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크 판타지나 디스토피아 계열 장르를 좋아한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와 언제 등장인물들이 죽을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그리고 인간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메세지들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에게는 밝은 장르보단 염세적이지만 어두운 분위기가 훨씬 잘 맞는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두운 분위기를 내는 작품으로 페이트 제로, 도쿄구울, 데스노트를 재밌게 봤지만 그 이상으로 재밌는 작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만화를 보게 되었고 정말 감명깊게 봤다. 바로 오늘 소개할 만화 진격의 거인이다.
진격의 거인은 우익 논란에 휩싸였던 작품이다. 1기에 나오는 인간을 습격하는 방벽은 바다이며 거인이라는 요소는 일본인들의 중국에 대한 공포라는 의견도 있었으며 주인공 에렌 예거가 거인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는 마치 일본이 재무장을 하고 중국과 싸워 이기겠다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당장 진중권부터 진격의 거인에서 우익 냄새가 난다고 했었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에서 말하는 방벽과 거인은 계급사회라고 본다. 우선 방벽은 계급을 상징한다. 월 마리아에서 점점 안쪽의 벽으로 들어갈 수록 안전한 만큼 부유해진다. 반면 바깥은 거인으로 인해 터전을 잃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안쪽에 주둔하는 헌병단은 별로 하는 것도 없이 왕실을 호위하기만 하는 무능한 집단으로 묘사되고, 아예 방벽 밖으로 나가서 싸우는 조사병단은 이런 헌병단과 대립한다.
3기에 가서는 대놓고 조사병단이 쿠데타를 일으키는게 주 내용이다. 이때 대놓고 무능하고 부패하고 또 자기들 밖에 모르는 지도부가 그려지고 조사병단은 여기에 맞서 혁명을 일으킨다. 알다시피 일본 사회에서 혁명이란 금기시 된다. 그런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이런 만화가 나왔다는 것도 놀랍다.
3기 후반부에 가서는 세계의 진실이 밝혀진다. 그것은 바로 벽 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벽 밖의 사람들은 벽 안 사람들을 에르디아인 또는 악마의 후예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한다. 또 웃긴 건 벽 밖의 에르디아인들도 벾 안 에르디안인을 세뇌 교육 영향으로 멸시하고 차별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진격의 거인은 인종차별이 왜 나쁜지 지적하고 있다. 세계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만 해도 벽 안의 사람들과 다른 민족의 갈등이 예상되었지만 정작 나오는 것은 같은 벽 안과 벽 밖의 에르디아인끼리의 대립이었다. 방벽 밖의 에르디아인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기에 세계로부터 인종차별을 받는 것은 정당하고 주장한다.
반면 벽 안 에르디아인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잘못한 것은 에르디아인을 차별하는 세계이며 그들을 전부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 이분법으로만 구별할 수 없는 현실 세계 속 민족 분쟁과 유사하지 않은가? 작가는 아마 이걸 통해서 인종차별과 민족분쟁이 왜 끊임없이 일어나고 악순환이 이어지는지 고찰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진격의 거인은 에렌의 해법, 즉 땅울림의 앙면성을 묘사한다. 분명히 이는 어쩔 수 없었으며 그것 외에는 별다른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전대비문의 학살이며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진격의 거인은 이 점을 땅울림으로 인해 초대형거인들이 세계를 짓밟는 과정에서 무참히 어린아이도 학살되는 장면으로 잘 묘사했다.
이처럼 진격의 거인은 우익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 속에 담고 있는 메세지는 좌익적이며 우익에 대해 비판하는 듯한 묘사들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진격의 거인이 우익이라는 사람들은 한번쯤 작품을 읽어보고 평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