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당이라는 정당은 2016년 유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창당한다. 합당 과정에서 유신당 측이 신당명으로 민주당이라는 당명은 받아드릴 수 없다고 못박았고 전화 여론조사에서 민진당이 24%로 우세하자 이것이 당명으로 결정된 것이다. 대만의 민주진보당이 민진당으로 불리는 것과는 다르게 아예 풀네임이 민진당으로 국민과 전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대만 민진당처럼 일본 민진당이 약칭일 거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민진당 창당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신당의 터줏대감인 '오사카계' 의원, 인사들이 하시모토 도루의 방침에 따라 탈당한 것이다. 애초에 하시모토 도루는 오사카 지역주의 색채가 짙었고 개헌파였기 때문에 민진당의 입장과는 같이 가기가 무리였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민진당에 참여한 유신당 인사들은 구 민주당 인사였고 그렇기에 오카다 가쓰야가 민주당 대표가 되면서 협력 체제가 강화된 것. 어쨌든 2015년 집단적 자위권 규정 이후 벌어진 자위대 외국 주둔 논란에 대해 야권이 공조하던 흐름이 합당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초반부터 불안하던 민진당은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도 아니고 자민당을 탈당해 독자 노선을 걸으려 하는 고이케 유리코에게 더블 스코어 차이로 패하며 아쉬운 결과를 얻었다. 그 이전에 있었던 보궐 선거에서는 교토에서 이즈미 겐타를 당선시켰으며 훗카이도에서는 민진, 사민, 공산, 생활 4당 단일 후보가 4% 차이로 낙선했던 건 덤이고. 그래도 참의원 선거에서는 개선 32석을 얻어 비개선 17석과 합쳐 총 49석의 의석을 보유하게 되며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받은 성적표보단 나은 모습을 보였다.
민진당 첫 대표선거에서 가쓰야의 뒤를 이어 취임한 건 렌호였다. 이 당시 쟁점이 되었던 것은 렌호의 이중국적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자민당이 추진하는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한 반발을 힘입어 민주당계 첫 여성대표라는 타이틀은 그녀가 장식하게 되었다. 55년 체제 말기 사회당 위원장이었던 도이 다카코를 이어 두번째 제1야당 여성 대표 타이틀도 얻게 되었고. 아무튼 렌호 대표는 간사장으로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를 임명하고 정무조사회장에 오구시 히로시를 임명하며 당무를 시작했다.
2017년 도쿄도의회 선거는 그야말로 민진당의 존재감이 없던 선거였다. 초반부터 언론은 아베vs고이케의 분위기를 이어갔으며 최종적으로 민진당은 5석 밖에 얻지 못했다. 거기다가 자신들의 시조 격인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마저 제자인 고이케 유리코를 지원했다. 그 후 마에하라 세이지가 당 대표가 되었고 이 시점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희망의당을 창당하자 민진당 의원들의 탈당 조짐이 보인다. 이에 굴복한 마에하라 대표는 고이케와 연대를 추진하며 희망의당에 합류할 의사가 있는 민진당 의원의 희망의당 공천을 승인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심지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마저 민진당과 희망의당의 연대를 지지하였고 시류에 따라 상당수의 민진당 의원들은 희망의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마에하라에게 대표 선거에서 패배한 에다노 유키오가 대표적인 정치인인데 그들은 입헌민주당을 창당했다. 마에하라는 희망의당에 합류했고 오쓰카 고헤이가 대표가 되지만 야권은 희망의당과 입헌민주당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였다.
2017~2019년도 일본 민주당계 정당의 계보
희망의당-입헌민주당-민진당 삼당의 합당 논의가 계속 이어졌지만 지지부진하였고 결국 민진당은 희망의당과 합당하여 국민민주당이 된다. 이 과정에서 민진당 측은 입헌민주당을 통합신당에 합류시키고자 하는 미련이 있었지만 에다노 유키오가 거절해서 실패했다. 그렇게 창당된 국민민주당은 입헌민주당과 함께 민주당의 양대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다만 입헌민주당은 조금 더 좌쪽이고 국민민주당은 조금 더 우쪽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그러한 분당 상태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또 한번 입민-국민의 통합이 있었지만 반발한 자들은 국민민주당을 재창당하여 다마키 유이치로를 중심으로 당을 이끌고 있다. 이게 일본 민주당계의 근본적 패인이다. 가령 한국만 해도 보수정당의 암흑기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되어 있던 시기며 민주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직후였다. 후자는 어느정도 극복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일본의 민주당계는 두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고 반목이 심해 공동 대여 투쟁이 힘들다.
실제로 양당의 논조를 따지기 이전에 한 당 내부의 논조부터 통합이 안되는 실정이다. 전직 민주당 대표 에다노 유키오는 개헌 반대파였다. 그리고 입민당 내부에 호헌파들의 세가 상당히 있다. 그러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같은 개헌파들도 무시할 정도의 세가 아니며 2009년 민주당 정권기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심지어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입민당 당원들의 상당수가 자당 후보 우쓰노미야 겐지가 아닌 레이와 신센구미의 야마모토 타로에 투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입민-국민 통합 과정에서 반대파가 국민민주당을 재창당했다고 아까 말했는데 애초에 저 당시 여론조사 보면 양당 지지층의 합당 반대 비율 60%를 초과한다. 민주당과 유신당이 합당해 민진당을 창당할 때의 실패를 똑같이 반복한 셈. 자민당의 지지율이 40%나 되는 것에 비해 합당 이후 입헌민주당의 지지율은 10% 미만 밖에 안된다. 게다가 국민민주당은 입헌민주당의 대여투쟁에 비협조적이며 2022년 중의원 선거 때는 자민당이나 유신회와 협력을 시작했다.
이미 입헌민주당은 오히려 자민당보다 낡은 정당이라 일본인들에게 평가 받는다. 당론조차 통일되지 않아서 개헌 같은 문제도 의견이 엇갈리고 내세울 만한 간판 정치인도 없다. 에다노 유키오가 그나마 인기있었던 정치인이었는데 그래봤자 지지율이 10%나 될까 말까한 상황이고 오히려 5ch 같은 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일베가 MC무현이니 응디시티니 하며 정치인을 비웃는 것처럼 에다노 또한 자이니치 드립은 기본이고 야후 재팬과 5ch에서는 사실상 주적급이다.
결국 입헌민주당이 내세울 수단은 정권심판론. 근데 문제는 먹히지가 않는다. 2018~2019년도는 아베노믹스의 절정기였으며 미중 무역 분쟁, 한일 무역 분쟁이 벌어질 시기라 반중, 반한 감정이 심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친한, 친중에 자민당보다 가까운 입민당에 투표할 이유가 없으며 그 와중에도 정권을 심판하자는게 주장의 끝이다. 심판 이후에 어떻게 과거와는 다른 비전을 보여줄 것인지 설명이 없다. 특히나 과거 민주당 정권기에 비해 아베노믹스는 성과 면에서 나름 괜찮았기에 더더욱 대비된다.
이는 일본인들이 여당이 좋아서 찍는게 아니라 그냥 야당이 싫어서 지지한다고 보여지는 부분이다. 애초에 자민당 비례 득표율은 웬만하면 30~40% 언저리며 지역구에서나 압승하는게 특징이다. 뭣보다 야당은 자민당 강세 지역에 공천이라도 했나? 이처럼 각복전쟁 시기에 못지 않는 민주당계의 이합집산, 분열된 당론, 존재하지도 않는 슬로건, 자신들의 집권기의 무능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지 어필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세 등 이것들은 민주당계를 넘어 일본 야당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