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다수인 아르차흐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 군사적 충돌 덕분에 아르차흐 공화국은 완전히 소멸하였으며 아제르바이잔은 오랜 숙원이던 국제법적 영토를 회복하게 되었다. 2022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얼마 전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워낙에 강렬하게 다가온 탓에 국제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남카프카스 지역 정세는 비록 묻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분쟁은 상당히 중요하기에 짚고 넘어가보도록 하겠다.
먼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분쟁은 1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모두 독립국이 발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두 민족은 역사적으로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경우 천대를 받으며 유랑 생활을 했는지라 상술이 발달했다. 동유럽의 대영주들이 아르메니아 상인들을 초빙하여 상업의 진흥을 도모했던 역사에서도 그것은 잘 드러난다. 아르메니아 상인들은 특히 바쿠가 석유 사업으로 번창할 때 재빨리 바쿠의 상권을 장악했는데 이때 상업 브루주아인 아르메니아인과 근로자 아제르바이잔 민중 간의 갈등이 생겼고 이것이 양쪽 민족 분쟁의 시발점이 된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1차세계대전 중인 1915~1916년 간에 오스만 제국 정부는 캅카스에 거주하던 2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 중 150만명을 학살했다. 적국인 러시아와 내통했다는게 그 이유였는데 오스만의 민족 억압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반사적인 친러시아 경향을 불러일으키며 범슬라브주의로 나아가게 했고 반대로 독립국을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터키의 지원을 받은 아제르바이잔은 범터키주의의 일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양국 모두 독립국이었음에도 소련군의 진주로 곧 이어 공산화 되었고 양국 사이에서 분쟁이 자주 벌어지던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1921년 법적으로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포함되는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4,400 평방 킬로미터에 인구 18만의 작은 자치주다. 인구의 80% 이상이 아르메니아인이었지만 회교도와 아르메니아인의 민족적 조화를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아제르바이잔에 귀속된 것이었다. 물론 이는 소련 당국이 터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터키의 형제 국가 아제르바이잔의 편의를 봐준 것이 실제 이유에 더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왜 아르메니아인들은 카라바흐 지역에 그토록 집착한 것일까? 우선 첫번째 이유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동부 아르메니아의 크게 인구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카라바흐가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에게도 카라바흐 지역은 중요했다. 만약 이 곳을 아르메니아에게 빼앗긴다면 아제르바이잔은 원래 아제리 인이 대부분이던 영역까지 빼앗기게 된다. 아제르바이잔으로서는 자기 영토 깊숙이 아르메니아의 주권이 미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는데 그들에게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 이교도들이 들여보낸 트로이 목마일 뿐이었다. 이처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모두 민족 국가 건설 사업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눈을 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의 원인이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독립 국가를 수립하여 억눌려있던 민족주의가 분출하던 1991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대전쟁을 벌인다. 소련 시절에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과 아르메니아의 통합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자국 민족 인구가 대부분인 카라바흐 일대를 되찾고 싶어 공개적으로 행동에 나선 아르메니아와 자국의 국제법상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제르바이잔 간의 무력 충돌은 극에 달해 100만명이 넘는 난민들을 카프카즈 지역 전역에 배출시켰다.1992년 4월,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많이 사는 카라바흐 인근 호잘리라는 지역이 아르메니아에 넘어오면서 아르메니아가 승기를 잡았는데 그 직후 보복이 시작되었다. 호잘리를 시작으로 슈샤, 라친, 켈바자 같은 아제르바이잔의의 거점들이 함락될 때마다 아제르바이잔의 민간인들은 학살당했다.
전쟁은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승리로 끝났다. 1994년 5월, 정전이 되었을 때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뿐만 아니라 근처의 7개 지역을 포함해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20%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의 패배 원인은 대부분의 병력이 전투병이 아니었던 탓에 미숙했고 또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이 미국 정계에 활발히 로비 공작을 하여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대놓고 도울 수 밖에 막아버렸던것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자인 아르메니아 역시 승리의 영광을 누릴 시간이 없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여전히 국제법상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로 간주되었으며 이는 뒤집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아제르바이잔을 후원하는 터키가 아르메니아의 지리적 악조건을 활용, 국경을 봉쇄해버려서 아르메니아의 무역길을 틀어막힌 결과 외국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어고 아르메니아는 어쩔 수 없이 이란과 그루지야의 국경을 통해서 겨우 무역을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또 아제르바이잔도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여 아르메니아는 전기 부족에도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났고 2020년 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시작된다. 사실 그 중간 사이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국경 지대에서의 충돌은 줄곧 있어왔고 특히 2020년 7월, 아르메니아군이 토부즈라는 아제르바이잔의 주요 송유관이 지나는 도시에 포격 도발을 한 것을 계기로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해진 아제르바이잔이 본격적으로 침공하며 9월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10월 10일 러시아의 중재로 합의를 보았으나 곧 파기되었고 1달이 지난 후에야 전쟁이 겨우 끝나게 되었다. 참고로 전쟁이 끝난 시점은 아제르바이잔군이 슈샤라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역이자 아르메니아 본토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인 12번 국도가 있는 곳을 장악한 후였다. 이로써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3분의 1에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곳을 둘러싼 7개의 행정구역을 되찾으며 1차 전쟁의 패배를 복수할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이 이렇게 다시 우위로 설 수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바로 석유가스 산업 덕분이다. 그들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공격적으로 가스 개발을 위해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 1994년에 영국 에너지 기업과 8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으며 카스피해 인근 유전 개발에 손대는 성과를 얻었다. 또 그로부터 조금 밖에 안 지난 후에는 다른 가스전 개발에도 외국 에너지 기업과 계약에 성공했다. 1997년 아제르바이잔 최대 유전 ACG에서 석유 생산이 시작되어 다음해에는 석유 생산량이 전년도 대비 24% 증가라는 괄목할 만한 기록을 달성했고 2010년에 이르어 하루 평균 1,023,000배럴이라는 역대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승세가 무색하게 2020년 코로나 사태와 OPEC의 감산 결정 탓인지 하루 평균 702,000배럴까지 수치가 급하락했고 여기서 아제르바이잔은 분명 성장 동력이 꺾였을 것이라 생각이 들 거다. 그러나 의외로 아제르바이잔은 빨리 해답을 찾았다. 그 해답은 가스와 송유관이었다. 1999년 바쿠-숩사 항을 잇는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은 더 이상 러시아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물론이었고 특히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조지아의 트빌리시, 튀르키예의 지중해 체인한 항을 잇는 BTC 송유관이 완공되면서 하루 평균 120만배럴까지도 가능해지는 등 꽤 짭짤한 돈벌이 수단이 될 조건이 갖춰졌다. 가스의 경우는 가스전 채굴 이래 계속 수출이 성장하여 2007년 0.7억㎥에 지나지 않던 가스 수출량이 코로나 발생 시기이자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있었던 2020년에는 177.4배가 증가해 124.2억㎥를 기록하여 효자산업을 입증했다.
출처: 이유신 <아제르바이잔의 석유가스 산업이 제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 미친 영향>
그렇다면 가스와 석유로 아제르바이잔은 얼마만큼 이득을 취했는가? 통계 자료상으로는 가장 수출액에서 석유와 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었던 2011년에는 87.2%에 가까웠고 하락하기 시작한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74.5%, 63.3% 선은 유지하였다. 재미있는 건 석유 비중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가스의 비중은 2010년부터 계속 증가하기 시작하여 전쟁 당시까지도 20%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비중이 줄어드는 시기든, 그 반대이든 아제르바이잔의 경제에 있어서 GDP에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덕분에 아제르바이잔은 지난 26년 사이에 아르메니아보다 훨씬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수 있었다. 1997년부터 2배 이상 차이나기 시작하던 양국의 GDP는 2006년 BTC 송유관의 건설을 계기로 아제르바이잔이 3배 이상을 앞서는 심한 격차로 이어지고야 말았으며 이는 2020년 유가 급락으로 인한 아제르바이잔의 불경기 속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보다 안정적으로 국방비에 투자할 여건이 되었다. 지정학적 위치의 불안과 인구감소로 인한 허약하고 불안정한 경제 특성상 아르메니아는 불리한 리스크를 안고 시작했지만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은 앞서 말한 자원을 통한 경제 성장을 이용해 국방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 수가 있었다. 1997년에서 2020년까지 아제르바이잔은 326억 달러 규모를 국방비로 지출했지만 아르메니아는 고작 71억 달러가 전부였고 2010~2020년 사이의 누적 국방비 지출액 차이는 5배 이상은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마저도 아제르바이잔은 재정의 11%만을 국방비로 쓴 반면 아르메니아는 무려 21%를 썼는데도 저 정도 차이가 난 것.
그럼에도 딱 전쟁이 일어났을 때까지는 아르메니아군이 장교단이 우수한데다가 방어진지를 잘 알 박아놨으니 전술적 수준은 더 뛰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아제르바이잔은 예상과는 달리 경제력을 바탕으로 병력, 전차, 장갑차, 포병 화력 등에서 아르메니아를 앞서가 있는 상태였다. 아르메니아군은 기껏 해봐야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이나 BM-30 300mm 다연장 로켓포 등 과거 소련 시절에 도입한 무기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 벨라루스 등과 협력하며 8개 목표를 정밀타격할 수 있는 폴로네즈 다연장 로켓을 포함해 각종 원거리 타격 무기 체계들을 정비해왔었다. 무엇보다도 아르메니아는 고작 정찰용 위주의 4개종 무인기가 전부였던 것과 대비되게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 이스라엘로부터 총 11개종의 정찰, 자폭, 다목적 용도의 무인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이것이 하이브리드 전쟁인 나고르노-카라바흐 2차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경제력, 국방비 지출 만큼이나 중요하지만, 놓치기 쉬운 아르메니아가 결코 아제르바이잔을 이길 수 없던 요인은 바로 아제르바이잔의 영악한 외교술에 있다. 일각에서는 아르메니아vs아제르바이잔 구도를 단순히 러시아와 튀르키예의 대리전 수준의 단면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아르메니아에게 있어서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의 75%나 의존하는 대상인 나라이고 수출입의 20~30%대 사이의 규모를 대(對) 러시아 무역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그루지야 장미 혁명을 시작으로 반러 벨트가 형성되어 만약 이들이 나토에 가입한다면 지정학적 고립을 불러올 수 있다는 공포가 계속 있는지라 EAEU를 통해 아르메니아를 지원하고 CSTO를 통해 군사협력을 하여 남카프카스 지역에서 전략적인 이익을 취하는 방식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예레반과 귬리에는 3,000명이긴 하지만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고.
그러나 2018년 아르메니아가 벨벳 혁명으로 민주화되고 집권한 니콜 파시냔 총리는 전통적인 친러 정책에서 방향성 전환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친서방 외교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인데 당연히 러시아 입장에서는 배신으로 보였을 것이지만 당장은 별 수가 없으니 냅둔 것에 가깝다. 파시냔 총리는 아르메니아가 민주화 되었으니 아제르바이잔이 침공한다면 서방 세계가 지원해줄 것이라는 혼자만의 망상에 갇혀있었는데 그는 미국이 점점 고립주의로 가고 있기에 고립된 캅카스 지역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다는 것과 어떻게 지원받을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란게 머리 속에 존재하질 않았다. 서방 세계가 민주화된 아르메니아에 대한 시선이 나빴던 것은 아니고 그럭저럭 괜찮게 보았지만 저 멀리 고립되어 있는 예레반까지 지원하기에는 무리였다. 어쩌면 파시냔 총리는 너무 이상주의자였던 나머지 국제정치에서 약소국이라는 처지를 무시하고 망조든 국가들이 가던 테크를 밟은 것인데 그 결과 2020년에 이어 2023년에도 패배를 거듭하며 추락했다.
그러한 러시아의 애매모호한 중재자적 태도와 아르메니아의 무능을 틈 타 아제르바이잔의 알리예프 대통령의 영악한 외교술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알리예프는 친서방, 친튀르키예 노선을 보이고 있지만 그루지야의 사카슈빌리가 그랬던 것 마냥 러시아를 적대하진 않았다. 남카프카스 지역에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목표는 자국 영향권에서의 이탈을 막으면서도 분쟁의 중재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있는데 아제르바이잔이 이걸 잘 활용한 사례였다.따라서 FDI 투자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며 수입의 15%를 러시아와의 무역에 할당했다. 가장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이 협력한 분야는 바로 국방인데 아제르바이잔은 나토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와중에도 러시아로부터 50억 달러라는 거액을 주고 대량으로 무기를 구입하였으며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무기 수입액의 60%는 러시아 관련이었다. 이렇게양다리 정책을 취한 결과 의외로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는 크게 험악하지 않으며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중동과 자국의 본토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가 반러 국가가 되는 걸 원하지 않기에 서로 이해관계가 맞물린 부분도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계획은 러시아를 중립으로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산유국들이 적대적인 관계라서 안정적으로 에너지 자원을 공급받기 힘든 위치에 있는데 아제르바이잔이 여기에 손을 내밀어 현재 이스라엘 석유 수요의 40%를 채워주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그렇게 일단 석유라는 당근책을 던진 후 이스라엘로부터 각종 첨단 군사장비들을 들여와 이걸 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써먹었다. 이란의 경우에는 아제르바이잔에게 적대적인 국가이고 종교 근본주의vs세속주의의 차이는 있긴 하나 자국 내 아제리인들의 비중이 크기도 하고 또 만약 공격 시에는 같은 시아파 국가를 때린다는 이미지를 덮어쓰게 되는 리스크가 있기에 이들이 개입하는 건 쉽지 않다. 그루지야를 보자면 아르메니아의 괴뢰국 아르차흐 공화국이 압하지야, 남오세티야를 연상케 해서 불쾌한 감정이 있기도 하고 또 아제르바이잔의 송유관 사업의 직접적 혜택 당사국인 만큼 아르메니아를 돕기 위해 끼어들 이유는 없는 편.
튀르키예와는 이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마침내 사실상 동맹 수준으로 다지는데 성공의 결실을 거뒀다.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은 역사, 언어, 문화 등 인문환경에 있어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라들이고 튀르키예에게 있어서는 캅카스로 거점을 확대하기 위한 필요한 요충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1991년 아제르바이잔 정부 설립 직후부터 튀르키예는 그들과 수교를 맺었으며 일찍이 아제르바이잔군의 군사간부들을 불러서 훈련시켰다. 2020년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군 T-72 전차와 BMP-2 보병전투차가 파괴되는 것에는 튀르키예제 드론 TB2가 사용되어 크게 활약하는 등 양국 군사협력이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지금까지도 튀르키예에 가스와 에너지를 공급하는 밥줄이며 튀르키예 측은 87억 달러 규모의 직접 수출액을 제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영악한 아제르바이잔의 외교술은 2020년 전쟁, 오늘날 2023년 아르차흐 공화국 멸망 국면에서 빛을 발하였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본토가 공격당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사실상 중립을 지켰고 그렇게 아르메니아가 두들겨 맞는 동안 캅카스 지역의 중재자 포지션을 유지하는 이익을 챙겼다. 어차피 러시아 입장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중동 국가와의 교역을 확대하는 플랜도 나쁜 선택은 아니니까. 동시에 튀르키예와는 더욱 관계를 밀접하게 다졌고 이란은 정치적 이유로 관여 못하게 만들었는데 이게 신의 한수가 되어 안 그래도 지리적 조건 때문에 고립된 아르메니아를 더더욱 궁지로 몰아넣어 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군보다 준비를 못한 나머지 순식간에 허를 찔린 아르메니아군의 무능 탓에 조기에 종결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영악한 외교술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의 외교 실패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인 현실을 보지 못한 채 그저 멀리 있는 세력이 자신들을 도우러 와줄 것이란 착각에 부풀었던 파시냔 총리가 대실패를 거두고 그나마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마저 외면하게 만드는 대재앙을 불러왔던 것은 결국 외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의 이념이 아니라 실용적인 자세라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의 외교를 재설정하지 못한다면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고 어쩌면 최악의 경우에는 과격하게 말하자면 러시아가 가치가 없어진아르메니아보단 차라리 아제르바이잔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쪽을 고를 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건 결코 강 건너 불난 곳에 있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얘기가 될 수도 있다.