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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Oct 10. 2023

하마스가 노리는 것: 1968년 구정 공세 모델

베트남 전쟁, 시리아 내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미디어 전쟁

https://youtu.be/Ci_zad39Uhw?si=azhWYjctHRPZdDRk

* 이 글은 오로지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있어서 중립이며 양쪽 모두에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보며 솔직히 의문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원래부터 중동 국가들이야 팔레스타인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싶지 않아 했으며 특히 하마스의 가장 우군이 될 국가인 시리아마저 10년 동안의 내전으로 완전히 황폐화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외부 국가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하마스가 대대적으로 침공을 감행했음에도 대부분의 중동 이슬람 국가들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하마스는 수니파 계열의 조직이고 중동에 있는 이슬람 국가들의 대부분은 시리아, 이란을 제외하고서는 수니파 세력이 확실히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뭣보다 반서방 세계의 대표 국가 러시아와 중국은 지금까지 중립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이번 하마스 침공에서 그들은 민간인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있다. 어린이를 참수한 것은 워낙에 유명한 사건이고 전쟁이 시작하고 67시간만에 이스라엘인 900명을 죽이는 참극을 벌였으니 말이다. 게릴라 전의 기본은 마오쩌둥의 인민전쟁 전략이나 체 게바라의 포코 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민중의 지지가 베이스가 되어야 한다. 뭐 물론 "직접" 죽이는 민간인들의 상당수는 이스라엘인이긴 하나 병원과 학교, 모스크 주변에 군사 거점을 세워서 같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고기 방패로 쓰는 간접적 살인 행보는 어찌보면 지지 기반마저 흔들리게 되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르게 보면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죽은 민간인들의 분노를 불러올 수 있겠지만 이게 노골적으로 되면 공포 정치가 되기에 최악의 경우 점령지의 민간인들의 저항을 불러올 가능성도 높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공습을 퍼붓고 하마스는 민간 시설들을 방패로 쓰면서 그 사이에 낀 주민들만 죽어가고 이는 시리아 내전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

시리아 내전을 보라. 반군은 민간인과 자신들을 구분하지 않고 다 섞어놓는 전략을 취했다. 시리아 반군은 내전 기간 동안, 특히 자신들의 근거지인 알레포와 이들리브에서 지금 하마스가 벌이고 있는 행동과 비슷한 짓들을 벌였다. 일례로 알레포 시내에 독가스를 뿌려서 주민들에게 공포를 조장한다거나, 시리아 정부군이 알레포를 탈환하고 민간 병원 지하에 들어갔을 때 무기들이 잔뜩 보관되어 있다거나 하는 것 등등 말이다. 그렇기에 시리아 내전에선 곧 민간 시설이 반군의 군사 거점이었고 이를 시리아 정부군이 공격했다가 민간인 사망자가 나올 경우에는 그거 사진이랑 영상을 SNS에서 뿌려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 전술을 펼쳤다.


시리아 반군의 언론 플레이 전술도 하마스에게는 귀중한 참고 모델이겠지만 나는 결국 지나친 잔혹 행위로 민심을 잃었던 실패 사례인 시리아 내전 당시의 반군보다는 이번 전쟁에서 하마스가 진짜로 롤모델로 삼고 일으켰다 생각하는 역사적 사례는 바로 1968년 베트남 전쟁 당시에 있었던 "구정 공세"라고 생각한다. 이 공세에서 북베트남은 구정이라는 동양 유교 문화권 최대 명절의 휴전 분위기에 맞춰 30개가 넘는 대대들을 동원해 기습 공세를 펼쳤다. 1월 30일이 되자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을 포함해 남베트남 내 14개 성의 주요 도시에서 베트콩이 무장 봉기를 일으키며 시작한 구정공세는 곧 이어 북베트남 정규군까지 공격에 나서며 후방 게릴라 전에서 전면전으로 번졌고 미군 기지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구정 공세의 군사적 결과는 북베트남의 참패였다. 사상자 비율만 해도 미군이 34명이 전사하는 동안 북베트남군은 1만명이 전사하는 수준이었으며 사이공 내 베트콩은 순식간에 소탕당했다. 케산에서는 미군이 폭탄을 11만 톤 가까이 퍼부어 북베트남 측 전력을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파월  한국군은 미리 대비를 했던 탓인지 베트콩의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 한국군은 맹호사단과 백마사단을 중심으로 방어에 성공하고 대응도 성과를 거뒀다. 결국 북베트남 진영은 1968년 9월까지 4만 5천명의 전사자와 6만명의 부상자가 나왔던 반면에 자유 진영 측은 남베트남군 뿐만 아니라 미군, 한국군까지 합쳐도 고작 1만 8천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이로써 남베트남 내 베트콩 조직은 당분간 재건이 힘들어질 수준에 빠지는 등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며 목표였던 총공세는 미군의 수색섬멸전으로 실패, 전황의 주도권은 누가봐도 미군이 가져갈 것처럼 보였다.

미군이 구정 공세에서 군사적으로 승리했음에도 정치적으로 패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사이공식 처형"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구정공세 초반기에 베트콩이 미군 기지들과 미 대사관을 습격하던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안 그래도 강한 반전여론에 불을 붙였으며 이로인해 전투가 미군이 반격 후에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덮여버렸다. 거기다가 남베트남 경찰간부가 생포한 베트콩 대원을 현장에서 즉결 총살하는 장면이 어느 기자에 의해 사진 찍힌 후 세간에 알려지며 남베트남을 돕는 미군에 대한 비난 여론까지 늘었다. 이 언론 보도를 기점으로 미국 내에서 국내 반전 운동이 거세게 벌어졌고 미국 정부는 서서히 베트남에 발을 빼게 되어 1973년 완전히 미군이 철수한다. 그 후 2년 뒤 북베트남군은 총공세를 감행해 남베트남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베트남 지역의 적화통일을 달성한다.


아마 하마스도 이러한 구정공세의 사례를 노리지 않았을까 하는게 나의 조심스러운 생각이다. 어차피 전면전을 해봐야 하마스에게는 승산이 없다. 뭐 예상보다는 이스라엘의 방어망이 쉽게 뚫리는 바람에 의외로 군사적인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압도적인 체급 차이 특성상 그렇게 쉽게 무너뜨리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이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맞서 몇십년째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하마스 본인들도 모를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이스라엘은 실질적 핵 보유국인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서방의 확실한 지원을 받고 있는 나라이다. 또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서방 세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가치가 있는 건 덤이고. 한 마디로 성경에 비유하자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며 만약 진짜 이스라엘이 무너지기 직전에 처한 상황이 온다 할 지라도 서방이 그냥 넘어가주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


그렇기에 하마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베트남 전쟁 당시의 베트콩들이 그러했듯이 "여론"이다. 어차피 체급 차이상 초반에 기습으로 뒤통수 후려갈겼다고 한들 이스라엘이 72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하마스의 예상을 깨고 재빠르게 예비군을 동원해 순식간에 30만 예비군 체제로 방어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미 민간인 죽은 것 때문에 눈이 돌아간 이스라엘 얘네는 벌써부터 가자지구에 백린탄이나 JDAM을 퍼부으며 보복에 들어갔다.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군 특수부대는 지속적으로 하마스 지휘관들 상대로 암살 작전 펼치고 있는 중이다.


현재 가자지구 봉쇄는 물론이고 지상군 반격 공세도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하마스 병력은 소규모로 분산된 탓인지 민간 시설 공격에는 뛰어난 작전을 보였지만 이스라엘군과의 정면 대결에서는 밀리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이대로 가면 하마스가 외부에서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아 장기전으로 끌고 가지 않는 이상은 아마 침공을 끝까지 지속하기는 힘들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시가지나 정착촌에서만 주로 싸웠던 하마스 병사들은 계속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피해 상황이 점점 커지고 있고. 따라서 하마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이라는 고지를 점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당연히 여론에서 이기는 것 뿐이다.

미국을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만든 일등 공신인 국내 반전 시위

그동안 이스라엘이 워낙 국제사회에서 전쟁범죄 행위들로 인해 비난받던 국가이기도 하고 또 힘이 부족한 팔레스타인은 여론에 호소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는게 가장 유효한 정치공학적 판단일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에 돌입했고 이 지역은 인구 밀집 지역이라 민간인 피해가 나기 좋으니 여기서 민간인 피해가 벌어지면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고립된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한다고 호소하면 어차피 이스라엘의 안좋은 이미지 특성상 먹힐 곳에서는 먹힐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잠재적 우군이 될 수 있는 아랍 국가들에서는 더더욱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여론전을 끌고 갈 여지가 좋은 환경이다.


따라서 하마스의 최종적인 정치적 목표란 사우디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개선을 파토내고 가자지구 내 정착촌의 건설을 막는 것에 있는데 군사적인 성과는 비록 한계가 있을지라도 이렇게 싸움을 정치적으로 끌고 가면 원하던 목적은 이룰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은 당연히 하겠지만 어차피 하마스는 그동안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죽는 것을 항상 감당해왔었던 이들이기에 딱히 이제와서 문제될 것은 없다. 진짜 하마스가 이스라엘 정부를 홍해 바다 밑으로 수장시킬 현실적 가능성을 고려하고 알 아크사 폭풍 작전을 시작했을리는 없으며 애초부터 군사적인 승리보단 정치적인 승리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이 선보인 군사전략은 중국 마오쩌둥의 인민전쟁, 쿠바 체 게바라의 포코 이론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게릴라 전쟁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도 약소국이 강대국의 군사 개입을 격퇴시켰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서방 세계의 지원을 받는 지역 강국에 맞서는 하마스가 처한 상황에도 잘 맞아들어가기에 아마 베트남 전쟁과 비슷한 결말이 나길 바라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실제로 이번 침공 이전부터 그동안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공습할 때부터 하마스가 미디어와 SNS를 통해 그들의 잔학성을 폭로하면서 여론전을 지속적으로 해왔었던 것으로 보아 이미 그들은 베트콩이 쓰던 여론전 전략을 일정부분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적용해 쓰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하마스의 문제가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행보가 과연 구정공세와 같은 결과, 즉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대한 좋은 여론 조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구정공세에서도 후에 학살 같은 물론 북베트남 측의 범죄 행위도 있긴 했으나 최소한 지금 하마스가 하는 것처럼 침공하자 마자 바로 민간인부터 죽이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베트콩은 미디어에서 자신들이 민간인 학살한 것을 자랑스럽게 올리는 짓은 안했다. 왜냐면 베트콩은 기본적으로 물과 물고기 전략에 따라 주민들의 지지가 없이는 유지가 될 수 없는 집단이었고 따라서 반동분자라고 분류된 사람들을 죽일지언정 하마스처럼 아무나 기준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죽여대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민간인의 협조가 게릴라 전의 기본 중에 기본인 것이기도 하니까.

하마스의 신규 점령지(파란색)과 그들의 주무기인 "까삼 로켓". 참고로 까삼 로켓은 1발당 800달러 밖에 안될 정도로 저렴하여 가상비는 매우 좋은 무기다.

그리고 이렇게 민간인 죽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호소를 근거로 여론전을 이끄는 것에 커다란 지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동 국가들은 가자지구 공습이 시작되었음에도 현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그렇다고 하마스에 대해서도 지지를 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는 중이다. 또 이번 침공 바로 직전까지 이스라엘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독재적인 행보에 대한 반발로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중이었고 그 네타냐후는 강경한 유대 극우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이라 비난 여론이 이스라엘 국내외로 퍼지던 중이었다. 그러나 하필 그 타이밍에 하마스가 밀고 들어가면서 네타냐후가 직전까지 사법부를 장악하는 등의 독재 행보를 펼쳤다는 것이나 총리 재임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극도로 탄압했었던 사실은 완전히 묻힌 채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대의만 훼손되었다. 사실상 실책인 셈.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이 정책적으로 정착촌들을 공격적으로 증가시키고 무장한 정착촌 주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공격하는가 하면 성지인 모스크 등에도 멋대로 들어가 살인을 하는 등의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지며 양측 사이에 감정이 격화되기 시작했던 것에 있다. 이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이라는 정체성이 상실될 위기에 처하며 궁지에 몰린 하마스가 발악에 가깝게 학살을 저지른 것이 하마스 측 전쟁범죄의 본질인거고.


 결국 그렇게 되어 원래도 그랬었지만 더 이상 중동 지역에서 선악을 따지는게 무의미해졌다는게 워낙 잘 드러났다는 것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계기로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둘 다 피 맛을 본 자들로써 누구 하나가 죽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고 증오의 연쇄가 끝날 일은 사실상 100년 안에는 불가능해지게 되었다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 실패와 오류가 하마스라는 괴물을 낳아 그들에게 돌아오고 하마스에게 당한 이스라엘은 또 보복하는 악순환은 어쩌면 영원히 안 끝날지도 모르겠다.


뭐 암튼 현 시점에서 하마스는 메르카바 전차 14대 손실 입히고, 장갑차 10여대 노획 등의 성과를 거두고 꽤 커다란 영토 장악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스라엘이 초반 대응에 실패해 크게 망신을 당했었던 욤키푸르 전쟁도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던 만큼 아직까지는 지켜볼 일이다. 또 이미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상대로 학살극을 벌인 시점에서 팔레스타인 측이 이스라엘군의 지상작전을 막아달라고 UN에 호소하는게 과연 먹혀들지도 모르겠고. 만약 나의 생각대로 구정공세처럼 정치적으로 끌고 갈 계산에서 하마스가 이번 침공을 일으켰다면 예상보다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인 파장이 크게 벌어지고 단순한 팔레스타인 분쟁을 넘어서 대리전 양상이 될텐데 과연 어떻게 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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