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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ul 02. 2023

일본 야당의 실패 (1): 사회당과 자민당 탈당 흐름

55년 체제에서 실패한 사회당과 부패한 위선자 자민당 탈당파

가끔씩 일본 정치 얘기가 나올 때 일본이 바뀔려면 자민당의 독주를 끝내고 야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은근 보인다. 실제로도 나무위키 문서를 보면 일본 공산당에 대해 서술이 매우 우호적이고, 또 한국인들 사이에서 입헌민주당에 대한 환상이 돌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자민당 체제가 정경언 유착이라던가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보인 관료주의의 병폐를 만들고 키웠다는 점에서 자민당을 썩을대로 썩은 부패한 집단인 건 부정 못한다.

어쨌든 일본 야당, 그 중에서도 입헌, 국민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들이 자민당보다 과연 낫다고 볼 수 있는가에 얘기하자면 그들은 실제로 집권했을 시기에는 자민당보다 훨씬 못했으면 못했지 조금이라도 비슷하게조차 하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단언 가능하다.

일단 일본 야당의 뿌리인 55년 체제의 사회당 같은 경우에는 전후인 1946년에 요시다를 쫓아내고 비록 연정을 써먹었지만 어쨌든 가타야마 데쓰라는 총리를 배출하며 집권한 적이 있었고 그 후로도 1956년 참의원 선거 때는 자민당이 61석, 사회당이 49석을 얻으며 나름 세가 비슷했었다. 그러나 가타야마 내각은 지들끼리 내분질 하다가 망했고 1958년 중의원 선거 패배 이후부터는 니시오 스에히로 같은 온건파들이 탈당하여 민사당을 결성하면서 사실상 사회주의 협회와 총평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장악당해 노조 이익집단이 되었다.

거기다가 55년 체제 시절 일본은 이케다 하야토의 소득배증계획을 시작으로 사토, 다나카, 후쿠다를 거치며 경제가 빠른 성장 및 안정화 된 상태 였으니 당연하겠지만 일본인들이 굳이 마르크스주의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며 혁명에 집착하며 교조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아예 복지 정책마저 자본주의의 산물이니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저런 식으로 지지 못받을 짓만 골라서 하는 교조주의 좌익 정당 사회당을 뭐하러 지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1990년대에 들어서 사회당을 대체할 야당들이 떠오르긴 했다. 문제는 그 야당들을 결성한 주체가 자민당 탈당 세력들이었는데 얘네들은 말이 좋아 개혁파지 실상은 자민당에 있었을 때 가장 부패한 애들이었다. 그게 왜냐면 1990년대 자민당 탈당파들의 상당수가 다나카 가쿠에이 파벌 후계 세력들이기 때문.


다나카 가쿠에이의 경우 일본 정치에 대해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후쿠다 타케오와 총리 경쟁(1차 각복전쟁)을 할 때부터 정치 자금 뿌려대서 나카소네, 미키, 오히라 같은 나머지 파벌들 죄다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총리가 된 인물이다. 록히드 사건으로 인해 쫓겨난 이후로도 뒤에서 자신을 수사하려던 미키 내각을 붕괴시키고, 후쿠다의 총리 재선 저지(오히라를 밀어주는 방식으로), 오히라 마사요시와 스즈키 젠코 같은 총리들을 뒤에서 조종하며 1980년대 측근인 다케시타가 통수치기 전까진 '어둠의 쇼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권을 휘둘렀다.

55년 체제를 끝낸 첫 총리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다나카 가쿠에이의 측근이었던 다케시타 노보루의 경우에도 다나카 통수쳤지만 어쨌거나 그의 제자인 만큼 정치 기술은 나름 있었고 총리 시절에 일본 정치사상 최악의 비리인 리쿠르트 사건 터져서 쫓겨났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 파벌인 경세회를 활용해 우노 소스케나 가이후 토시키 같은 후임 총리들의 배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다가 다케시타 밑에서 일하던 오자와 이치로는 다케시타가 자기가 아니라 오부치를 밀어준다는 이유 때문에 다른 애들과 손잡고 배신 때리는 것을 넘어서 미야자와 내각을 불신임안 통과시키게 해서 무너뜨리고 탈당 후 사키가케를 창당하며 일본 야당계를 점령하게 되었다.

이때 오자와와 신생당 등 야당계는 자민당을 향해 수구 프레임을 씌우고 자신들은 개혁 이미지로 포장했는데 과연 저들은 깨끗했나 하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더 더러웠으면 더러웠지 결코 청렴한 개혁 정치세력이 아니었다. 당장 오자와 이치로와 탈당한 애들의 이유는 자신들도 가네마루 신과 엮여서 사가와규빈 사건으로 부패 세력으로 찍혀서 경쟁에 불리해진 마당에 마침 타이밍이 버블경제 붕괴 시즌이다 보니 개혁 타령 해댄거고 이게 먹혀들면서 연정이지만 집권하게 되었다.

그렇게 집권을 했건만 개혁 이미지를 쓴 부패 정치인들인 만큼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었다. 우선 비 자민 연립정권의 첫 총리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역시 다케시타파인 경세회 출신인데다가 나중에 사퇴하게 되는 이유도 사가와규빈 스캔에 연루되서다. 오자와 이치로도 이거 때문에 검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었고. 그러니 즉, 오자와 이치로나 호소카와 모리히로 이런 애들이야말로 자민당에 있었을 때부터 가장 부패한 정치세력이었다는 얘기다.


이후 신생당 창당 멤버로써 자민당 탈당파 흐름의 주도자 중 하나였던 오자와 이치로는 훗날 일본 민주당계의 뿌리가 되는데 자민당이 썩었다며 개혁과 자성을 촉구하며 신당 창당하며 떨었던 위선적인 행보와는 반대로 정작 민주당 정권기 그의 정치자금 스캔 문제가 하토야마, 간 등의 총리들을 발목 잡았다. 이 상황에서도 오자와는 자민당에 있었던 시절에 배운 정치공작 스킬을 사용해 결국 민주당 내 파벌 갈등을 더욱 조장했고 이때부터 민주당의 파벌 정치는 자민당의 그것을 닮아가 종국적으로 오늘날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으로 쪼개지는데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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