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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Sep 07. 2023

루카셴코 모델: 러시아와는 다른 방식의 경제

벨라루스의 독특한 "시장사회주의"

https://youtu.be/vcOVagw7Sws?si=Zlq5ZE4Ng6yCgyJE

러시아의 개혁개방은 알다시피 크게 실패했다. 옐친이라는 무능한 지도자는 고르바초프보다도 무리하게 IMF 말만 따르며 시장화, 민영화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폭등하는 물가, 빈부격차 심화, 올리가르히의 독점 및 범죄율의 급격한 증가, 저출산 심화 및 평균수명 단축 등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990년대 동안 러시아는 개혁개방의 실패로 구 소련의 위상은 커녕 오늘내일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만큼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였고 지금까지도 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실제로 현재 러시아 경제 구조에서 큰 역할을 하는 건 아직도 올리가르히니 말이다.


벨라루스는 그렇다면 어떨까? 그들은 소련이 무너지자 타격을 직격으로 맞으며 1990년대 동안 독자적인 경제개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옐친의 경제개혁의 안좋은 여파만 더 받았었고. 1993년까지 벨라루스는 가격 자유화를 제외한 제대로 된 시장경제 개혁조치를 하지 못했으며 1994년에야 국영기업 사유화가 시행될 정도였다. 그리하여 1994년 동안 벨라루스는 농업생산량 -36%, 수송 및 통신 -3%, 건설업 -12%를 기록했으며 1992~1994년 동안 인플레이션은 약 25%를 보였다. 특히 인플레이션의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과 국채 발행으로 발생한 적자 보전 등이 원인이었으며 통화가치가 무력화되자 자연스레 실물자산에 대한 투기가 극심해졌다.

제성훈 외, <벨라루스의 경제개방과 경제성장>

결국 루카셴코는 시장 개방 정책을 포기했다. 러시아도 실패한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다. 대신 취한 정책이 복고마냥 보수적인 경제 노선이었는데 물가와 환율의 국가통제는 물론이고 민간기업 경영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벨라루스 경제의 75%는 국가의 손에 들어와 통제되었고 1996년에 러시아로부터 차관을 받아오는데 성공하여 마이너스 성장률에서 벗어났다. 이때 2.6% 성장률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1997년에 11%를 이뤘고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정책이 다시 재개되자 1997년부터 산업 생산이 복구되었다. 이 시기 벨라루스는 기계제작 및 금속가공업, 목제 가공, 경공업이 성장을 견인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벨라루스식 경제를 선언했다. 루카셴코는 IMF의 경제 처방이 러시아처럼 역효과만 불러온다면서 자신들은 "시장사회주의"를 할 것임을 강조했다. 파산 상태의 국영기업의 존속, 농업 분야의 보조금 지급, 경제 전반에서의 강력한 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시장사회주의는 인근 CIS 국가에 비해 한참 낮은 실업률인 2%를 기록하고 2000~2008년 사이 연평균 8%의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2010년에는 1인당 GDP를 5,700달러라는 통계 수치를 획득했고 특히 2004년 경제성장률은 11.5%였다. 2006년에는 마침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건국 이래 최초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벨라루스 노동시장은 옛 소련의 시스템 느낌이 강하게 난다. 구 소련의 중앙 계획 시스템의 중요한 요소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으며  원칙적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결정은 기업에 맡겨지지만 정부는 중앙에서 결정되는 임금 격자라는 관세 제도를 통해 임금의 구조에 간섭이 가능하다. 관세 체계는 주로 지방지자체 내에서 자금 지원 및 보조를 받는 기업 및 조직을 포함하여 예산 부문에서 영향을 주며 따라서 벨라루스 경제 구조상 고용의 일부만을 대표하는 민간 부문은 자율성이 거의 없다. 그런 통제적인 구조에서도 벨라루스의 경제성장기 동안 하위 40% 인구는 가구 소득 증가를 이뤘고 2010~2020년에 국가의 GDP는 비슷한 가격으로 18.3% 증가, 같은 기간 동안 생산성은 28.2% 증가했다.


벨라루스는 보통 과학 집약적 산업과 에너지 산업, 수출 지향 및 수입대체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춰 경제개발을 진행한다. 유망 산업에서는 외국인 투자를 국내에 재투자하고 국내 기업에 상당 부분 수주를 한다는 조건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통해 국내 산업 정책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당연히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정부 투자와 보조금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제조업 분야는 비중이 60%대 이상이며 2010년 이후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듬에 따라 생산 증가율이 10%대 중반을 기록하던 때도 있을 정도였다.

벨라루스의 사회 안전망은 주로 구 소련의 사회보장제도를 그대로 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벨라루스는 비교적 퇴직연령이 50대 중후반~60대 초반 사이로 상당히 낮은 편인데 따라서 인구통계학적 구조상으로 연금 수급자 수가 많을 수 밖에 없다. 1992년 1월 최저 연금은 최저 임금과 동일한 월 350루블로 인상되었다. 1993년 1월 연금법은 퇴직 시 얻은 소득과 고용 기간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는데 근무 기간 동안 연금 기금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연금은 최저 임금과 연결되어 있는 편.


사회전반적으로 국영 기관이 대다수를 점유하고 있어 병원 및 약국 등 의료 관련 산업도 국영기관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벨라루스인들은 무료 또는 매우 저렴하게 병원과 의약품을 이용할 수 있는 편이고 이는 전체 보건의료 관련 투자의 70%는 공공분야라서 가능한 일이다. 2015년에 나온 BMI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까지 벨라루스의 건강 관련 지출 규모는 미화 기준으로 연평균 7.4% 증가해 2019년에는 연간 지출규모가 68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2019년 이후에는 연평균 10.1% 증가해 2024년에는 지출규모가 12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할 정도였다.


벨라루스는 안정을 우선시해 기본 생활물품의 가격을 보조금 투입으로 억제하였고 구조조정을 중단하거나 실행하더라도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거나 안정화시키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물론 임금이 상당히 낮은 편인 건 부정적인 부분이라면 맞겠지만 그래도 벨라루스 물가를 생각하면 생활수준이 그렇게까지 낮은 편은 아니다. 무상교육이나 위에서 언급한 의료 복지도 동유럽 국가 치고는 잘되어 있는 편인데다가 러시아처럼 올리가르히가 국정을 좌우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루카셴코 이래 부의 재분배도 잘 되어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도 다르게 빈부격차가 양호한 수준이라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안정적이기에 루카셴코의 지지기반이 막 심하게 흔들리는 일은 잘 없는 편이다.


또 1992년부터 소득에 따라 특정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는 조건 하에 3세 이상의 자녀가 있는 집에게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더 나아가 다자녀 가족 지원을 위한 강력한 복지 정책이 마련되었고 2020년에만 세 명 이상의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 혜택, 교육, 의료, 주택 및 기타 조치에 45억 루블 이상이 지출되었다. 2022년에는 전체 예산 지출 중 45%가 사회 분야 지출에 할당되었으며 2021년에도 공무원 임금을 17억 벨라루스 루블(한화 약 7,873억 원)로 증액한 바가 있었다. 이는 벨라루스라는 국가가 완전 고용 문제를 비롯해 상당 부분 구 소련 체제를 계승했다고 봐도 무방한 부분.


이러한 벨라루스의 사례는 하필이면 신자유주의적인 개방 정책이 만능이라 평가받던 시기와 겹치기에 개혁개방이 과연 무조건 성장을 보장하는지에 대한 재검토를 이끄는 부분이 있다. IMF는 그동안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동유럽 국가들에게 시장개방 정책을 권고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패러다임을 이끌고자 하였다. 여기서 공산권의 옛 맹주인 러시아마저 개방을 택하였는데 벨라루스는 이와 역행되는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여타 구 공산 국가들은 민영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 인하, 노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 전반의 자유화를 했지만 벨라루스는 집산주의에 입각하여 소련 시스템을 최대한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여기에는 분명 루카셴코의 일관된 정책 목표와 실행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벨라루스의 성장은 물론 러시아의 지원도 컸지만은 다른 체제전환 국가들보다 상대적이지만 덜 부패한 국가기구도 큰 역할을 했으며 무엇보다 중앙적인 행정 장악력이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시장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경제개방에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시장경제 지수를 투르크메니스탄과 비슷한 급으로 떨어뜨렸지만 그럼에도 2000년대 동안 연간 8%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공식 실업률 2% 및 연금 정상 지급 등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뤘다. 게다가 벨라루스는 2010년대 초반 비즈니스 환경 순위에서 145위인 우크라이나보다 한참 앞서는 68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반개방적 정책도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루카셴코가 효율적인 정책 집행 능력을 가지고 전략을 잘 세웠다는 얘기기도 하고.


벨라루스 경제 정책의 커다란 의의가 있다면 경제 분야에서 다른 구 소련권 및 동유럽 공산국가들과는 역행하는 방식의 노선을 취했음에도 망하기는 커녕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는 것에 있다. 비록 벨라루스라는 나라 자체가 인구가 9백만 밖에 안되고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몇십년째 불량 국가로 낙인찍혀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동유럽의 북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통계상으로 과장이 크지만 적어도 다른 동유럽 국가들보다 실업률이 낮은 건 확실하다고 보여지며 2023년 벨라루스 경제성장률에 대해 세계은행은 -2.3%, IMF가 0.2%, EBRD가 -1%를 전망하고 있다.

다만 문제도 있다. 우선 첫번째로 벨라루스의 성장에는 러시아 영향이 크게 들어갔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의 최대 교역국이고 또 중화학공업과 정유산업은 기본적으로 원료가 러시아에게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벨라루스는 애초에 무관세로 러시아 석유와 가스를 수입해서 정유 과정을 거쳐 유럽시장에 되팔아서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국가인데 그렇기에 러시아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본래 루카셴코는 옐친 시절까지 러시아-벨라루스 통합 문제를 본인이 주도하려고 했지만 푸틴 이후 실패했고 2019년 반정부 시위 국면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은 이후 끌려다니고 있다.


거기다가 자원과 경쟁력 있는 상품을 스스로 제조할 수 없던 벨라루스가 지속한 보조금은 경상수지 적자를 악화시켰고 루카셴코가 정치적 지지를 위해 지속하였던 농업과 일부 사양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불은 재정 적자를 악화시켰다. 여기에다가 대부분의 소비재를 수입하고 있는 벨라루스는 수입을 증가시켰는데 2010년 벨라루스의 무역수지는 전년 대비 31% 증가한 약 100억 달러 규모를 기록하였으며 지금까지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또 아까 말한 것처럼 너무 의존적인 만큼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벨라루스의 경제가 크게 요동치는 것도 커다란 문제인게 러시아의 에너지 제공과 투자가 줄어들자 성장 동력이 확 꺾이는게 몇번이고 있었기 때문.


물론 벨라루스 국립은행에 따르면, 벨라루스의 인플레이션은 2022년 7월 18.1%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2022년 12월 12.8%까지 낮아짐에 따라 다소 안정된지라 벨라루스 경제의 고질병인 인플레이션의 사정이 조금 나아지긴 했다. 그러나 벨라루스라는 나라 자체가 외환보유고 대비 외채 비중이 상당히 높은 국가이기에 신규 외채 발행없이 단기채권을 상환하는 것이 어려운 구조라 정부 재정의 불안정성에 따른 부담감이 항상 존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러제재로 인한 부정적인 전망에 대해 벨라루스 정부 측은 수출다변화, 신규 공급망 구축, 유라시아경제연합내 산업 협력 확대, 수입 대체 프로그램 실행, 결제시스템 개편 등으로 난국을 타개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도 벨라루스라는 나라는 잠재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쪽에 속한다. 벨라루스는 기계산업이 매우 발달되어 있어 농업용, 경공업용, 식료품 생산용, 건설용 기계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가이고 구 소련 시절부터 고급 인력들이 의외로 꽤 많은 곳이었다. 임금도 상당히 저렴한 축에 속하며 유럽과 러시아의 사이에 있는 교량 국가라는 지리적 접근성은 교역에 있어서 꽤나 유리한 조건이다. 따라서 앞으로 벨라루스 미래는 우수한 제조업 기반과 지정학적 위치, 높은 수준의 노동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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