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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의 위선적인 생각에서 "종"의 본질로

만화 <기생수>

by 제이슨

항상 세기의 명작 만화를 꼽으라 할 때 의외로 빠지지 않고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기생수"라는 만화이다. 비록 애니메이션은 BD 판매량이 고작 몇백장 정도로 그쳤으며 원작 만화 연재와 애니판, 실사 영화 제작 사이의 기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못했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상당히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다각도에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를 조명했다는 점에서는 수작을 넘어 명작으로 추대받고 있다. 나 역시 기생수라는 작품이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 기생 생물"과 "기생수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을 모두 보여주면서 진중한 주제의식을 다루면서도 만화적 재미 요소까지 놓치지 않고 잘 살려냈다고 보는 쪽이다.


기생수의 시작은 미지의 외계 생명체인 기생수가 지구를 침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기생수들은 인간의 구멍으로 들어가 뇌를 장악하여 기생하여 인간을 식인 괴물화 시키고 사람을 잡아먹으며 목숨을 부지한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자주 벌어진다. 그때 평범한 고등학생 신이치에게도 기생수가 찾아온다. 그 기생수는 귀 속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신이치가 이어폰을 끼고 있는 바람에 콧구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가 신이치를 깨운다. 깜짝 놀란 신이치는 기생수를 뱀으로 착각하고 때려잡으려 하였고 기생수는 팔로 뚫고 들어갔다. 하지만 신이치는 이어폰 줄로 팔을 감아 올라오는 걸 막았고 그렇게 신이치와 기생수 오른쪽이는 동거하게 되며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만화는 "지구의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모든 생명체의 미래가 지켜지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기생수의 본편을 시작했다. 그리고 신이치의 팔에 기생한 오른쪽이는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그것에 가장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기생수의 초반부는 누가봐도 생태주의적, 에코 파시즘적 주장으로 보일 것이다. 오른쪽이가 노골적으로 신이치의 뇌를 빼앗지 못해 아쉽다고 하는 것이나 기생수를 지지하는 시장인 후반부 인물이자 본연의 의미에서의 에코 파시스트에 가까운 등장인물인 히로카와 다케시가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진짜 기생수라 지칭하는 장면 등은 얼핏 보기에 기생수라는 작품의 주제 의식이 극단적인 생태주의와 연관있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 중반으로 흘러갈 수록 주제의식에 대한 방향성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바로 인간을 넘어서 생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냉정하고 기계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악마로 규정하면서도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기생수들을 자신의 생명을 위해 죽여야 한다고 믿었던 오른쪽이였지만 기생수인 타미야 료코가 목숨을 희생해서 자신의 아기를 지키는 모습을 보는 등의 일련의 사건을 거쳐 최종 결전에서 최강의 기생수이자 자신의 동족인 고토를 죽이는 걸 신이치에게 맡기게 되는 그토록 본인이 혐오하던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게 된다. 즉 초반에는 인간을 환경을 파괴하는 악마로 표현하는 듯했으나 결국은 인간을 먹어치우는 존재인 "기생수" 오른쪽이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며 마냥 인간을 악으로만 규정하진 않았다.


또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의 다른 생물에 대한 측은지심을 이타심이 아니라 위선으로 보는 것에 있다. 작중에서 인간 외 다른 생물의 불쌍함에 대한 측은지심들이 종종 묘사되는데 이는 이타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인간에 의한 사고방식일 수 밖에 없고 특히 극초반부에 언급된 지구의 누군가가 생각한 인간의 절반이 없어지면 모든 생명체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는 말 역시 극단적인 환경 보호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종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다른 생물들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작의 대표적인 에코 파시즘 성향 등장인물 히로카와 타케시 시장은 인간을 지구를 좀 먹는 기생수라 표현하며 강도 높게 비난했지만 정작 기생수인 고토는 타케시의 사상은 이해 못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기생수를 위한 척하는 타케시 또한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으로 지구 생물을 위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한계가 명백한 자였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치는 처음에 기생수를 인간을 죽이는 악한 존재라고 인식했다. 그러다가 오른쪽이와 엮이며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고 기생수인 타미야 료코가 모성애가 발동하여 자신의 유전자에서 나온 자신의 아기를 지키다가 죽는 것을 보고 기생수가 기생생물의 본능을 뛰어넘어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는, 그들 또한 일종의 생명체임을 깨달으며 혼란을 느꼈다. 신이치의 기생수에 대한 연민은 마지막에 고토를 처리할 때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자연이 만들어낸 최강의 생물이었던 고토는 결국 허무하게도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에 있던 약간의 맹독성 물질에 의해 죽게 되고 이에 대해 신이치가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지, 기생수도 단지 살려고 노력하는 생물이었는지 진지하게 고심한다.

그러나 이는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다른 생물에 대한 측은지심은 결코 이타심이 아니라 위선적인 생각일 뿐이라는 말대로 신이치의 고토에 대한 연민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인간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있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신이치는 마음을 다잡고 인간다운 고뇌 끝에 인간답게 고토를 죽인다. 이 마지막 장면은 위선이라는 가면을 던져버리고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을 위해 고토를 죽이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종을 위해 행동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인간을 넘어서 생명을 가진 "종"들의 본능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주고 있는 가히 명장면이라 할 만하다.


내가 생각하는 기생수의 가장 큰 장점은 지구라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무엇이 공동체를 위한 생각일지 고민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속한 종이 우선이고 본질적으로 다른 종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살아가고 있기에 어느 한쪽이 없어도 곤란한 존재들이다. 따라서 기생수 주제의식의 커다란 줄기는 비록 다른 종에 대해 이해는 못하더라도 서로 의지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의 극후반부 오른쪽이는 텔레파시(?) 속 길에서 만난 동물이 죽으면 왜 슬프냐는 신이치에게 "그야 인간이 그렇게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구.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이 그동안 타종을 지구에서 가장 짓밟아온 생명체였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인간의 최대 강점이 타종에 대해 존중할 여유가 있는 유일한 종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기생수 초반부의 주제의식인 인간 비판은 중반을 거쳐 결말에 이르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존중하여 여유가 가득한 생명으로의 "인간"이 될 가능성을 제시하는, 소위 "인간찬가"의 주제의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기생수 작품 속 마지막 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우리는 전부 이곳에 태어나, 아주 작은 점을 이해하길 반복하고 쌓아가고 있다. 뭔가에 기대어, 이윽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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