없고. 백주대낮에 전차와 보병전투차로 무장한 사단 병력이 러시아 국내를 휘젓고 다니며 군, 행정 등 공권력을 무력화시켰는데 러시아 정부는 여기에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 결국 이 사태에 가장 책임이 있는 것은 쇼이구와 게라시모프인데 러시아가 정상적인 국가임을 입증할려면 이들을 죄다 줄줄이 옷 벗기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러시아 실로비키들이 자랑하던게 자신들은 천박하게 막장 인생 살아온 프리고진과는 달리 FSB나 GRU에서 차근차근 커리어 쌓으며 정상적인 방식에서 애국해왔다는건데 그 막장 인생, 자신들의 더러운 칼로 사용했던 전과자 놈 하나 통제 못하나?


4. 그리고 푸틴의 책임 말인데 쇼이구, 게라시모프 뿐만 아니라 최종 결정권자인 그에게도 책임은 크다. 애초에 문제의 발단이 쇼이구와 게라시모프 같은 실로비키들이 아르툐모프스크 전투에서 포탄이 부족한데도 바그너 그룹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았던 것과 이상한 법 만들어서 PMC를 강제로 재계약 시키게 한 다음에 바그너를 제외하고 카디로프의 체첸군과 재계약을 한 것인데 이건 누가봐도 대놓고 바그너 그룹을 해체시키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였다. 이 와중에 푸틴의 행보는 놀랍게도 이 갈등을 방치했으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쇼이구, 게라시모프 같은 실로비키의 편을 들었다. 과연 푸틴은 사태가 이 꼬라지가 나게 된 것에 책임이 없는가?


5. 푸틴의 대응도 가관이었는데 사건 초기 영상으로 등에 칼 꽂은 배신자라 지칭하며 가혹하게 처벌할 것을 선언했다. 문제는 그래놓고 누구보다 빨리 합의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 것. 더 웃긴 건 뭔 줄 아나? 이 사건을 해결한 주체가 푸틴이 아닌 벨라루스 대통령 루카셴코였는데 사실상 루카셴코와 프리고진 사이의 합의로 사건이 종료되어 이 일에서 러시아 정부가 한 역할은 거의 없다는 것. 결국 푸틴의 바램과는 달리 프리고진은 자신의 요구도 정부에 입장을 밝히며 하고 싶은 것은 다 했고 푸틴의 리더쉽까지 흔들어놓음으로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더 나아가 러시아의 정치 구조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독립적인 변수가 되어 러시아 정부의 입장은 더욱 골치 아프게 되었다.


6. 여담으로 일각에서는 바그너 그룹이 우크라이나와 손잡고 이 일을 벌였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아르툐모프스크 전투 당시 프리고진이 우리가 우크라이나군한테 러시아군 위치 제공할 수 있다고 협박하며 실로비키를 압박했던 것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력 투쟁에서 강경책으로써 벼랑 끝 전술로 협박한 것이고 정작 아르툐모프스크 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바그너 그룹의 무자비한 전술에 피해가 심각했음을 고려하면 그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가 없다. 무엇보다 만약 프리고진이 진짜로 젤렌스키와 손잡고 푸틴을 전복하려고 시도했다면 우크라이나군이 대대적으로 반격하며 벨고르드로 일시적으로 밀고 들어갔을 때 동시에 일으키지, 굳이 왜 우크라이나군이 공세 다 폭망하고 X된 시점에서 일으키겠나 이 말이다. 프리고진은 그렇게 판단력이 흐린 사람이 절대 아니다.


7. 어찌 되었건 나 역시 이번 일을 지켜보며 많이 놀랬다. 프리고진과 쇼이구의 권력투쟁은 진작에 알고 있었고 언젠가 푸틴이 나서지 않으면 폭발할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프리고진이 아르툐모프스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시점에서 갑자기 벌어질 줄은 몰랐다. 이걸 보면 90년대 옐친 밑에서 부패와 권력 남용을 일삼았던 올리가르히 집단을 집권하자마자 순식간에 제압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함께 남오세티야 전쟁을 일으켜 그루지야를 단번에 두들겨 패서 굴복시켰던 시절 푸틴의 리더쉽도 노쇠한 듯하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아마 이 사건은 러시아라는 나라의 국력과 주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한계를 잘 보여준 사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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