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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한호열도 결국 방관자였다

드라마 <D.P>

by 제이슨

D.P는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병영 부조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는 때론 불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묘사해 우리들로 하여금 '과연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D.P는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보다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는데, 바로 마지막 에피소드 조석봉 일병의 탈영 스토리이다. 조 일병은 작중 처음부터 황장수 병장과 생활관 선임들에게 괴롭힘을 받는다. 머리에 못을 부딪히기도 하고 대공포 발사쇼라는 이름으로 치욕스러운 행위까지 강요받는다. 그런 와중에도 조석봉 일병은 안준호 이병에게 우리가 성장하면 후임들에게는 잘해주자고 말한다.

하지만 황장수 병장은 전역하면서 진심 없이 대충 미안하다고 하고 나오고 다른 선임들은 조석봉을 더 갈구기 시작한다. 결국 대공포 발사쇼를 거부한 조석봉은 선임한테 구타를 당했고 참다못한 조석봉은 선임을 쓰러트리고 방탄모로 후드려 팬 후 탈영한다. 그리고 D.P 조 안준호와 한호열이 조석봉을 잡으러 가며 마지막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이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은 바로 모두가 방관자였다는 것이었다. 황장수의 집을 습격했다가 체포되고 호송되는 과정에서 박범구는 죽인다고 복수가 아니며 후회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조석봉은 무거운 한마디를 던지는데 바로 "모두 방관했으면서..."라고 한다. 그리고 난동을 부려 차량을 전복시키고 탈출한다.

그렇다면 방관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박범구 중사부터 살펴보자. 박범구 중사는 이 에피소드에서 헌병 대장 같은 똥별들보다야 부하를 아낀다는게 드러나지만 그 역시 방관자였다. 1화에서 황장수 병장이 후임들에게 폭언을 하는 것을 그냥 묵인한 채 넘어갔고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지는지, 자기 부대에서 사고가 터질 우려가 있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그 다음은 한호열 상병. 그는 생활관을 같이 쓰기 때문에 더 밀접할 것이다. 하지만 D.P로 차출되고 동기들과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 하면서 한호열 상병은 황장수 병장이 설치건 말건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훗날 조석봉이 황장수를 죽이려 할 때 한호열은 뒤늦게 후회하며 우리들이 방관한 거 다 조사받게 해준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석봉이 제일 잘해준 안준호 이병도 결국은 방관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D.P로 차출되면서 외부인이 되자 황장수 병장의 괴롭힘은 조석봉을 향했으며 안준호도 이병들 앞에서 조석봉을 무시한다. 한마디로 후임한테까지 무시당하는 기수열외 였다는 것인데 마치 임병장 사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우리 모두 병영 부조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 누군가는 살기 위해, 누군가는 귀찮아서든 뭐든 묵인하게 된 것이다. 이 드라마는 작품의 주인공인 안준호와 한호열도 결국은 피해자였던 신분에서 방관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통해 병영 부조리는 결코 가해자 한명만이 만드는게 아님을 보여준다.

엄연히 조석봉은 피해자였고 황장수는 가해자였지만 위치가 뒤바뀌었을 때 조석봉은 황장수를 죽이지 않고 대신 그 자리에서 자기가 죽었다. 이는 박범구 중사가 죽인다고 복수가 되는게 아니라고 한 말에서 기인하는데 죽여봐야 가해자가 아무런 반성이 없으면 소용 없으니 황장수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진정한 복수를 한 셈인거다. 조석봉이 이렇게 타락하게 된 것에 군대에 큰 역할을 한 것을 보며 씁쓸했다.

마지막에 탈영 후 자살했던 신우석 일병의 누나 신혜연과 안준호는 납골당에서 만나는데 신혜연은 신우석이 힘들다고 했을 때 뭐가 힘드냐며 면박을 줬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임이라고 소개한 안준호에게 신우석이 당할 동안 뭐하고 있었나고 원망하다가 이내 미안하다고 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신혜연의 누나가 작품 속에서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군대 문제에 관심 없었던 일반인들이다. 뭐가 힘들다고 면박을 줬던 것은 그동안 국방의 의무와 동 떨어진 제3자 미필자들이 얼마나 병영 문제에 무관심 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미필자로써 나 역시 군인들의 힘든 현실을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관심도 안가져줬던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D.P는 이미 한번 다뤘기에 국방부의 문제가 어쩌고 저쩌고는 또 한번 더 짚고 넘어가진 않겠다. 다만 여자들을 포함한 미필자들도 이 드라마를 계기로 국방의 의무라는 현실을 짊어진 군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주고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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