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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ug 08. 2023

캐스팅보트로 부상한 일본 유신회,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판 국민의당인가, 아니면 새로운 대안정당인가?

https://youtu.be/ZRtdQ81jPUQ

"유신은 합니다 "

- 2023년 일본 유신회 슬로건


보통 이때까지 일본 정치의 구도는 55년 체제로 대표되는 보수(자민)vs혁신(사회)의 구도나 사회당 붕괴 이후로는 보수 우위 체제에 민주 세력이 견제하는 구도였었다. 사실 틀린 시선은 아닌게 실제로 55년 체제 동안 민사당이나 공명당의 존재가 있었음에도 일본 야권을 주도한 건 사회당이었으며 그 이후로는 혁신, 무산 정당이 힘을 잃고 그 자리를 민주당이 대체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간에 고이케 유리코라는 이질적인 도쿄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고이케 지사의 등장이 중앙 정계에서 민진당(현 입헌민주당)의 자리를 대체하진 않았다. 애초에 고이케를 돕는 도민퍼스트회 자체가 참의원, 중의원에 별 관여를 안한다.


근데 이런 구도를 깨버릴 정당이 등장했다. 그 정당의 이름은 일본 유신회. 얼핏 보기엔 도민퍼스트회와 같은 지역정당으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 일본 유신회는 결코 입헌민주당에 일방적으로 꿇리지 않는 조직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오사카 지역에서는 거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것도 당의 창업주이자 정신적 지주인 하시모토 도루가 캐삭빵한 후 현재 정계 밖에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유신회의 저력은 분명 제3당으로써 입헌민주당의 지위를 위협하기 충분하기에 더욱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하시모토 도루와 오사카 지역주의의 등장


하시모토 도루는 유신회의 창업주로 2011년 지역 정당에 불과했던 정당을 낙승에 거두는데 크게 일조한다. 덕분에 그는 자민당, 민주당 양쪽에서 비난받았는데 자민 쪽은 하시모토가 국가를 해체하는 무정부적 성향이라고 하고 민주당이나 혁신계는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주의 성향이 있다고 비난한다. 하시모토는 애초에 보수와 혁신을 싸잡아 욕하며 일본 기성 정치인들을 무능한 꼰대라고 비판하여 일본 민주주의의 맨 얼굴에 도전하는,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발점인 전위의 결단과도 연계되는 언행들을 쏟아냈다.


하시모토의 열풍은 정치의 귀환을 요구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시하라 신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오자와 이치로 등 21세기 이후 일본 정계에 큰 영향을 끼치던 정치가들은 반정당적, 반의회적 정치를 구사했는데 이것의 절정이 하시모토 도루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시모토는 정치적 전략에 있어서 오사카의 소외감을 잘 활용했다. 미일 동맹 체제 하에 도쿄-요코하마 중심의 고도 성장 속에서 오사카는 소매업, 패션, 전자, 의약품, 식품 등 생활경제 면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정적으로 세계화로 금융 자본주의로의 전환 및 인수 합병을 거치며 오사카의 종합상사들은 대거 도쿄로 본사를 이전하고 고급인력 유출이 심각해졌다. 하시모토가 시장이 될 때 오사카는 청소년 범죄가 전국 최악 수준이었고 학술, 문화, 예능 분야 인재들도 이탈하여 오사카의 도쿄에 대한 불만은 지역주의로 발전했다. 하시모토의 전략은 도쿄"도"에 버금가는 오사카"도"를 만들어 글로벌 도시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하시모토는 도쿄를 복제하는 걸 넘어 오사카 다운 도시 생태계 복원을 추구하며 지지를 받았다.


우리나라 국민 입장에서 하시모토 도루는 위안부 망언을 쏟아내는 쓰레기 같은 극우 정치인일 것이고 일본 주류 정치계 입장에선 지역주의를 조장해 자국 내 분열을 부추키는 이기주의자, 포퓰리스트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사카 시민들에게 하시모토 도루는 그렇게까지 나쁜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부라쿠민 출신이라는 논란이 있을 정도로 청렴하게 살아왔던 사람인지라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월급을 30% 삭감하는 등 모범을 보이고 공무원의 타투와 피어싱 금지, 시민단체 지원금 삭감 정책들을 추진하여 어찌 되었건 간에 적자에서 흑자로 메꾼 실력은 있었던 정치가였다.


그리고 혐한 논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하시모토의 오사카 부지사 시절 발언들이 지금까지 화자되며 유신회가 아직도 극우 정당으로 평가받고 있는 점은 없잖아 있다. 근데 이걸 알아야 하는게 하시모토는 재특회나 넷우익의 자이니치 추방운동에 동조한 적이 전혀 없었다. 넷우익 사쿠라이 마코토와 서로 쌍욕하며 싸운 영상은 지금까지도 밈으로 남아있으며 오사카라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면 하시모토 도루는 부지사로써 한국 정부에 대한 적대감과는 별개로 한국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혐오는 할 수 없는 위치였다. 오사카는 예나 지금이나 한일 무역 및 관광의 주요 루트이기 때문.


또 하시모토 도루가 마냥 극우라고 보기엔 현 시점에서 그는 더 이상 혐한적인 언행을 쏟아내진 않는다. 다카이치 사나에 같은 일본 자민당 내 강성 보수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본류 쪽 인사들 만큼이나 온건해진 셈. 실제로 위안부 합의 논란에서 한국인 입장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거나 아베의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치졸한 보복이라는 등 예전에 위안부는 필요했다고 주장하거나 일본에게 어울리는 건 독재라고 한다거나 핵무장 하자고 하던 그 하시모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바뀌었다. 물론 조선학교 같은 것에는 다소 반한적 스탠스긴 한데 조선학교는 북한과 연계된 조총련 소속이라 일북관계를 고려하면 적어도 일본인이라는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2019년 한일 무역분쟁 때 이 양반은 아예 내가 문재인이라도 그런 선택 내렸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2920896?sid=104


과거 하시모토는 결국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는데 그게 바로 오사카도 구상이다. 2013년 오사카부 사카이 시장에 도 구상에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되었고 자민당, 공명당이 공조하여 하시모토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하시모토는 주민투표로 도 구상안을 맡긴다는 결단을 내렸고 당연히 주류 정계에선 정치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고 하시모토 도루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바로 번복했다. 현재는 야인 신세지만. 마치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에서 오세훈이 시장직 걸었다가 캐삭빵해 박원순이 그대로 서울에 입성하고 21년 재보선에서 당선될 때까지 암흑기를 걸었던 것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하시모토 도루의 정치 실험은 큰 의미가 있다. 비록 "극장 정치"였지만 일본 전후 민주주의 체제에 사회당과 민주당 이상으로 도전장을 내밀면서 고이케 유리코와 함께 보수 지역주의 세력 중 가장 자민당에 위협을 선사한 이들이었다. 또 하시모토 도루가 캐삭빵한 후에 유신당의 인사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마쓰노 요리히사 등의 당 지도부가 민주당에 자당을 갖다바쳐 2016년 민진당을 결성했다. 이에 반발한 하시모토계 의원들이 따로 나와 일본 유신회를 창당하였는데 이 정당이 지금 일본 정치 얘기할 때 나오는 그 유신회가 맞다.

요시무라 히로후미와 오사카 주민들이 유신회를 지지하는 이유


요시무라 히로후미는 현재 오사카 부지사이다. 75년생 밖에 안된 굉장히 젊은 정치인으로 전국 도도부현의 지자체장 중에서도 잠재력이 풍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9년에 부지사가 되고 얼마 후에 바로 2020년 코로나 대유행이 터졌는데 이건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였다. 2019년까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바탕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던 상황 덕분에 일본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그 아베 신조조차도 코로나 앞에서 무너졌음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지만 오사카 부지사 요시무라 히로후미는 다른 지자체장들보다도 훨씬 더 재난에 잘 대처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관방장관 에다노 유키오가 온갖 장소들을 직접 발로 다 뛰어다녔던 것처럼 요시무라 부지사도 격무를 수행하며 코로나 방역에 노력을 기울였다. 요시무라는 아예 주민들 앞에서 코로나 대응을 설명하는 등 소통에 적극적이었고 기자회견도 자주 열며 미디어를 활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걸 넘어 초창기에 아베 총리가 코로나 재난 상황을 덮으려 한다는 비판을 제기하며 비록 보수 정당이지만 오히려 민주, 혁신계 야당보다도 더 강경하게 정부의 늦장 대응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시무라 부지사는 이어 긴급 사태만 연장하면서 정작 세부적인 방향은 제시 못하는 중앙 정부를 비판하며 '오사카 모델'로 독자적으로 코로나에 대응하겠다고 하였다. 동시에 주민들이 계속 기다리게 할 수만은 없다며 일정 조건을 제시한 뒤 충족할 경우에 자제 경보를 해제하겠다며 방역 해제에 관한 독자 기준을 마련해 마냥 채찍질만 하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시무라는 아베 내각이 비밀리에 만들고 공개하지 않았던 2주 만에 코로나 환자가 15배나 늘어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해버리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시키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여론 조사 결과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는 코로나 대응을 잘한 일본의 정치인 1위를 차지했는데 여기서 응답한 1,052명 가운데 378명인 17.8%가 요시무라 지사를 꼽았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54%에 달한 건 덤. 어쨌든 요시무라는 아베의 후임자 스가 총리가 코로나 와중에 여행 장려책을 추진하자 강하게 비판했고 영업을 강행하는 파친코 업체의 이름을 공개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해 주목받기도 했다. 근데 마냥 강력하지만은 않은게 의외로 "출구 없는 터널을 계속 달리는 것은 무책임하다"라는 말을 하고 실제로도 단계적인 완화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었다.


요시무라 부지사의 성공은 오사카에서 일본 유신회가 하시모토 도루의 오사카도 구상이 1차적으로 좌절되었음에도 여전히 강한 지지를 받는 이유로 남아있다. 어찌보면 요시무라 부지사는 일본 정부보단 대응 잘한다는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의 방역 정책보다도 더 높이 평가를 받은 셈. 물론 21년 이후 다소 환자가 급증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부턴 알다시피 봉쇄가 마무리되고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게 되었기에 코로나라는 위기 상황 속 요시무라라는 정치인의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응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스즈키 나오미치 훗카이도 도지사와 함께 지자체의 방역 모범 사례로 남아 그가 재선하는 것의 자산이 되었다.

유신회의 정책과 성향?(Feat. 유신회 극우 논란)


https://brunch.co.kr/@a346abd5a67a4ed/283

(일단 작년 참의원 선거 공약은 NHK나 마이니치 신문 자료 바탕으로 여기에서 한번 정리해놨다)


유신회의 성향, 한국에서는 재특회랑 동급의 극우 정당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일본 유신회라는 키워드로 한국 언론 기사들을 인터넷 서칭해본 결과, 보통 나오는 기사들은 "日 극우 유신회, 창당 5년 만에 제3당...", "위안부 옹호한 극우정당…日 ‘개헌 불쏘시개’로 급부상할까" 등 상당히 유신회라는 정당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들이다. 내용을 봐보면 왜 이들이 극우 정당인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대부분 하시모토 도루라는 인물이 과거에 했던 망언들을 아직도 우려먹는 듯한 논조이다. 뭐 하시모토가 그런 말들을 했었던 건 사실이다만.


물론 실제로 일본 유신회라는 정당이 현실 정치에서 오른쪽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정당이기도 하고 역사관이나 개헌관이 자민당 보수 방류 쪽에 기운 듯한 모습도 있다. 실제로 위에서 내가 요시무라 히로후미라는 정치가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하며 찬양하다시피 했는데 사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본 국민들, 정확힌 오사카 주민들에게서의 입장이지 한국인 입장에서는 요시무라를 좋게 볼 점이 별로 없다. 당장 요시무라 부지사는 자신의 지자체 전시시설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자 반일 선동의 산물이라며 철거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거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적극 찬성하는 등의 우익적 성향을 딱히 감추지 않았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606302014082218

https://naver.me/FBJ3LrpA

다만 요시무라 부지사가 한국 정부나 역사관에서 우익적 언사를 한 것과는 별개로 오사카 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혐한 선동을 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혐한 규제법으로 알려진 2016년 오사카 내 헤이트스피치 조례안 통과에는 시장 시절 요시무라 부지사 본인과 일본 유신회 의원 상당수가 발의와 통과 과정에서 공산당, 공명당과 손잡으며 커다란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이게 그걸 이해해야 하는게 일본이 우경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정치인들이 한국 및 우리의 역사관에 적대의식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게 일본 내 한국인 추방 또는 차별의 정당화 주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건 현실적으로 일본 정치인들도 한일관계의 중요성 자체는 인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사카 같은 곳은 일본 내 한국과의 교류 대표 거점이기에 그 극우 시절 하시모토조차도 재특회류와 같은 방향은 아니었다. 애초에 하시모토는 부라쿠민 출신이라 차별에 민감하다.


https://www.asahi.com/sp/articles/ASQ6J4GHNQ63UTFK026.html

그렇기에 일본 유신회의 개헌파 성향은 단순한 재특회나 넷우익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다. 뭐 그들이 우익 성향이 강한 건 맞지만은 그게 개헌 지지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유신회가 저번 중의원, 참의원 선거에서 제시한 헌법 개정의 방향성을 보면 9조 개정, 긴급 사태 조항 추가도 있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볼 점은 교육 무상화나 헌법재판소 설치, 통치기구 개혁(총리 직선제, 단원제), 오사카 부 수도화, 남계 천황 유지 등의 내용들이 있다. 이는 유신회가 단순 일본 제국의 영광에 취한 극우 정당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근거이며 진보적인 면(교육 무상화)와 보수적인 면(헌법 9조 개정)이 혼합된 느낌에 가까운게 아닐까 싶다.

 

https://o-ishin.jp/about/touitsuchihou/

(2023년 통일지방선거 공약)


일본 유신회의 경제 공약을 보면 자유주의와 전통적 보수주의, 약간의 복지국가적 성향까지 다 가미된 형태다. 공공부문 민영화, 공무원들의 특권 폐지, 중소기업 감세, 유류세 감세, 소비세 감세, 전교육 무상화, 기본소득 도입 등 세계 다른 정당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듯한 공약들이 많다. 이 정도는 나름 반정당, 반의회적 대중주의 정치를 했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오자와 이치로도 하지 못한 부분이다. 다만 현재 기시다 내각의 마이넘버를 둘러싼 문제로 중의원 해산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잖아 있는데다가 어찌 되었건 유신회는 저번 통일지선을 바탕으로 다음 선거에서 약진을 노리고 있다. 때문에 후지타 간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일본대개혁플랜'을 현실적으로 재검토하여 그 중에서 특히 기본소득안은 당초 6~10만엔에서 1~7만엔 사이로 조정해 다음 선거 공약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https://jp.reuters.com/article/japan-politics-idJPKBN2YF0HR

(유신회 대표 바바 노부유키의 핵 공유 발언 논란)

https://www.jcp.or.jp/akahata/aik22/2022-04-14/2022041403_01_0.html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유신회의 핵 발언 비판)


유신회의 안보 공약은 어쩌면 자민당 이상인 측면이 있다. 단순히 주변국에 적대적이냐 마냐를 떠나 기시다 총리가 하기 전부터 방위비 GDP 대비 2%로의 증액이나 적극적 방위 능력 구축은 보수 본류 성향인 기시다 후미오보다도 안보는 훨씬 오른쪽에 있다고 보여진다. 심지어 자민당보다도 더욱 크게 나가는 부분은 핵공유를 발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 공유란 미국이 동맹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방식인데 한국에서도 홍준표 등 일부 정치인들이 주장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1968년 1월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핵무기를 갖지 않고 만들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이 발표되어 현재까지 국시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일본이 핵무기 피해국이라는 호소가 통하는 것이고. 다만 일본 정치인들이 실제로 비핵 3원칙에 충실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전 기시 노부스케는 자위를 위한 핵무기는 합헌이지만 정책적으로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으며 그 비핵 3원칙 발표한 사토 총리마저도 1969년에 미국 닉슨 대통령과 유사시 미군으로의 핵무기 반입을 규정한 비밀 협약을 맺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베 신조도 관방장관 시절인 2002년에 일본 핵무기 보유는 위헌이 아니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사실 유신회의 핵공유 발언도 엄밀히 말하자면 최초로 나온 충격적인 주장만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유신회의 개헌관은 다 떠나서 핵공유를 한다는 정책만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라 생각이 된다. 어찌되었건 핵공유는 미군 소유긴 해도 동북아에 반입한다는 것인데 파장이 엄청날 거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은 어차피 일본 입장에서는 가상적국이니까 그렇다 치고 넘어간다 해도 한국과 대만은? 특히 이런 행동하면 일본이 그렇게 라이벌로 여기는 한국에게도 핵무장의 명분을 스스로 갖다바치는 거다. 왜냐면 핵이란 도미노처럼 휩쓸려 가기 마련이고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평화헌법이 없는 일본식 표현대로라면 '보통국가'이기에 진짜 독자적 핵무장도 가능해진다. 즉 일본의 핵공유건 무장이건 둘다 결론적으로는 더 이상 원폭 피해국 행세로 국익 챙기는 것도 힘들어질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는 유신회가 자민당보다 현실 인식이 뒤떨어진다.

전국 정당, 더 나아가 집권당을 향한 길


유신회의 그동안의 이미지는 오사카, 좀 더 확장한다면 간사이 지역정당이었다. 하시모토 도루부터가 오사카 지역주의로 스타급 정치인이 된 사례이기도 하고 요시무라 히로후미 같은 현직 간판 정치인들도 오사카에서 기반을 쌓았기 때문이다.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지역주의 정서에서 오사카 주민들은 항상 상업에 능하다는 점을 꼬집어 돈만 밝히는 거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도쿄는 모던보이들이 근대 국가를 갈망하며 향한 제국의 중심이었다면 오사카는 생활인들이 살림살이를 꾸리는 아시아로 접속하는 허브였었다. 오늘날에도 JR 중심의 도쿄와는 달리 오사카는 민영으로써 간사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정서는 유신회의 발판이었고 이게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한동한 불호 쪽에 가깝게 인지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2021년 중의원 선거에서 유신회는 효고현으로 진출한데 이어 관서 지방 비례대표 득표에서 자민당을 제쳤다. 오사카도 무공천 지역 빼면 전부 다 이겨서 저력을 과시했다. 심지어 최근 아사히신문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는 자민당의 28%대를 이어 17%로 2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 자릿수이자 무려 제1야당인 일본 입헌민주당보다도 높은 수치다.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는 자민당이 공천을 말아먹은 바람에 어부지리로 나라현지사를 배출하고 블루오션인 교토부에 마이즈루시 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며 지방 정계의 분위기에도 파급력이 상당하다.


이쯤되면 더 이상 유신회는 지역 정당이라고만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는 수준에 이르었다. 자민당이 아베 사후로 분열되고 기시다 내각에 대한 평가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유신회는 더더욱 보수 지지자들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선거에서 유신회가 획득한 지자체 지방의원 수는 기존의 2배 이상이었고 이제 남은 건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제1야당 자리를 얻는 것이다. 실제로 현 시점에서 입헌민주당이 2021년 중의원 선거 참패 후 이즈미 겐타가 대표가 되었음에도 지지율이 크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지라 이젠 보수vs민주 구도도 무너지고 보수vs보수라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원내 구도가 보수vs보수인 나라도 있긴 하다. 바로 아일랜드가 대표 사례인데 여기는 보수 양당제로써 피너 게일이라는 자유주의 보수 정당과 피어너 팔이라는 공화주의 보수 정당이 정국을 주도한다. 하지만 이 두 정당은 보수 정당이면서도 나름대로 진보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고 2023년 현재 시점에서는 기성 양당이 아닌 신페인이라는 IRA와도 연계가 있었던 급진좌파 성향의 정당이 원내 제2당이니 보수vs보수도 사실상 옛 말이 된 셈. 그러니 아마 일본에서 자민-공명vs유신의 구도가 형성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특이 사례일 것이다.


근데 피어너 팔과 피너 게일의 사례 만큼 자민당과 유신회의 사례의 재미있는 점이라면 둘 다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 아예 유신회는 국민민주당과 연계하여 자민당보다 앞서서 LGBT 권리 증진 법안들을 종종 발의하고 있으며 자민당에서 지지층의 58%가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하고 있다. 일본판 차별금지법은 자민당이 주도하여 입민, 국민, 유신, 공명, 공산 모두 LGBT 권리 증진에 찬성하는 희대의 여야 협치로 이뤄졌으며 기시다 내각은 호모포비아 발언을 한 비서관을 즉각 경질하는 등 일본 내 친 LGBT 분위기는 민주, 혁신계 세력을 넘어 한국에서 극우 취급받는 보수 정당들까지도 동의하거나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다만 유신회는 아직은 집권당이 되기엔 세가 큰 규모가 아니며 간사이 외의 다른 지역은 이제야 선출직을 배출한 상황이다. 따라서 유신회가 지방정계를 넘어 중앙정계에서 크게 확장하려면 입헌민주당에게서 제1야당 자리를 빼앗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유신회는 때로는 국민민주당 같은 보수적인 민주 세력과 연대를 맺는 것이고 자민당과도 선택적인 협치와 견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시모토 도루는 언제 나오는데?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께서 21세기 정치인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 중 2가지를 이행하셨다. 삭발, 단식투쟁 다음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는 법인데 의원직이 없으니 당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될까 우려스럽다. "

- 전직 국정원장 박지원의 말. 캐삭빵이라는게 정치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려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하시모토 도루는 2015년 오사카도 구상 주민 투표 문제로 캐삭빵 당해 지금까지 야인 신세다. 이전까지 보였던 다 때려부수고 새로 만들면 된다는 식의 '극장 정치'를 반성하는 건지 나름대로 온건하게 상식적인 발언들을 하며 한국에 대한 관점이 변화가 가장 컸다. 딸이 한류 문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본인도 <기생충>, <사랑의 불시착>, 방탄소년단 등에 관심이 있다는 늬앙스의 말들을 SNS에 하기도 하였는데 덕분에 정계 복귀한다 해도 예전만큼 주변국과 트러블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라는게 중론. 1기 집권 때는 현충원 참배 등 다소 친한적 행보를 보이다가 2012년에 재집권한 후 한국과 잦은 충돌을 보이며 반한 정치인이 된 아베 신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시모토는 본인은 자숙하기 위해 정치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하시모토 도루와 비슷한 캐삭빵을 벌인 인물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있는데 무상급식 주민 투표 부결 및 시장직 사퇴 후 오세훈은 정치적으로 한동안 시체에 가까웠었다. 2016년 총선, 2018년 자유한국당 당 대표 경선, 심지어 2020년 총선에서는 정치신인 고민정에게 패해버렸다. 그러다가 오세훈이 다시 부활한 건 2021년 재보선이었고 당선 원인이 전임자의 성추행 문제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탓임을 감안하면 이미 한번 캐삭빵을 거하게 한 정치인이 다시 신임을 얻는게 쉽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하시모토 도루는 캐삭빵 이후 오세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오세훈은 정치적 재기가 실패한 게 복귀 타이밍이 새누리당 몰락의 시초인 16년 총선이었고 그 이후에 나온 선거들도 시기가 대부분 박근혜 탄핵 덕분에 보수정당의 암흑기였다. 반면 하시모토는 정치적 환경이 현재 상황에서는 굉장히 유리하게 짜여져 있다. 본인이 만든 일본 유신회가 간사이 지역정당을 넘어 전국정당화를 넘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몇년 간 자숙을 하며 이미지를 변화해왔기에 중도층에게도 꼴통 보수가 아닌 합리적인 개혁보수라는 어필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오세훈은 복귀를 시도했음에도 당내에서 호응해주는 이들이 거의 없었고 21년 재보선 때까지도 당내 비토 세력이 그렇게나 많았지만 하시모토는 다른 이도 아니고 오사카 부지사이자 지금 간판 정치인인 요시무라 히로후미가 대놓고 도와달라고 하고 있다. 실제로도 일본 유신회가 간사이 지역정당을 넘어 전국정당으로 나아가려면 하시모토 도루와 같은 뛰어난 정치적 수완을 가진 이들이 국민민주당 등의 세력과 연대를 강화시켜야 하기에 그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가 오고 있다. 문제는 하시모토 본인이 작년 참의원 선거, 올해 통일지방선거 모두 불참하며 아직까지 전면에 안 나오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랬던 것처럼 기다리며 때를 노리는 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간만 본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다. 한국 정치에선 고건 전 총리가 이명박에 대항할 여권 대권주자로 꼽혔으나 질질 끌며 간만 보다가 결국 안 나오며 기다리다가 애가 탄 범 여권은 그대로 정동영 같은 2군을 내보내 참패했으며 간보기의 대명사는 안철수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시모토가 유신회 내부에 관여하는 걸로 봐서는 언젠가 나올 것 같지만 마냥 무조건적으로 기다리는 행보가 독이 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


만약 하시모토 도루가 긴 자숙을 깨고 정계에 돌아와 일본 유신회의 운전대를 잡는다면 과거 오사카 부지사, 시장을 지내며 보였던 대중주의적 정치가로써의 면모가 다시 살아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맺음말: 유신회가 몰고 올 변화


일본 유신회의 부상, 누군가는 일본 극우화의 바람이라고 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이 그들을 극우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난 다르게 본다. 바로 55년 체제 이후로 보수vs혁신에서 보수vs민주로 바뀌었던 일본 정치의 구조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일단 자민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아베 신조라는 대중주의적 성향이 강한 카리스마형 정치가에 의해 통제되어 왔지만 그들이 사라지자 공백을 메꾸거나 일본 정치의 변화를 주도할 이들이 나타나지 못했다.


혁신계 사회당을 대체한 입헌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민주 세력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관료주의와 자민당에 대항할 아젠다를 찾지 못했고 2009년 정권을 잡았지만 너무 아마추어적이어서 현상 유지는 커녕 더 망쳤다. 또 민주당 정권은 자민당의 파벌 정치를 그토록 비판해오던 집단임에도 결국은 간 나오토와 노다 요시히코 정권 동안 오자와 이치로를 중심으로 똑같은 행태를 보였었다. 그렇게 민심의 지지를 잃고 야당이 되었건만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으로 또 갈라지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다가 그나마 간판이라 할 수 있었던 에다노 유키오마저 밀려나며 오늘날 그들의 지지율은 제1야당임에도 3위로 내려갈려고 하고 있다.


어찌보면 일본의 전후 체제와 민주주의가 번영을 가져왔다는 신화가 이를 통해 확실하게 무너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고도성장과 일본이라는 나라가 국제적으로 가진 높은 지위에서 나온 착시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지역정당이자 포퓰리즘적이라 평가받는 일본 유신회가 성장한 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정당, 의회제 민주주의의 위기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평할 수 있겠다. 물론 일본 유신회가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다는 것은 아니고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되비추며 정면 돌파하는 거라고 보는게 맞다. 카를 슈미트가 의회민주정에 대해 한 비판이 현 일본 정치적 상황에 들어맞는다는 것.


유신회가 가져올 변화의 가장 최악의 루트라면 이탈리아 정치 구도다. 이탈리아 역시 지역정당이자 현 멜로니 내각의 연립여당인 동맹과 반의회적 정치를 구사하는 오성운동, 베를루스코니 같은 이들이 난립하는데 긍정적인 방향에서의 변화보다는 그냥 막장 상태만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 사례였다. 어찌보면 예전의 하시모토 지사도 약간 그러한 막장끼(?)가 좀 있긴 했었고. 그렇지만 일본 유신회가 현 상태를 보았을 때 이탈리아 정치판보다는 훨씬 청렴하고 정상적이긴 하니 그들의 루트를 따라갈 것 같지는 않다.


일본 유신회의 돌풍이 한 때 비 자민 정권을 세웠던 민주당이 실패한 관료주의 병폐 타파를 이뤄낼 수 있을지, 또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을 밀어내고 제1야당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더 나아가 그들이 일으키는 변화가 과연 잃어버린 20년으로 죽어가던 일본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일단은 지켜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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